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되었던 고기 파티. 버킷에 담긴 영롱한 색깔의 한라산 10병, 그리고 N형님은 무덤하게 고기를 불판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K는 자신의 역할을 제 아는 듯이 천천히 소주잔에 한라산 소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성 3명이서 소주 한 잔씩 시원하게 마신 다음에 다음 코스로 K가 맥주 컵을 빌려와 환상의 궁합 소맥 1:1을 섞기 시작했다.
고기가 미처 익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 한라산 1병을 비워버렸다. 더군다나 맥주와 소주의 조합이 1:1이라면 그 누구나 만취를 예상하는 하루 아니겠는가? 오늘은 그렇게 서로가 취함을 미리 예측했단 듯이 N형님이 먼저 윙크 싸인을 우리에게 날리시더라.
“우와 이 고기 냄새 기억난다. 나 연희동 와서 큐레이터 아르바이트할 때 사장님이 데리고 간 고깃집이 있거든? 바로 그 냄새, 분위기랑 같더라. 하아 그리워라 옛날이여-”
“N형님, 그게 언제적 이야기예요? 마치 10년 전 강산이 변한다고 시를 읊으시는 선비 같아요. 형님 벌써 그럴 나이에요?”
오늘 구면인데 술기운 오른다고 또 나대기 시작한 K였다. 참고로 N형님은 도를 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K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일방적 구타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아-니 오히려 K는 그렇게 당해도 싸다. 제발 오늘만큼은 N형님이 혼쭐을 내줬으면 좋겠다. 내심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더니 K가 또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한마디 더했다.
“너 나 엿 멕이려고 일부러 그러지. 속 마음 다 뻔히 보인다.”
“엉 맞아. 제발 부디 오늘 누군가가 너 혼쭐냈으면 좋겠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N형님은 이제 그만하라면서 우리를 또 말리셨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했지.
“어어, 10분 안에 도착한다고? 알겠어- 여기 주소 연희동 XX-OOO 번지!”
방금 N형님 전화로 들리었던 목소리는 분명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조금 깜찍한 말투와 츤데레마냥 툭툭 던지는 그 어투까지 모든 게 이 N형님이 바랬던 여자 이상형일 수도 있겠네. 하물며 이 형님은 모든 여성들에게 굉장히 친절한 ‘척’을 하거든.
‘형님 솔직히 죄송하지만 대답 말투가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내심 속 마음을 비추면 안되니까 조심스럽게 다 익은 고기를 한 입 두 입 입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달달 녹기 시작했다. 어느새 3인분 고기는 나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절반이 사라진 상황. 이를 본 K는 또한 질 수 없다며 내가 익힌 고기를 계속 집어먹기 시작했다. 참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고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란, 바로 이 연희동 고깃집에 오면 당연지사 알게 될 것이다. 처참하게 굶주린 각자의 사연이 있는 남자들이 머문 이 장소에서 그 누구도 이들을 빤히 쳐다보거나 혀를 차지는 않았다. 단지 날카로운 초가을 바람과 함께 고기의 숯불 냄새가 서서히 연희동 전체로 번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 무르익어가며 어느새 넌지시 쓰레기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랬다. 우리는 오늘 구면과 초면의 이 갈림길 속에서 서로 함께 화합 도모하자는 일종의 신고식을 했던 것이다. N형님은 이 상황이 매우 흡족스러웠는지 K와 나를 어깨동무하고는 잠깐 밖으로 이동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그 냄새 자욱한 전자담배를 퍽퍽 피면서 우리에게 뜻깊은 말을 하나 해주었다.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단 말이야. 오늘을 그렇게 바라고 꿈꿨던 사람은 당장 오늘 백수처럼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떠한 존재일 것 같니?”
갑자기 엉뚱한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형님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여기서 찾지 말라고 하신 게 분명하다. 바로 연희동에서 말이다.
내가 터를 잡았고 살아왔던 소중한 시간들과 장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강서구 화곡동, 그리고 혜화동, 그리고 성북동.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이어지면서 나의 추억이 물든 장소가 곳곳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K 또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물며 예술가가 있는 앞에서 본인에게 느껴지는 인간관계 감성은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자부했단다. 본인은 스스로 우월하다고 그렇게 믿어왔지만 사실 N형님 앞에서는 정말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한 신입 사장일 뿐이었다. 그저 나이만 20대 후반이라는 어린 강점만 있는 껍데기일 뿐이었다고 한다.
“형님, 이 대화는 충분히 이제 그만하시고 이제 들어가시죠. 그래서 아까 아름답고 곱디고운 목소리의 여성분은 누구시냐고요.”
“어어, 잠깐만 방금 내가 이야기했던 질문의 정답은 말이야. 그 여자를 보면 알게 될 거야. 마침 저기 오네~”
나와 K는 N형님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일렉기타를 맨 H가 냉큼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안녕-! 다들 안녕-! 아디오스! 아 이때 쓰는 말이 아니구나, 올라-!”
아, 하나님. 만수르님. 예수님. 부처님. 어머님. 아버님. 조상님.
또 한 술 한다는 여자가 오는군요. 매우 반갑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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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혁의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