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일기, K는 싸이코>

갓혁의 에쎄이 1

by 갓혁

때는 2019년. 지금으로부터 대략 3년 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상쾌한 하루를 맞이하겠다는 어느 7월의 주말이었지. 날이 굉장히 뜨거운 한 여름날을 아직도 잊지 못해. 오죽했으면 뉴스에서도 그날 최고로 덥다고 이미 기상 캐스터가 이야기했더라. 아직도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최고로 더운 2019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비색 긴 셔츠와 검은색 슬렉스를 입고 나는 한 팔에 휴대 백을 끼고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중이었어. 어느 중요한 업무를 보러 가는 것일까? 마침 아는 친구의 연락을 받게 되었지.


"야, 오늘 나 카페 인테리어 작업 있는 거 알지? 늦지 말고 꼭 와야 한다이. 이럴 때마다 연락하고 참"


"어어 그래그래 잊지 않고 바로 갈 테니까 주소 하나만 찍어주라. 거기 장소 어디라고?"


"어어 연희동 삼거리로 와. 아 맞다. 너 전에 인천 연희동으로 갔다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 아니다. 서대문 연희동이야. 잊지 마라."


"아.. 또 그 이야기는 왜 하냐 창피하게.. 알았어. 얼른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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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를 순간 짜증 나게 했던 이 친구란 녀석은 K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내 연예인 놀음하겠다고 선생님들의 말을 안 듣고 빨갛게 염색하고 결국 부모님 소환까지 귀결되었던 일명 싸이코였다. 그때에는 이 친구가 기타를 딩가딩가 치면서 베짱이처럼 대학교도 안 가고 평생 백수로 살겠다고 얼마나 자부했는지, 이 친구를 거쳐갔던 담임 샘들도 포기했다니까 말이다.


결국에는 백석예술대학에 입학했다. 우여곡절 끝에 말이다. 아니 사실은 수능 전 30일 동안 진짜 하루 종일 공부만 했는데 머리는 확실히 좋았는지 이미 기존에 했던 음악 실기로 합격했다고 한다. 참 멋진 친구이다. 때로는 이 친구를 보면 느끼는 감정 하나, '인생 열심히 살 필요 없구나.' 그 친구라는 결과물이 떡 하니 내 전화번호에 저장되었고 연락도 했던 사이였기에 가능했지.


그렇게 애증 어린 한숨을 내쉬면서 마곡역에서 601번 버스를 타고 대략 40분 뒤에 도착한 연희동. 인근에 미도파 카페가 있었는데 내가 초등학생 시절 서예 대회를 가겠다고 가끔 마포를 지나치다가 발견한 하나의 소규모 카페였다. 아직도 기억났던 그 3년 전의 기억. 기억은 기억으로 되살려지는구나. 참 신기했다.


아무튼 그 미도파 카페를 건너서 연세대학교 방면으로 10분 걷다 보면 왼쪽으로 꺾어지는 조그마한 골목이 있다. 거기가 바로 옛날 연희동 골목이었다. 물론 지금도 다양한 카페랑 음식점이 몰렸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신촌에서 술 먹고 해장하러 연희동 어느 유명한 라면집에 갔을 정도면 말 다 했지. 아니나 다를까 예전의 추억을 담은 '연희 김밥'이 보였다. 예전 라면 가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면 나의 단순 기억 왜곡이었을까. 그냥 그렇게 데자뷰 같은 느낌을 뒤로 한 채 무덤덤히 연희동 옛 골목을 걸어갔다.



1.PNG 연희동 옛 골목


그렇게 이동을 하다 보니 마주치는 '연희 대공원'. 작년 10월에 비누 사겠다고 여기에 왔었다. 그때 구매한 비누는 모조리 다 써버렸고, 살짝 디퓨저 향기가 물씬 풍겨져서 화장실을 조금 더 상쾌하게 해주었지. 덕분에 또 가서 그 비누를 구매하려고 하였지만 이게 당시 주 목표 장소가 아니었단 말이지.


우선순위를 고려하면 '친구'를 만나서 카페 인테리어 설치 작업을 도와준다. 이게 1순위, 그리고 2순위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 그럴 때 연희 대공원에 와서 다시 비누를 구매하는거야 ! 아주 좋은 찬스라고 생각했던 나는 나름 흐뭇했지만 다시 입구를 보았을 때에는 '당시 휴무'라는 멘트와 함께 살짝 아쉬운 마음만 달래고 있었다.


KakaoTalk_20220214_213731510_03.jpg 연희대공원 EERT. 작년 10월에 비누사러 갔다.


솔직히 아쉬웠지만 어찌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지. 뭐 이 공간이 나중에 없어지겠냐고 하소연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만의 소소한 의기소침함은 그렇게 서서히 사라질 때 즈음에 어느새 도착한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라고 하기에는 다소 아직 미완성이었다. 그래서 인테리어 꾸밀 인력이 없으니 나에게 부탁한 거였냐?


