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일기, 취중진담>

갓혁의 에쎄이 6

by 갓혁

꽁지머리의 그녀를 유독 쳐다보는 N형님. 사사로운 감정으로 메마른 형님은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기쁘게 소리를 질렀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냐. 요즈음 일하고 공부하고 음악하고 아주 비즈니스 걸이야. 멋져!”


“아니 갑자기 이 서늘한 밤에 나를 부른 이유가 뭐야? 평소에 연락도 없더구먼 너무하네.”


“아니 아니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들어가자. 아 맞다 오늘 새로운 손님들도 왔어. 모처럼 초면이니까 내가 들어가서 소개해줄게.”

N형님은 마치 헌팅을 목적으로 온 듯한 느낌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저 표정에서 ‘오늘 나 정말 멋진데?’라고 써져 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이 H는 이미 구면인데 이 형님은 이 꼬인 관계를 잘 모르시나 보다. 어쨌든 우리와 K는 어이가 없다듯이 멍한 표정으로 고깃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H는 눈치가 빠르다. 그녀는 이 분위기를 보고 애써 어색한 이 상황에 N형님이 자기를 부른걸 이미 인지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재빠르게 넌지시 우리에게 물어본 한마디.


“어,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뵙네요! 그런데 참 낯이 익죠?”


역시는 역시다. 서비스업을 주 전공으로 삼았던 그녀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아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고 인과관계 확실한 논리로 펼치기 위해 말을 잘 굴리었다. 순간 K는 눈치도 없게 짜증 나는 표정으로 대뜸 솔직한 발언을 하였다.


“야, 무슨 초면이야. 한라산으로 오늘 혼쭐나기 싫으면 어색한 분위기 만들지 말 거라.”


“하- 진짜 눈치 1도 없네. 역시 너랑 있으면 나의 연기실력이 늘지를 않겠다.”


순간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K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 어이없는 상황을 만든 건 너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저 이런 친구 한 명씩 있으면 참 재미있기에 잘 참았다. 아무튼 이 순간 N형님 또한 눈치를 바로 채신 모양이다. 천천히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던 이 분위기 속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히 K만 이 감성 어린 상황극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 나도 알아 알아. 그냥 해본 이야기였어요.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세요. 하하”


진짜 K는 오히려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아놓은 셈이다. N형님은 이런 분위기가 싫었는지 그저 소맥 잔에다가 1:1 비율을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벌컥벌컥 마시더니 다시 우리에게 잔을 돌리며 이 한마디를 외쳤다.


“야야 다들 상황극 그만해. H는 이런 의미 없는 놀이 싫어해. 다들 유치하기 짝이 없네. 무슨 초등학생들이 선보러 왔냐? 다들 짠해- 짠해-”


내가 봤을 때 이 형님 또한 상황 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가 서로 구면임을 인지하지 못한, 그저 순수함 가득한 예술가의 얼굴에서 진득하고 미묘한 웃음기를 보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색하지만 그 완벽하지 않는 공기 속에서 밀도 있는 이야기를 서로 맞추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오히려 서로 완벽하다면 굳이 이 고깃집 식당에 올 필요가 없었다. 다들 눈치 싸움을 하듯이 헛웃음만 외치며 그렇게 K가 다시 잔을 들고 연거푸 소맥을 붓고 마셨다.


“오늘 너 죽는 날이냐? 혼자 마시지 말고 다 같이 마시자. 자- N형님, K, 그리고 H 다들 파이팅! 솔직히 오늘 분위기 정말 어-색 하기 그지없는데 이런 분위기 참 좋은 거 알죠? 다들 사랑합니다-”


“엥, 너 취했냐? 한라산 얼마나 마셨다고 머릿속에 우동사리가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나.”


“형님 진혁이 술 못 마셔요. 그런데 본인이 잘 마시는 ‘척’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참 매력 있는 친구입니다. 오늘 얘 술로 조져봐요. 그럼 이 아이만의 취중진담을 아주 고심 있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의외로 진지충입니다.”


“넌 그 입에 제발 솔직한 감성 좀 넣지 마.”


그렇게 서로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일 때, H는 그저 조용히 소맥을 마시면서 흐뭇해하기 시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깃집의 연탄 짚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며, 회식 자리를 가지던 회사원들과 대학생들의 노가리는 끝이 없었고, 그 모퉁이 한 자리에 우리들의 열띤 토론이 오고 가고 있었다. 마치 다시 예전의 대학 생활로 돌아간 친구들처럼. 순수하고 담백한, 하지만 나름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섞어가며 서로를 물고 헐뜯고, 때로는 K의 욕설과 N형님의 전자담배, H의 진심 어린 조언들까지 이 가지각색의 매개체 또한 나의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저 그런 아름다운 밤을 지새우며 또 연희동의 하루가 무덤덤히 지나갔다. 오히려 암막 커튼 사이로 비치는 담백한 가을 미세 먼지가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라 예상하면서 세상은 아직 살 맛난다고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고 사랑했다. 모든 이들에게 말이야.


만취한 나.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취중진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