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혁의 에쎄이 9
그렇게 잠깐이지만 온탕 속에서 많은 깨달음과 사색을 얻어 갔다. 조용하고 한적한 아침 7시의 연희동 어느 찜질방.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아마 평일이므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N형님은 체력 해장이 다 되셨는지 밖으로 먼저 나가셨다. 이참에 K랑 어제 있었던 진지한 이야기를 마저 하기로 하였다.
K는 당시 임대가 저렴한 연희동에 왔지만 노력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았던 부진한 매출액과 자신의 카페 경력이 어리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책을 하고는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온전히 본인이 선택한 연희동 카페 창업이었고 뭔지 모를 그 서늘한 눈가에서 그동안 후회와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린 녀석의 눈동자를 보고 말았다. 어제와 다르게 굉장히 불쌍한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내 감성이 이 친구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만 정확한 사정을 인지한 후 후자에 더 밀접하게 다가갔다.
잇달아 K는 나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여행사 일이 너에게 맞다고 생각하냐? 그러니까 수익뿐만 아니라 너의 자기계발과 미래 발전에 다가가고 있는 중이냐.”
어쩌면 이 K 또한 나와 똑같은 생각을 미리 물어본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여행사 업무를 본지 어느덧 1년 가까이 다가왔고, 생각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수익은 물론이고 전공과 다르게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업무와 이에 따른 회의감이 들었던 9월이었다. 사실 원래 꿈은 여행 가이드 혹은 관광 통역안내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귀찮음과 공부 머리가 뒤따라오지 않자 무작정 전공을 살려 전향했던 곳이 바로 여행사 TM이었다.
사실 영업이라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 일을 하는 내 성격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저 삭막한 사무실 내에서 네모 칸막이와 모니터 앞에 9시간 동안 하루 종일 있어야 하며 귀에 피가 섞일 정도의 전화를 하루에 100개 이상 받아야 하니 일명 ‘콜 포비아’가 생길 지경이었다.
어쩌면 이것 또한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 또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얼른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내 편이 아니었는지 잠깐 빗겨 지나갔다. 그리고 K 또한 나의 눈시울이 붉어질 때쯤 괜찮다면서 서로 등을 밀어주기로 약속했지만 남자끼리 무슨 변태 같은 짓거리를 하냐면서 나는 당차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K는 그 자리에서 혼자 뻘쭘하게 때밀이를 하고 있었지.
밖으로 나오자 N형님은 문득 자신의 가방에 있는 손수 제작한 디퓨저를 보여주시기 시작했다. 요즈음 제작 원클래스로 만난 여성이 있는데 친한 사이는 아니고, 그저 초면인 상태에서 썸이 되어버린 이유의 본보기였다.
이 형님은 역시나 카사노바 같은 성격으로 자신의 취미 생활에서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고귀한 능력까지 탑재하고 있다. 같은 ENFP이지만 이 형님은 찐 ENFP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술 관련 이야기뿐만 아니라 K에게 마저 이야기 못했던 여성의 심리와 언어 공감대 향상해주는 말투까지 이 형님으로부터 배워갔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고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딱 봐도 두 명과 이야기를 하고 상담, 소통이 이루어질 때 이렇게 도식화된다는 부분에서 참 지금 글을 기록하는 나도 어이가 없더라. 역시 사람은 다르고 성향이 제각각이고 그래서 완벽할 수 없다는 점에 난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N형님과 이야기가 끝난 후 뒤늦게 탈의실로 온 K는 군계란과 식혜 먹자면서 재촉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 또한 빠질 수 없는 매력 요소에 얼른 N형님을 설득하기도 무섭게 먼저 또 전속력으로 매점으로 질주하셨다. 이윽고 우리는 1인당 식혜와 군계란 3개씩 섭취하면서 어제 잠시나마 서로가 풀었던 썰의 결실을 맺기로 한다.
“그래서 어제 누가 계산했는데? 나 전혀 기억 안 나. K야 너 어제 토 오질나게 하더라. 하하”
“아오, 형님도 어불성설이셨어요. 아주 치타처럼 연희동 모르는 주택가 벨 누르려고 하다가 우리 겨우 말렸잖아요. 어휴”
(에휴) 내심 멋쩍은 입맛을 다지면서 속으로 어제 있었던 이들의 전후 상황을 풀고 싶었지만 지금도 맨 정신이 아닌 이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랄까. 더군다나 나도 어제 이동 중에 필름이 끊겨서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문득 들었던 생각은 H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아, 맞다. H가 어제 고깃집 결제했다고 하던데요. 꽤 화나 있던데...”