아무리 친구라지만 너무 기분 좋다. 그래그래, 끝나고 소고기 사주겠다는 친구의 강렬한 호소와 설득에 넘어가버린 당시 2019년 20대 마지막 끝자락의 갓혁아. 그걸 왜 얻어먹겠다고 갔던 거냐. 하아 그렇지만 행복의 추억은 여전히 남아있기에 가능한 이야기겠지. 다시 생각해 보니 나 '덕분'에 이 친구도 영업이 잘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라고 스스로 망상에 빠져들어간다. 친구는 일단 와줘서 고맙다며, 페인트가 묻으니 자기가 준비한 여벌 페인팅 옷을 따로 준비해 주고는 본보기로 작업을 보여주더라.


'한 여름에 페인팅? 이거 완전히 싸이코아냐. 진짜 학창 시절 버릇 못 고쳤네. 남의 마음 못 알아주던 공감 결여 인간이냐.'라고 속으로 끙끙 거렸지만 어떻게 해. 결과적으로 소고기에만 매달린 나 자신은 그렇게 자존심이 무너져내려가며 무의식적으로 순간 앞에 보였던 것은 '페인팅하는 나'


흰 색깔로 벅벅 칠하면서 잔소리 들었다. "아니 바보냐? 거기 칠하지 말고 오른쪽 칠하라니까 진짜 니가 왜 고등학교 때 미술 점수 10점이었는지 알겠다."


(빠직)


"아니 넌 그럼 모든 과목 평균 30점이었잖아."


"그게 갑자기 여기서 할 소리냐? 소고기 안 먹고 싶냐?"


"아니 먹을 건데 네가 자꾸 잔소리하니까 화나네. 관둔다?"


"그래 관둬라.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너는 청첩장 따윈 없다. 뷔페도 오지 마 자식아"


"아니 그게 왜 또 거기까지 연결되냐고. 학창 시절 버릇 진짜 여든까지 간다고. 환장하네."


한 여름날, 해는 쨍쨍 지면서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는 나와 친구. 하염없이 서로 물고 뜯고 아주 난리도 아닌 남정네들끼리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니 구경꾼들은 그저 웬 패싸움인 줄 알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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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 싹싹 말끔하게 빨간색 벽돌은 흰색 페인팅으로 어느새 칠해가면서 역시 싸우면서 정이 든다는 것일까. 덕분에 맛깔나게 성공한 카페 인테리어 외관. 정확히 2시간 걸렸다. 그 노고를 누가 이해해줄지, 오직 싸움 오질나게 했던 이 친구와 서로 공감대를 공유하자니 참 마음이 뒤숭숭했다. 아 맞다. 소고기는 이 친구가 사주기로했지. 다시 마음을 잡았다.


스스로에게 굉장히 큰 기대감을 가졌기에 결과물에도 엄청난 만족감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걸 또 지켜본 친구는 고생했다며 바로 소고기를 사주겠다며 다시 옷 갈아입고 나오라고 부추겼다. (사실 당시 친구는 애초에 나 오기 전부터 소고기를 사줄 생각이었다. 그저 츤데레적인 이 관계는 부정 못했기에. 그리고 글로 기록하려고 하니 당시 상황과 요 현재 상황의 나의 기억 사이에서 다소 기억 왜곡이 일어난 듯하다. 어쩌면 추억은 미화된다고.. 그때 화나서 페인트 통 발로 차서 친구랑 대판 싸울뻔했는데, 이 또한 하나의 추억으로 변질된 듯하다. 아?)


KakaoTalk_20220214_213731510_28.jpg 당시 친구의 카페가 있던 장소였으나 지금은 다른 사장님과 카페로 바뀌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오늘 연희동을 거닐면서 친구가 운영했던 옛 카페의 흔적을 잠시나마 찾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현재 연락이 되질 않는다. 코로나가 강타하고 정확히 2021년 5월이었을까. 청첩장만 남겨둔 채 서울 동부로 이사 갔다는 소문만 자자했다. 그저 그렇게 떠나간 것이다. 나에게는 인생의 친구라 자부했던 친구였고 학창 시절 미친개라 불리는 유명한 싸이코였지만, 추후에 카페 사장으로 바뀌었을지 누가 알았을까. 이 친구를 보면 내가 못했던 그 일부분을 대신 자기가 소화해 주었다.


K가 내 블로그를 보고 있다면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여전히 페이스북은 열려있지만 내 DM도 안 보고, 메신저도 1이 사라졌지만 구경도 안 하고. 너무한 거 아니냐.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그저 이 말만 믿으련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잘 살아있길 바란다.





KakaoTalk_20220214_213731510_01.jpg 연희 예술공방<원 데이 클래스 2019년>


그렇게 하나 둘 이동하면서 어느새 도착한 장소. 아 감미롭다. 당시 친구가 여자친구 선물을 위해 연희동에서 원 데이 클래스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선물인데 원 데이 클래스? 그게 무슨 말인지 의아했다.


