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일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갓혁의 에쎄이 7

by 갓혁



N형님이 흐느껴 우셨다. 갑자기 난생처음 들어본 형님의 울음소리. 얼마나 서글프셨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혀를 씹었다고 한다.


“아프니까.. 흐흑.. 청춘이다.. 흐흑.. 혀를.. 깨물었어.. 흐흑”


웬만해서는 진짜 넘어가고 싶은 상황도 있고 어지간하면 유치한 K의 뻘짓은 나에게 무덤덤하기만 하지만, 더군다나 예술가 정신을 간직하고 있던 이 형님마저 그러시니까 나는 왜인지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그 상황을 난데없이 구경하고 있던 H도 웃음을 참으려다가 결국에는 미소를 번지면서 깔깔 웃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 분위기를 원하셨던 게 아니었을까. 이 형님 아픈 척은 다 해놓고 이렇게 웃긴 상황을 연출하신다고? 알고 보니 이 형 예전부터 예술가뿐만 아니라 연기자, 배우의 꿈을 지망하셨던 분이셨기에 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이 자리를 만들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형님이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의 주최자 또한 N형님, 고깃집으로 우리를 부른 것도 N형님이었다. (사실 강제로 끌려갔지만 말이다.)


“형님 오늘따라 술 많이 드셨네요. 하하하”


애써 웃기로 이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나였다. K 또한 이 상황이 얼마나 재미있다고 생각하는지 갑자기 난데없이 웃통을 벗고 어깨와 쇄골 사이에 있는 헤나를 넌지시 N형님께 보여주는 것 아닌가. 순간 당황했다. 웃통은 왜 벗는 걸까. 헤나는 그렇다 쳐도 말이다.


“K야 요즈음 몸 자랑한다고 나대지 말자! 연희동에서 너 소식이 자자해. 자자 이제 다들 그만하시죠. 여기까지 불러서 진짜 의미도 없는 이야기만 하고 술만 마시고 뭐야 이게! 아니 그래서 왜 불렀냐고요!”


H는 얼마나 당황하고 짜증 났으면 극대노를 했을까. 솔직히 이 상황부터는 나도 별로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저 한라산 10병을 다 마신다는 전제하에 온 목적이 아니던가. 애써 나는 속이 안 좋은 척 화장실에 잠깐 이동했다.


‘어휴.. 그놈의 술이 뭐길래. 그냥 엔빵하면 될 것이지 뭐가 그렇게 술 마시고 싶다고..’


속으로 하염없이 하소연을 해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아차, 생각을 잘못했다. 한라산 3병 삭감이면 따지면 나의 하루 식사를 면제하는 꼴이니 말이다. 재빠르게 타고난 잠재적인 이성 논리 회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깨뜨리는, 바로 옆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깜짝 놀라 다시 고깃집으로 이동해 보았다.


N형님과 K가 아주 만취하여 접시를 들고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을 보고 나는 갑자기 어질하였다. 그걸 또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찍고 있는 H. 굉장히 골 때리는 상황이었다. 사장님도 딱히 수습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맨 정신처럼 보이는 나에게 이 문구를 보여주셨거든.


‘매장 내에서 소름 피우고, 영업 방지, 매장 물건 파손 시 이벤트 무효 및 과중처벌’


“하하하하.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어떨결에 만취자들 대신에 내가 사과를 하는 상황. 뭐였을까. 난생 처음으로 연희동에서 용서 구하기. 예전 학창시절 인근 형님들께 오해 받아 맞을뻔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할 수가 있을까. 하물며 난 피해자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계속 앙금처럼 남아있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나도 막장처럼 놀아보자.’


이성적인 신호가 끊기고 뒤늦게 한라산의 신호가 감지된 것일까. 순간 N형님과 K의 뒷덜미를 잡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를 놓칠 수 없는 연희동 특파원 H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면서 멘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얘는 또 무슨 생각인지 셀카봉을 들고 브이로그를 찍고 아주 쌍으로 난리가 났더라.


사장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한 마디 던지셨다.


“여기 깨진 접시 3개, 한라산 2병 남겼고, 우리 직원 놀린 것에 대한 대가. 아주 돈독히 치러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아까 영업 잘했던 그 장발의 남자한테 칭찬한 것까지 퍼펙트하게 취소. 다 나가!”


그리고 우리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마냥 알콜향 가득한 내음새를 취익 풍기면서 연희동 골목을 서슴없이 걷기 시작했다. 마치 밀림의 야수, 사자로부터 도망가는 아직 철없는 하이에나처럼 다리에는 서서히 힘이 풀리기 시작하는 우리들, 그렇게 짜증이 밀려옴과 동시에 K가 갑자기 내가 쥐고 있던 어깨동무를 뿌리치고 그 옆 전봇대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우-웩”


역시는 역시다. 나한테 술을 잘 먹는 ‘척’을 한다면서 오히려 나를 얕잡아 보던 K는 스스로 자화자찬해버렸다. 아주 칭찬해. N형님은 오히려 기분이 좋다면서 내 얼굴 보고 깔깔 웃으시다가 갑자기 전속력으로 질주하시는게 아니더냐. 그 이후로 필름이 끊겼다. 정확히는 블랙 아웃이었다.


-


무의식적으로 눈을 깼다. 냉방도 안되는 목재 침상이었다. 안개 낀 눈을 겨우 뜨면서 옆 사람을 확인해 보았다. K랑 N형님이 아주 노곤하게 자고 계시더라. 알고보니 찜질방이었다. H는 아마 집에 간 모양이다. 이 빌어먹을 장소에 다시 오게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나이를 먹고 찜질방이라니.


생각해보니 우리가 미쳐 나갈동안 H는 맨정신으로 지켜본 모양이다. 솔직히 굉장히 창피한 가설이었다. 아니 실제 상황이었으면 굉장한 추억임이 분명하더라. 속도 더부룩한걸 둘째치고 술을 곱게 먹어야겠다는 그날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6시.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 어제 고깃집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N형님은 예술과 미래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셨고, K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와 카페 홍보에 대한 조언을 N형님께 구하고 있었다. H는 어떠한 이야기 했더라? 그저 이 친구는 자기 브이로그 올리겠다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촬영만 하면서 응답해주고 리액션만 취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전 여친’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진짜 각자 다른 개성과 자기들만의 고집불통 이야기는 여전히 어질어질했다. 더 이상 이런 모임은 갖기 싫었다. 그렇게 짜증 섞인 말로 이 고집불통 두 명을 깨우고 우리는 온탕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톡에는 H의 깊은 빡침이 담겨져 있었다.


'야이 미친놈들아 어제 내가 다 결제했잖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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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