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일기, 몸부림의 추억>

갓혁의 에쎄이 2

by 갓혁

K는 곯아떨어졌다. 나는 인근 GS 편의점에서 1+1 활명수를 구매했다. 어제 과한 음주의 대가로 숙취제를 구매한 나는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고생 많았으면 그렇게 게워내고 또 자빠질 정도로 아침에 정신을 못 차릴까. 그런데 문득 나 또한 만만치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제 잠시 생각났던 기억은 말이야.


(어제의 기억)


“어머니! 아니 이모! 저의 K가 원래 꿈이 연예인이랍니다! 여기서 한곡 뽑아드리겠습니다!”


“이야~ 내 친구 잘한다! 그럼 그럼 나는 연예인이야! 예술이야! 예술이야! 보여주마 제2의 강남스타일 싸이가 아닌 싸이코로 진격해 나아가자!”


(그 시선을 바라보던 아저씨들이 껄껄껄 웃으시는 장면만 남겨둔 채, 다시 페이드아웃)


KakaoTalk_20220214_213731510_07.jpg 야식 포차에서 블랙아웃이 되어 나랑 K는 연희동에서 고래고래 고성방가하며 이 빵집으로 들어갔다.


순간 아찔했다. 내 마지막 20대를 여기 연희동에서 묻어두다. 그냥 이제부터 아싸로 다시 살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너무 창피했다. 분명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올렸으면 어떡하지? 누군가가 우리 모습 촬영해서 공항 도둑처럼 널리 퍼뜨리면 어떡하지? 그런 소소한 걱정이 어느새 나의 인생 트라우마로 바뀔 때 즈음 나는 어느새 편의점에 도착했다.


“하아.. 안녕하세요..”


“어? 야!”


“어? 어? 어? 야 !?”


서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직원은 알고 보니 K의 친구였다. 이게 뭔 소리냐고? 말로 하면 길다. 그냥 이름을 H로 하겠다. H는 2019년 K의 카페 인테리어 작업 중 만났던 친구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K가 족보가 꼬인 바람에 나 또한 꼬여버렸다. 어차피 1살 차이는 별 차이가 없다면서 그렇게 믿을란다. 그렇게 나는 속이 아픈 몸을 잊어버린 채 이 친구와 30분 동안 편의점 내에서 열띤 이야기를 하였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사실 그렇게 말해봤자 1~2개월 뒤에 다시 본 얼굴이다. 마치 초등학생부터 이어져 온 친구처럼 행세했던 나 자신이 참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H도 또한 얼마나 심심했으면 가야 하는 날 붙잡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사람 마음은 참 모르겠다.


“아, 맞다. 나 K한테 얼른 가야 해. 이거 숙취제 줘야 하는데.”


“K? 또 어제 술 마셨지? 아오 매일 술이냐. 어쩐지 어제 새벽에 계속 나한테 연락하던데.”


“그랬나? 기억이 안 나더라.”


“아니 새벽 2시 3분. 정확히 10번 전화했어. 어제 얘 실연당했어?”


“몰라.. 그냥 속이 너무 아프대.”


“그래.. 얼른 가!”


그렇게 서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어느새 도착한 K의 카페. 그런데 이 자식이 문을 안 열어준다. 설마 또 뻗었나 싶어서 내심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목소리가 아까랑 전혀 다르다.


“으으.. 진혁아.. 나 죽겠다... 장염 걸렸나 봐... 아오... 못 움직이겠어.. 비밀번호 알려줄 테니까 들어와라...”


(가지가지한다 진짜)


그렇게 비밀번호를 재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분명 상쾌해야 할 카페 냄새가 아까랑 전혀 다르다. 파전과 막걸리 진한 냄새가 코 속으로 강렬하게 후벼판다. 우리가 이 정도의 냄새가 날 정도로 어제 많이 마셨다고? 솔직히 인정하기 싫었다. 만약 여자친구한테 걸렸으면 난 바로 헤어졌다. K 덕분에 연희동에서 또 좋은 추억거리를 얻어 간다는 추억은 솔직히 나쁘지는 않았다. 안돼. 그런 망상 가지지 마라. 여자친구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야.