알고 보니 한 달 동안 직접 본인이 가방을 만들고 그 결과물을 여자친구에게 줄 예정이었다. 굳이 이 가방을 만들고 직접 준다고? 요즈음 그게 먹히는 세상일까 싶다. 남녀관계를 떠나서 사람들끼리도 결과만을 바라보는 시대인데 과정을 증명한다고? 당시 너무나 부정적인 나의 인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친구의 행동이었지만, 선물을 여자친구한테 줬을 때 이미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그 과정에서 내가 한 말이 씨가 되었나 싶기도 했다.


솔직히 너무 미안했다. 나의 말 한마디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그렇게 편협된 생각을 가졌다. 알고 보니 원 데이 클래스 15일 하는 과정에서 이미 헤어질 위기였단다. 그래서 미안하니까 자신이 열심히 여자친구를 위해 뭔가 만들고 있다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가 참 측은하다. 뭐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인생 모른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친구에게 이 말 한마디 하다가 오히려 역으로 귀싸대기 맞을뻔했다. 당시 너무 솔직 담백했던 나 자신을 원망한다고 뭐라나 저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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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친구의 카페 장사가 시작된 지 어느덧 3개월 후. 친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야 진혁아. 너 나랑 같이 카페 장사할래? 요즈음 인건비도 비싸고, 손님들도 많이 오는데 인력도 없고. 알바생은 마음에 안 든다. 하아"


"나 카페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심지어 포스기도 몰라. 그리고 그거 너 아냐? 친구랑 사업하면 무조건 싸운다. 그리고 한 명은 무조건 돈 들고 튄다. 그게 나일지도 몰라."


"아오 말을 해도 그렇게 하냐. 그냥 나 요즈음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거야 인마."


"그럼 그렇게 말하지 왜 돌려 말하냐."


역시나 또 싸운다. 3개월 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 사이임에도 또 싸운다. 진짜 애증 표현 하나는 기가 막혔던 친구 사이의 정이란 게 참 이런 건가 나도 요즈음 의문이 든다. 솔직히 이렇게 서로 헐뜯고 욕하면서 정을 키우는 사람 별로 없을 듯 (속으로 내심 뿌듯)


KakaoTalk_20220214_213731510_04.jpg 야식 포차. 아직도 그 사장님이 내 얼굴을 기억하신다.내심 기뻤다.자주 먹었던 제육볶음과 해장에 적성인 야식 국수.



아무튼 당시 친구는 너무 힘들다고 인근 연희 대공원에서 500보 정도 걸으면 나오는 한 노포에 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아니 솔직히 설득이 아니라 반강요로 이동했다.


들어서자마자 고소하고 담백한 파전과 국수 냄새가 내 이마를 탁 치게했다. 아니 연희동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스스로 믿기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했다. 왜냐하면 얼큰하게 달아오른 아저씨들이 벌써부터 정치 이야기를 펼치고 계시더라. 일명 노포 맛집이다. (속으로 친구를 이미 칭찬했다. 역시 내 스타일아는구만.)


이미 이 친구는 나랑 술을 너무 마시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당시 나도 프리랜서였고, 이 친구는 자영업자. 즉 회사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사정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직종이 다르기 때문에 과연 서로를 이해할까? 물론 이해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내심 위로밖에 되지 않는 그 상황은 너무 고리타분하잖아. 언제까지 위로하겠는가. 그 자리에서 바로 사업적인 이야기를 이실직고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줄 사람들은 사실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친구와 나였다.


"야.. 나도 친구들처럼 그냥 회사 다닐까 생각한다. 카페 다 집어치울래."


"아오 오자마자 또 뭔 소리냐. 그래서 여기 허름한 노포에 나를 부른 거야? 참 재미있는 친구야."

"아 몰라 오늘 청하 개인당 5병씩 깐다. 쫄리면 뒤지시든가."

"누가 쫄려? 아주머니 여기 청하 10병 주세요. 오늘 이 친구 뒤지면 제가 카드 결제합니다 깔깔깔"

"웃기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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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나눈 하나의 감성 노동요 맛집에서 우리는 하염없이 사업 이야기와 연애관, 그리고 미래 이야기를 노닥거렸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한 소리 하셨다.


"어이 청년들, 이제 곱게 마셔. 아우 청하 찐 냄새. 다들 집이 어디여?"


"헤에 아주머니 연희동이 저의 집입니다. (딸꾹)"


"맞아요! 연희동은 저와 이 친구의 집입니다! (딸꾹)"


"그래그래 아까 진짜 너 면상 보자마자 화났는데, 오늘은 너 사업 이야기 듣고 솔직히 내심 걱정했다. 오늘 또 가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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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 이후로 기억이 안 난다.


눈을 떴을 때 연희동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 내부 어느 조그마한 창고에서 ㄷ자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미친 거였지. 당시 진짜 술을 얼마나 고량탱이 마냥 퍼부어마셨으면 그 지경이었을까. 전화를 확인했다. 다행히 회사와 관련된 업무 이야기, 부모님의 전화는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이동하려는 순간, 친구가 그 변기통에 토를 오질나게 하고 있었다.


"우웨에에에엑"


"이야.. 우리 어제 얼마나 마신... 우우에에엑"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갓혁의 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