예술이란 명분으로 생산보다 소비를 더 추구한다.
그동안 힙스터들을 미친듯이 봐왔다. 참다못해 이 글을 기고한다.
이 글은 내가 서울의 로컬 성지라 불리는 망원동, 연희동, 연남동, 성수동, 을지로 일대를 둘러보고 자칭 힙스터라 불리는(본인들이 그렇게 셀럽 평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세한 조사 후 나만의 칼럼으로 기록하는 글이다.
때는 무려 2010대 초반이었다. 갓 수능이라는 난관을 헤쳐나아가 술이라는 성인식을 치른 무렵이었다. 20살 초반에 홍대라는 예술적 아지트로 이동했다. 그 당시 UV(유세윤, 뮤지 레트로 뽕짝 조합)의 <이태원 프리덤> 노래가 유명했던 시절이었다. 버스나 택시를 타면 종종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참으로 희한했다. 그리 대중적이지 않지만 반복적인 음향 패턴과 뽕짝 반 섞인 구조가 마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연상케했다. 아마 싸이도 이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불과 유브이 전성기 시절인 2011년 다음 2012년에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선보였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이 이태원 프리덤의 가사를 살펴보면 참 재미있다.
"강남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
가사는 참 진부하기 딱 좋은 단편적인 1차원 말투인데 2010년대 초반 당시 슈퍼스타K 전성기에서 비롯된 대부분 뮤지션들이 홍대와 이태원 버스킹을 통해 캐스팅 되었으니 어느 정도 저 가사가 이해되더라.
아무튼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홍대라는 미지의 공간이 나의 청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그 당시에는 몰랐다. 홍대입구 9번 출구에 내리자마자 맥도날드 앞 뿌연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더 깊이 들어가자 찢어진 청바지와 무거운 기타 배낭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예비 락커들이 보였고 현 스타벅스가 있는 곳으로 더 들어가면 흔히 <버스킹 광장>이라 불리는 아지트가 등장했다. 이곳에서 다양한 버스커들이 춤을 추거나 작은 5KW 앰프를 활용하여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버스킹이란 의미가 이때부터 시초되었다.
<동경소녀> 히트곡으로 유명해진 버스커버스커 또한 이 홍대에서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버스킹 하면 당연히 홍대지~"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녔다. 그렇게 2010년대 초중반은 버스킹의 시대였고 여느 프로그램에서는 이들을 한국판 브루클린 힙스터라 칭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힙스터의 의미가 점차 변질되었다.
그리고 네이버 토픽에는 당시 힙스터라는 명칭이 없었다.
그렇게 한국판 힙스터가 2014-2015년 사이에 탄생하였다. 1세대는 버스커버스커였다. 밴드만의 노래 철학과 서정적인 가사, 시적인 노래 리듬이 밴드의 레트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때가 한국판 히피 감성을 그대로 커버하여 새로운 장르로 구축하였다.
또다른 말로는 흔히 옛 영국의 1970년대 브리티쉬 밴드를 동양에서 다시 재구성한 느낌이었다. 일명 한국의 오아시스라 불린 버스커버스커의 노래가 점차 유명해지자 이를 벤치마킹한 또 다른 예술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 또한 힙스터가 될 거야-"라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2015년 초반 무렵에는 쇼미더머니가 점차 극강세로 치를 떨자 밴드형 힙스터는 점차 힘이 약화되었다. 같은 힙스터라도 노래 장르에 따라 자신이 소화하고픈 노래 철학에 따라 구분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힙합형 힙스터가 홍대에 선두주자로 등극하자 소외된 대다수 밴드 힙스터들은 또 다른 자신의 아지트를 찾아 떠났다. 그렇게 그들이 찾은 곳은 여의도 광장과 을지로 일대 허름한 재즈바였다. 힙합과 다르게 밴드의 울림과 음악적 가치관은 을지로 골목 일대로 큰 영향력을 행세하였고 앰프 특성상 공간 방음이 확실한 펍, 재즈바 지하 일대를 그들만의 경제력 자립 공간으로 재구성하였다.
