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 권지용은 어떠한 과거사를 지니었던가.
최근에 지드래곤이 신곡 앨범인 <위버멘쉬>를 2025.2.25에 발표했다.
지난 11월 5개월 만에 세 번째 정규 앨범으로 대중 앞에 당당히 나섰던 지드래곤의 과거는 이 앨범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2016년 12월 빅뱅 정규 앨범이었던 <MADE>를 기점으로 서태지 다음으로 버금가는 문화 대통령의 권위를 명예 있는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듯하였으나 다시끔 현시대에 걸맞은 노래로 대중들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드래곤의 업적은 서태지의 후계자 역할을 돈독히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날 2010년대 기점으로 한국의 문화 생태계는 크게 변곡점을 치렀다. 대형 콘서트 독점과 연예계 이슈가 연달아 터지니 당연히 음악을 포함한 대중의 문화 수요와 공급이 교란 상황에 착수한 것은 분명했다.
난 2015년 기점으로 지드래곤의 정규 앨범 발매는 끝이라 생각했다.
(사실상 한국방송통신위원회의 만행과 음악 저작권에 대한 기득권의 횡포로 읽겠다. 허나 서태지가 이를 무마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날부터 현재 10년간 바뀐 것은 거의 없었다. 서태지 갓킹, 그는 어떤 인생을 산 겁니까..)
한동안 잠적기였던 권지용의 과거를 보면..
싸이와 콜라보레이션 작품 <4 X 2 = 8>에서 이따금 모습을 보였고, <권지용> 앨범에서 30대 초반 문화 대통령 입장의 솔직한 마음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 7년간 잠적을 하여 한동안 문화계의 냉전 시기를 맛보았다. 지드래곤의 활동력은 대한민국 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했다.
그는 2017년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대중 앞에 선보이려 했다. 허나 방통위와 그 외 문화 단체, 공공기관, 내부적 압박은 물론이고 해외 여러 이슈에 사로잡힌 외부적 환경에 제도적 충동을 해결하지 못하였고 이윽고 스스로 아티스트의 지드래곤과 본인 권지용 사이의 괴리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2016년 빅뱅 멤버의 마지막 앨범을 종점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솔로 앨범을 새로 내려고 했으니 제목이자 부제인 <권지용>이었다.
<권지용> 앨범은 실로 파급력이 크다. 아이유의 앨범 <팔레트>에서 권지용이 피처링을 하며 다음과 같은 가사를 남겼다.
"지은아 오빠는 말이야 지금 막 서른인데, 나는 절대로 아니야 근데 막 어른이 돼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너보다 다섯 살 밖에 안 먹었는데 스물 위, 서른 아래. 고맘때' Right there 애도 어른도 아닌 나이 때 그저 '나'일 때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나 어둠이 드리워질 때도 겁내지 마 너무 아름다워서 꽃잎 활짝 펴서 언제나 사랑받는 아이"
아이유와 서로 이야기를 하듯 써내렸던 팔레트 가사는 실제로 20대 중반의 아이유를 위한 30대 초반 권지용의 덕담과 위로의 글을 전달하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권지용은 스스로 힘들고 갈팡질팡하는 30대 초반의 대한민국 현대인을 딱 꼬집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찌하여 앞만 보고 따라가니 사회에 앞장설 선발주자가 되었을 때 멘토가 없던 자신이 비록 처참한 광경과 몰골일지라도 이를 교훈 삼아 후대에게 전달하고픈 냉정한 시대의 낭만적 사람으로 남길 바랬다고 한다.
아이유는 당시 20대 한낱 철부지였다고 비유했다. 그저 시간과 환경이 시키는 대로 내키는 대로 시키기에 따라가는 현실 상황에서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신>이라는 사람과 마주하고 싶은 마치 힘들 때 종교에 의존하고 싶다는 자신의 위로글과 같은 형색이었다. 지디는 자신이 스스로 <신>이 아니라 불과 30대 초반의 평범한 대중이라 비유했다. (아티스트란 타이틀은 제외하면 말이다.)
