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혁의 에쎄이 3
아무튼 그 전 과정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 N 사장님은 예술 작품에 몰두하시느라 꽤 곤두박질치는 일상을 하나하나 예술에 기록하고 계셨다. 예술창작촌 내부를 돌아봐도 된다는 허락과 함께 본인이 직접 창작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구경해 보았다.
이제부터 사장님보다는 그냥 형님으로 부르련다.
형님은 예전 큐레이터 경험이 있어서 올 때마다 직업병이 도지신다.
“어, 진혁아. 이거는 나의 몸무게를 의미하는 작품이야.”
“아니 그런데 왜 제주도 흑돼지에요?”
“응 그건 비건이었던 내가 흑돼지에 빠져서 제주도에서 체중이 10KG 더 쪘거든 하하”
“?”
아무튼 이런 소소한 느낌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작품에 비유하다니. 그래도 그 형이 이야기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정말 심도 있고 집중적으로 창작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형, 그럼 이 작품은 뭐예요?"
“응 그 작품은 예전 나의 여자친구를 비유한 거야. 야 그 작품은 너무 노골적으로 해석하지 마.”라고 하시기도 전에 벌써부터 과도하게 해석한 나였다. 덕분에 얼굴은 빨개졌다. 이유는 묻지 마.
“형형 그럼 마지막 이 작품은 뭘 의미해요?”
“응 그건 우리 부모님이야. 회색빛에 물든 우리 부모님..”
“아...”
“세상 살다 보면 우리가 소소히 느끼는 그런 존재, 그리고 곁에 있는 그런 사람들과 사랑하는 인연들도 색깔이 무뎌지거든. 그런 당시 나의 감성을 대변하고 있어. 너도 그렇게 되지는 말아라.”
“형 그럼 지금도?”
“...”
마지막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형은 여전히 사랑했던 그분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한편, 암흑기였던 가족생활을 다시 떠오르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랬다.
여기 연희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렸을 적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자신의 예술을 창작하고 승화시키는 의도가 그들의 어린 시절 배경에서 한몫했다고 본다. 어쩌면 이 N형님 또한 자신이 그동안 품고 숨겨두었던 하나의 예술을 천천히 가시적으로 꺼내고 있는 과도기일 것이다. 형의 아픔은 곧 나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또 다른 과정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내심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혼자 무의식적으로 이 상황을 공개처형하고 있을 때, 예술에 1도 관심 없던 K가 한마디 툭 던졌다.
“아, 그놈의 예술 예술. 이제 그만하고 가야지. 진혁아 넌 너무 예술만 따져. 그렇게 모든 걸 감각적으로 살아가면 언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볼래? 엉?”
“아니 갑자기 이 분위기에서 그게 할 소리냐. 넌 눈치도 없냐.”
“뭔 놈의 눈치. 어제 네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기억 안 나냐?”
“내가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어제 다 필름 끊겨서 기억 1도 안 나거든. 거기 노포 사장님만 아시는 내용 일 텐데. 아무튼 어떤 내용인데? 넌 기억해?”
"네가 그랬어 인마. 세상은 너무 이기적이고 각자도생이라 예술 따위는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고. 사랑 또한 예술이지만 겉과 속이 다른 물질적인 충동 과정이라고 네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니까? 그것도 실연 당한 나한테 그게 할 소리였냐?”
“........? (뭔 소리야)”
아무튼 또 말다툼이 이어질 뻔했던 당시 상황. 어제 K의 기분도 꿀꿀했고 모처럼 내가 좋아하던 창작 전시회를 구경하러 같이 힐링 겸 전시회에 왔지만, 이 친구는 또 어젯밤 우리가 했던 내용을 마치 녹음했단 듯이 꼼꼼히 기억하더라. 갑자기 짜증 났다. 아니 부질없는 이야기도 그저 흘러내리면 되는데 내가 어제 말실수했나? 욕 안 했으면 다행이지. 순간 N형님이 우리를 말리셨다.
“아이고 둘이 갑자기 왜 싸우십니까. 그것도 이 아름다운 전시회에서 말이야! 다 나가! 아 참, (K를 보고) 성함은 모르겠지만 괜스레 욱해서 죄송합니다. 그저 저의 창작 작품을 보고 싸운 줄 알고.. 아무튼 방금 좀 짜증 났어.” (살짝 인상을 찌푸리지만 3초 뒤 금세 인상을 푸신다. 그리고 담배를 문다.)
K는 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듯했다. 아니 솔직히 나도 조금 민망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예술에 대해 논하다가 어제 속상한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점이 참 부질없지만 전시회에서 가끔 싸움 구경한 사람들도 많잖아?
“형님.. 사장님..? 네 아무튼 죄송합니다. 어제 이 친구랑 노포에서 술 마시다가 싸울 뻔했어요. 하하하.. 괜스레 사적인 일을 여기 소중한 전시회에서 하소연하여 죄송하오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친구의 센스 있는, 기승전결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통했는지 N형님도 이내 인상을 활짝 펴고는 담배를 깊게 피시며 한 마디 하셨다.
“아, 오늘 모처럼 주말이라 기분도 좋았는데 기분 잡쳤네. 이럴 때에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나를 보는 K)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순간적인 나의 무의식적 흐름 속에서) 고기앞으로...”
(순간 다들 벙찌면서 5초 이내에 화답을 가진다.)
“하하하하하하”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또 다른 술 메이트를 만든다고? 진심이 사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았을 때 나 또한 어벙하게 연희동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런 상황을 누가 알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당시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공유되면서 우리는 한 메이트가 되어 이동하는 중이었으니.
“진혁아 요즘 일 할만 하냐? 나처럼 반백수 되지 마라.”
“형님은 그래도 예술작품이라도 만드시고 밥벌이하시잖아요.”
"자식아 예술에 수익을 따지냐?”
“그럼 왜 매일 주식 사이트를 계속 올려요. 다 파란불이더구먼."
“아오 진짜 너 일로와봐."
그 상황을 지켜보던 K는 그저 킥킥 웃으면서 자신이 주식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더라. 여자친구 덕분에 주식을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 상품이 선물이었단다. 그 거창한 돈이 어디 있고 어떻게 선물까지 가게 되었는지. 내가 아는 선물이랑 달랐다. 친구가 말했던 것은 축하 기념일로 사람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감동 선물이 아니었다. 그날 이 친구로부터 하나 배운 점.
“야, 선물은 말이야. 돈에서 돈으로 나오는 거야. 이것 봐봐 빨간불이잖아.”
진짜 이 친구 주둥아리 한 대 치고 싶었다. 그 광경을 또 지켜보는 N형님은 또 조용히 전자담배를 피우신다. 냄새가 황홀했다. 그녀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녀는 담배를 전혀 피지 않았다. 연희동에서 여자친구가 담배를 피운 광경을 본 적도 없었다. 아니면 나의 착각이었을지도.
어느새 도착했다. 그리고 버젓이 붙어있는 고깃집 사장님의 센스 있는 문구. ‘오늘 소주 10병 이상 마시면 소주 3개 삭감. 불가능하면 꺼져’ 이 문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던 나와 N형님, K는 조심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갓혁의 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