그렇게 홍대에는 힙합형 힙스터, 을지로 일대에는 밴드형 힙스터의 기준점이 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난 군대 전역 후 25살까지는 홍대를 자주 배회했다. 뭔가 '힙'하다는 느낌은 남들과 다른, 가치와 개성이 있는, 탈중심사회, 나를 보여주기 위함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조직사회와 다르게 홍대의 자유분방한 그 환경은 180도 다르게 내가 온전한 '자유'를 갈망하게 하였다. 담배를 뻑뻑 피며 길거리에서 와인과 소맥을 벗 삼아 예술 이야기를 돈독히 했던 그때의 그 추억은 아직도 기억한다. 1차에서 헌팅술집은 일상다반사였고 2차는 예술혼이라는 핑계로 암흑의 네온사인 가득한 홍대 삼거리 포차 인근을 배회했다. 마지막 3차는 결국 만취한 상태로 헤롱헤롱 거리며 인근 해장국밥에서 인생 한탄을 하며 아침차를 타고 집에 갔다.
참으로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던 나의 힙스터 기질이었다. 그렇다.
내가 그 당시 행했던 24살의 힙스터 감성은 지금 여전히 나보다 어린 젊은 사람들이 진행하고 있다. 지금도 홍대에서 본인은 남다르고 개성 넘치니 온전히 이 하루를 술과 향연에 맡기고 나만의 예술 철학을 만들겠다는 친구들이 참으로 많다.
왜 그럴까?
술을 마셔야지만 꼭 힙스터 기질이 발동되는 것일까?
헌팅을 해야 힙스터 기질이 발동되는 것일까?
락커로 놀이터 일대 공공재를 훼손해야 힙스터 기질이 발동되는 것일까?
와이드한 패션과 컨버스 신발로 침이 난무한 바닥을 질질 끌고 다녀야 힙스터 기질이 발동되는 것일까?
예술 감각이 많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주장을 과다하게 상대방에 주입해야 힙스터 기질이 발동되는 것일까?
(중략)
생각보다 너무 많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해서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왜 꼭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본인이 <힙스터>라는 합리화에 휩싸이는 것일까?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지난 이태원 참사를 비롯하면 무고한 청년들이 희생했다. (물론 청년아 아닌 어르신들도 있었다.) 그들의 꿈은 한치 앞날도 모른 채 현실적 도피에 몸을 맡기다가 결국 생을 다하였다. 현실적 도피라는 말이 이중적 해석이기도 하다. 부정적 현실 사회에 맞대응하여 자신만의 옳은 가치관을 행하는 것, 그 반대로 현실 사회 그 자체가 싫어 내가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해 돌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다만 난 후자가 맞다고 본다. 이태원의 지역 거점 행사였던 할로윈 축제가 지역 상권에 이로운 점은 현실적으로 맞았지만 그걸 핑계로 자신의 힙스터 기질을 남발하여 이 사고가 났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난 그래서 힙스터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인생은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자. 다만 그로 인해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여론 인식이 점차 부정을 타고 있는 추세이다.
난 예술가도 아니다. 그저 기획자라는 탈을 쓴 이벤트 기획사 말단 직원이다. 각종 행사와 축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며 사람들에게 문화적 감각을 심어주는 것 또한 내 업무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 사고를 기점으로 나를 힙스터라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차피 너희들은 다 같은 예술병에 걸린 애들이야. 현실 파악을 못하고 그저 도피만 하고자 현실 그늘에서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정신적 기초수급자인데 뭘 바라냐?"
난 이 말 한마디가 충격이었다. 이 말은 어느 부동산 디벨로퍼의 말이었다. 낙후된 지역을 임장(부동산 용어로 재개발 지역을 사전 답사하는 것)하고 나만의 컨텐츠로 제작하고 싶은데 현실적인 꼰대 부동산 업자를 만났던 셈이다. 어차피 그 사람에게 내가 현실적인 프리랜서이자 4대 보험 반반 섞인 일반인이라고 설명해도 예술의 예만 들어가면 또 젠트리피케이션 일으켜서 공방 만들거냐며 용역 부를테니 가만 두지 않겠단다. (두 번 다시 내 경제 활동지점에 오지마소. 이건 마지막 경고요)
입장 차이이다. 물론 이렇게 힙스터에 대한 관점이 점차 부정적으로 변질되니 나 또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사회가 그렇게 바뀌어간다. 점차 SNS 난무하고 곳곳에서 밈을 활용한 댄서들이 틱톡을 활용해 쇼츠를 만들어가니 그들 또한 스스로 힙스터라 자부하고 자신을 브랜딩 한다. 어린 친구들은 곧이곧대로 힙스터가 멋지다고 판단하며 직업 1순위 하이퍼링크로 <힙스터>를 기입한다. 그리고 그 그늘 뒤에 있는 진짜 예술가들은...