나이는 먹었지만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지 않았고 스스로 해결했지만 그 정답을 알지 못했던 30대 초반의 GD, 권지용이었고..
나이는 불과 20대 중반이지만 사회가 시키는 대로 낭만을 지닌 채 그대로 움직이고 앞으로 날개를 펴야 할지 의아했던 IU, 이지은이었다.
2021년 11월 당시
권지용은 왜 스스로 지디라 답하지 아니하였는가에 대한 물음은 그저 고통은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랬다.
https://blog.naver.com/rhwlsgur11/222578883974
이는 현 2030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종착지로 잘 사는 사람, 즉 <성공>이란 무엇일까 이에 도달하고픈 과거 여러 추억과 회상을 기록 삼아 추상적 경험을 쌓고 기록하니 어느새 제작했던 결과물이 <오버맨, 즉 위버멘쉬>였다.
Übermensch
프리드리히 니체가 언급한 삶의 목표를 제시한 인재상이다.
Uber라는 초월적인 뜻과 Man이란 사람을 뜻하는 합성어로 초월하는 존재를 총칭한다.
우리는 얼마나 험난한 사회를 버텨왔고 살아왔는가, 지난날 10년간 지디의 공백이 그러하듯 2015년 기점으로 여러 이슈가 도가니였다.
코로나 시대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난민 이슈, 정치적 갈등 등 말이다. 이는 개인이 이길 수 없는 집단체의 목표 의식으로 승화된다.
여기서 위버멘쉬를 위해서 앞으로 목표를 다지며 나아가야 함은 잊지 말아야 한다. 허나 특징을 몇 가지 제시한다.!
- 위버멘쉬를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세상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 그러므로 모든 고통을 포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수용하며 긍정적으로 해결해라.
- 초월적인 신에 지배당하는 위버멘쉬보다 스스로 신에 가까워지도록 하자.
- 허나 본인이 신이 될 수는 없다. 세상 불변의 진리이다.
- 본인을 스스로 엄격히 다루고, 남에게 관대하자.
- 이기주의를 배반하고 배신하라.
- 아첨하고 거짓말 앞에 무릎을 꿇는 간신배를 배신하라.
-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모든 일에 겁부터 내는 인간을 배신하라.
- 삶의 극복을 위해 스스로 지옥 속으로 보내라.
- 필연적인 삶이 지겹다면 그저 즐겨라.
돌연히 생각하면 지디는 그동안 ENT가 시키는 대로, 주어진 대중의 반응성에 의하여, 사회적 이슈와 결부된 모든 포괄적 교집합에 스스로 교란 생물로 표현했다. 언뜻 30대가 되어 생각해 보니 굳이 사회와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있나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본인이 없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한동안 본인의 전성기 시절인 2010 - 2015년 사이에는 GD라는 이름이 더욱 걸맞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17년 <권지용> 앨범 발매 이후 본인을 사랑하며 채찍질하는 것이 남들을 위해 살아감이 아님을 직시했고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직관은 곧 현장감이 되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존중감을 확대토록 하였다. 매슬로 5단계 기점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태어났으니, 그저 수정이 되었으니 그런 1차적 생물학적 관능에 의해선 답이 없다.
하물며 자신이 지닌 삶의 철학을 있는 그대로 배우다 보면 곧 그게 창조라고 언급했다.
위버멘쉬는 나 스스로 초월하는 방법의 길목이지, 신 자체가 되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건 우리가 창조를 하며 사회에 나란 존재를 뿌리기 위함이다.
이왕 태어난 거 스스로 창조하며 남들에게 좋은 긍정적 나무로 치환되고 싶지 아니한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는 곧 스스로 세상 이치를 통달한 신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것이다.
권지용은 그러한 의미로 현대인들에게 경고하고 조언을 했다.
특히 앞으로 미지의 구역에서 고통을 얼싸안고 함께 머물 2030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위버멘쉬란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