“허허. 큰일이네. 내가 불러놓고 괜히 욕먹는 거 아닌가. 이러다 우리 절교하겠다."
그와 동시에 재빠르게 연락을 했지만 ‘지금은 업무 중이오니 잠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방지 메시지만 남긴 채 우리는 어벙벙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최대한 궁리를 해보았다. 어쩌면 H는 앞으로 우리를 만날 생각이 없을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을 불러 놓고 해괴망측한 우리의 추한 모습을 보고 잠시 정신이 아찔해서 차단을 해놓은 것인지 말이다. 이와 동시에 또 현실적인 답례에 관해서 K가 한소리 들먹였다.
“전에도 나랑 같이 술 마시면서 본인 혼자 취하지 않는 척 고귀한 척은 다하더니 그렇게 우리를 쌩까시겠다? 너무하네-”
“그게 무슨 소리야?”
“일부러 본인은 술 적게 먹고 남들 취한 사진 올린다니까. 우리 연희동 사진 출사 동호회가 있는데 나랑 H도 여기 가입되어 있거든. 동호회 출사가 끝나고 회식하러 가면 항상 얘만 안 취하고 다음날 눈뜨면 본인이 이상한 사진이랑 우리 만취한 동영상 올려서 괜스레 민망하게 해 준다니까. 아오. 이럴 줄 알았어!”
“하하하”
그저 K는 그동안 자신의 엽사(엽기 사진)의 이유가 다 H라는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H가 잘못한 점은 정말 친한 사이끼리 보내는 것은 괜찮지만, 공동체 중심의 단톡방에 사적인 사진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조금 실례 아닌 실례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난 솔직히 K 잘못도 크다고 생각했다. 그럼 본인이 그렇게 만취하지 말던가. (솔직히 나는 K 편을 들고 싶었지만 상황 전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나니 이 친구 또한 매번 취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더라. 특히 정신 나사가 빠지면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여도 괜스레 치근덕거리고 상대방을 얕잡는 말을 자주 했다.)
“K야 너 잘못도 크다.”
라고 내가 이야기한 게 아니라, N형님이 먼저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대뜸 발언을 하셨다. 형도 사실 어제 상황을 기억 못 하시는 건 아닌가 보다. 그저 모르는 척하시거나 아니면 일부러 분위기를 망칠까 봐 본인도 참고 있던 게 아닐까 했다.
K는 조용히 말문이 막힌 채 시무룩해지면서 군계란만 입으로 씹고 있는 중이었다. 순간 속으로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본인이 억울한 것은 둘째치고 상대방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거란 역지사지도 동시에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므로 우리는 더 이상의 핑계와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속이 허기졌다.
“형님, 우리 해장하러 일단 나가죠. 여기 있다가 오늘 또 인생 낭비하겠어요.”
“그려 그려. K야 너도 같이 가자. 아까 욱해서 미안해잉”
“아닙니다. 형님. 같이 나가요!”
역시 남자들끼리는 싸워도 술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 삼국지 시리즈의 모든 영웅들은 서로 간 군신관계가 아닌 형제 관계를 맺기 위해 그 고약한 유교 문화를 비롯하여 서로 우애, 형님 할 것 없이 아주 친목 도모했을 것이다. 어제 고깃집에서 또한 도원결의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복숭아 동산이라고 치부하기도 뭐한 연희동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서로 말로 형용하지 못할 암묵적인 텔레파시를 보냈음이 틀림없다. 속으로 흡족해하면서 이 또한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되살려보았다.
2019년 9월 어느 화창한 가을.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의 추억과 기억은 다시 상기된다. 기록은 유물이 되어가며 우리의 소중한 추억은 단지 남들이 보기 위한 수단이 아닌 소중한 유산이 되어갈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라산 10병은 어쩌면 도원결의주가 아니었을까. H는 그럼 삼국지 영웅이 아니었나? 내심 미안해진다.
Ps.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당부할 전달 사항
외람으로 꾸준하게 연희동 일기를 관람해주시는 익명성의 구독자분들, 그리고 잠재적인 고객님들께 감사의 한마디 전해드립니다. 기억 왜곡과 날조로 분명한 저의 3년 전 기억은 단순히 일상적인 이야기임을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코로나 상황이 지속적으로 장기화됨에 따라 가끔 옛 추억과 기억을 회상하시는 분들을 위한 작지만 소소한 저의 에세이를 기재하면서 본디 제가 먼저 여러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 시기적으로 어려운 한편, 언젠가는 긍정적인 날이 오길 간곡히 기대하면서 진부한 저의 일기 끝까지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무관심 또한 사랑이지만 언제나 환영이지요 :D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