“K야 일어나. 일어나. 야 죽었냐? 진짜 죽었네.”


“으으으”


억지로 빨대를 꽂고 K의 주둥아리를 위로 올린 다음에 활명수를 콸콸 부었다. 순간 콜록 콜록거리는 K는 또다시 화장실로 직행. 그리고 1분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이 모든 게 다 끝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용히 나는 남은 활명수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K가 영업 중에 자주 앉는 프런트 의자에 잠깐 누워보았다. 때마침 점심시간, 카페 내부로 비치는 빛을 바라보면서 잠시 사색을 하였다.


그리고 인근 LP를 무의식적으로 틀었다. 갑자기 나온 노래는 조용필 노래였다. 이 자식 원래 이런 스타일인가? 여기가 카페인지 아니면 LP바인지, 아니면 재즈바인지 와인바인지 너 정체가 뭐야? 인근 K가 아끼던 빨간색 작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역시는 역시다. 소주랑 와인이 즐비하다. 어쩐지 항상 얘랑 전화하면 맨 정신일 때가 없었다.


어느 낮 따스한 점심의 연희동을 맞이했다. 이제 곧 가을인지 9월의 바람은 딱 사람이 기분 좋을 정도로 서늘했다. 그렇게 나는 친구에게 해장하자고 꼬드기고 겨우 츄리닝을 갈아입은 K는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나와 함께 연희 김밥 집으로 이동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였는데, 그 당시에는 마라톤 같았을까.



KakaoTalk_20220214_213731510_25.jpg 연희동 舊 골목길 /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몰려왔었다. 그리고 낯이 익은 카페들과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연희동 추억의 김밥집까지 모든게 낯설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연희 김밥입니다.”


“네네 안녕하세요. 혹시 에어컨 빵빵한 장소 있을까요? 제 친구가 환경 요인 많이 탓하거든요. 양해 구합니다 하하하”


“네네 여기로 안내해 드릴게요.”


사실 거짓말이다. K는 여전히 좀비 같은 행세였다. 어제 옷매무새 깔끔하게 정돈된 K의 모습은 오늘은 마치 노숙자와 같았다. 패딩을 벗겨내니 마치 하루 종일 옥천 HUB에서 상하차 하고온 느낌이랄까. 솔직히 너무 웃겼다. 이럴 거면 굳이 어제 꾸미고 온 이유가 뭐였더람.


“주문하시겠어요?”


“네네 해장라면 2개 주시고요 이 친구 콩나물 못 먹어요. 그러니까 콩나물 빼고 그냥 주세요.”


“(K는 찡그리면서) 아.. 아니요. 콩나물 그냥 넣어주세요. 아 숙취 나물이면 더 좋아요. 그냥 속 좀 풀게 아무거나 다 섞어주세요. 돈은 더 드릴게요.”


“아....”


이 친구 확실히 술이 덜 깼다. 그렇게 우리는 하염없이 폭풍 같은 속풀이를 하고 K는 트림을 한 3번 하고 나서야 드디어 속이 괜찮아졌다고 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역시 술꾼은 해장술보다 해장라면으로 속 푼다는 게 정설이었구나. 그렇게 나는 기분이 흐뭇해진 K를 데리고 함께 어디론가 이동했다.


“다행이다. 오늘 주말이었으니 이렇게 이동했던 거지. 평일 이어봐. 너 나랑 절교였다.”


“야. 여기 연희창작촌 아니냐? 여기 왜 왔냐.”


“아 기다려봐."


인근에서 마주친 어느 건장한 사장님. 멀리 보면 이상순 예술가를 닮으셨지만 알고 보면 츤데레 느낌의 사장님이셨다. 나와 예전부터 안면식이 있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나를 소원하셨던 사장님. 그리고 그날의 흔적들이 입구부터 차례대로 나열되어 전시되었다. 사실 정기 전시회가 아니라서 모든 예술작품을 보기는 드물었지만 말이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갓혁의 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