그럼 진짜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을지로 일대에 있는 밴드형 힙스터들의 생계 수단은 어떻게 이어가나?
여의도 광장에서 여름철 땀나며 오아시스 노래를 감미롭게 부르는 밴드들은 어디서 또 공연하나?
망원동 어느 폐공장 일대를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며 카페로 생계를 이어 나아가야 하나?
처음에 언급했던 힙합형 힙스터는 점차 본질이 변질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밥벌이가 줄어들자 그들의 활동은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매개체를 활용하여 나름 브랜딩하며 현실적으로 밴드형 힙스터보다 수익성이 높다는 평을 받아 점차 상업적인 틱톡커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점차 힙스터라는 본질을 잃고 만다.
난 그래서 여전히 홍대와 이태원을 싫어한다.
본인이 홍대병 증후군에 사로잡혀 SNS우울증에 걸린 듯 마냥 글을 휘갈기며 자기만의 잣대로 예술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이 상업적인 광고 효과로 돈독히 발휘하자 이마저도 예술의 근간이라 읽고 인근을 배회하는 무고하고 순수한 인디 밴드에 다소 심한 타격을 줄까봐 걱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은 오히려 변질된 힙스터의 연희동, 연남동 일대 확장을 야기했다. 연남은 원래 저주택 단지였는데 이 힙스터들이 만취 후 고성방가를 하여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자자했다고 한다. 심지어 관련 부동산업체들도 쉬쉬하고 있다. 그저 돈벌이가 최우선인 것이지 뭐..)
홍대와 이태원을 틀렸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망원동과 성수동, 해방촌에 거주하는 변질된 힙스터들을 보면 이 특징을 알리고 싶다.
1. 특이한 패션을 지니고 있고 개성이라 부른다. (계절에 연연하지 않는다.)
2. 낮져밤이라 조직 사회에 맞지 않다. 그들은 개인 프리랜서에 적합하다.
3. 타 예술가들과 달리 세상 이치 본질을 매우 심하게 파괴하여 사람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예술가들은 어느 정도 대중적인 도슨트 투어 및 커뮤니티를 통해 일반인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하지만 변질된 힙스터들은 자기만의 친목질을 일삼으며 정상적인 인디 요소에 자기들의 작품물이 소비되길 바란다. 일명 잊힌 B급 감성이라 자부한다.)
4. 나르시시즘이 강하다. 자기 애착이 강해 자존감이 강력하다. 이는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예술 활동의 핵심의 중심이 나로부터 비롯되지만 반대 의미로 다른 예술을 배척한다.
5. 자신의 본업을 예술이라 칭하면서 소셜커머스 및 도매 제조업 등 다른 장르에 침범하려고 한다. 즉 이중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허나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술 관련 정책이 다소 미비하니 어쩔 수 없다고 가정한다.)
6. 가장 중요한 점, 남들과 다르다는 타인 인정 속에 자신의 우월감을 어떤 행동과 결과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만인에 대한 만인인척 하며 허울 된 이타심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어떤 아지트에서 평범하다는 이유만으로 간접적 소외감을 표현한다.
7. 극소수이지만 어떤 프로젝트에 있어서 협업 단계와 절차, 공정 관리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어떤 단체만의) 아이디어와 철학을 강요한다. 마치 B급 감성을 만들기 이전 감독의 촬영기법과 기획을 무시한 채 시행하는 기획사와 같다.
8. 사회적 변천 과정에서 그들의 문화적 활동은 가히 훌륭하나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귀결된다.
9.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다면서 오히려 소비를 부추기며 생산 활동은 뒤로 미룬다.
적어도 내가 자주 들락거리는 독립서점과 대중적인 전시회에는 그들의 침범력이 상쇄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서울의 원도심인 을지로와 망원동에 자주 배회할 수도 있겠다만 작은 부탁이라면 평범한 예술적 상권 조성과 순수한 자영업자 사장님들 생계유지에 피해를 주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