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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r 06. 2022

강서구의 이면과 진실.

갓혁의 동네 철학

강서구 토박이로써, 혹은 마곡동 주민으로써 이 글을 기재합니다. 이 글은 어떠한 목적으로 우리 동네를 비하하거나 칭찬할 포스팅이 아님을 먼저 명시합니다. 다만 제가 요즈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주 느끼는 감성을 동네에 대변하여 쓴 글이며 다소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있을 수 있으니 뇌 건강 유의 부탁드립니다. 하하.


우선 강서구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사실 저희 집은 우장산과 봉제산 사이에 있는 전설의 벼가 많이 자랐다는 (지금은 당연히 주택단지) 화곡동입니다. 무려 이 화곡동에서 의식주 해결을 하면서 똥도 싸고 발도 닦고 다 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학교도 강서구 외로 이동해 본 적이 없네요. 그런데 하나 의심이 들었던 점이 강서구가 가지는 미묘한 감성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골목투어가 아니라 강서구에 대한 진실과 추억을 하나하나 펼쳐보기로 합니다.



첫째

강서구는 서울 안에 있는 유일한 평야지대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넓은 평야 지대를 대략 40프로 이상 보유했던 유일한 서울 곡창지대입니다. 참 말로 형용이 어려운데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이해갈 듯합니다.


2011년 강서구 마곡역 (네이버뷰)


2011년 강서구 발산역 (네이버뷰)


감개무량하다고 누군가 이야기하던데, 쉽게 이야기하면 강서구 북쪽 공항동과 마곡동 사이(현재 공항동이 법정동), 발산동 왼쪽까지가 농촌지대였습니다.


파란색으로 칠한 부분(김포공항~방화동-공항동-마곡동-발산동 일부 포함)


제가 2010년대 초에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인근에는 울창한 수풀과 논밭에 거름을 피우고 있는 농촌 마을을 고스란히 유지한 마을이었지요. 한때 일산에 사는 친구가 강서구로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한강을 건너 발산역을 거쳐야 하거든요. 그런데 발산역 근처에서 밥을 먹으며 피시방에 놀러 갈 때 친구가 하는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여기는 무슨 시골 같냐."



당시 저도 어린 나이에 뭐라 정확한 답변을 남길 수는 없지만, 고등학생 친구들과 일산에서 온 친구와 함께 논밭 야외 농구장에서 야밤 농구를 한 판 때린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인근 '황금오리'라는 맛집으로 이동하여 1인당 오리 한 마리씩 뜯고 집에 가곤 했어요. 그게 얼마나 인상이 깊었냐면 주택단지가 많은 화곡동을 건너고 우장산까지 이동하고 조금 더 강서구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거름 피우는 냄새라고 할까, 그리고 향토적인 시골 음식 냄새가 확 풍겼다니까요. 그때에는 일부러 그 근처도 얼씬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무서웠으니까...


야밤에 운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당시 2008년 무한도전에 나왔던 '오쇠리 마을'도 구경하러 갔답니다.


참고로 오쇠리 마을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지도상에 흔적조차 없는 마을이에요. 원래 미군부대 기지가 자리 잡았던 40년 유구한 전통이 담긴 마을이지만 인근 김포공항 부지 활성화와 골프장 신설로 인해 소음 피해를 받는 주민들이 부천으로 강제 이사했다는 썰이 만무했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 소식조차 그냥 그런 거구나 했어요. 학생 입장에서는 그저 어스름한 밤에 이 골목을 지나가면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서웠으니깐 말이죠.



2008년 무한도전 촬영 장소 : 오쇠리 마을


2022년 오쇠리 마을 (네이버뷰)


진짜 아예 흔적조차 남지 않았죠? 그래서 더 각인되었던 학창 시절 골목투어였어요. 당시에는 겁도 없는 친구들과 난생처음으로 야밤에 강서구 투어를 많이 하고는 했거든요. 그 핵심지역을 하나 둘 생각한다면 대표적인 지역이 딱 3 곳이었어요.


1. 오쇠리 마을

2. 공항동

3. 마곡동


왜 이 세곳을 택했냐면, 아까 위에 언급했던 사진을 보면 농활 체험하러 가는 일종의 모험 심리랄까요? 그게 각성 기제로 작용되었습니다. 매일 교육열에 빠져 허덕이며 숨이 막혔던 고등학생 시절에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했던 게 바로 강서구 투어였어요. 이름 모를 오지를 체험하면서 당시 스마트폰이 나오기 직전 18살에 메모지로 기록하면서 언젠가는 다시 친구들과 투어하길 간절히 바랐던 그날의 추억. 그리고 저희들만의 메모지를 바로 이 오쇠리 마을에 고스란히 묻어두었는데 어느새 그 자리는 골프장으로 새로 바뀌었습니다.




둘째

김포공항으로 인근 동네는 전면적으로 개발이 제한되었고 고도제한이 있어요. (공항동, 방화동)


이에 따라 항상 김포로 출장 갈 때마다 느꼈던 점은 '도대체 이 공항동은 언제 개발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만무했어요. 사진으로 보면 딱 아실 겁니다. 공항동이라는 지명은 인근이 김포공항이 있어서 그렇게 지었답니다. 참으로 순수했던 옛 지명의 유래.


2011년 공항동 막걸리 골목 (네이버뷰)


참고로 이 장소는 추억이 많아요. 물론 막걸리를 마시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오해는 금물이고, 옆에 공항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거기서 친구들과 항상 농구도 하고 축구도 했습니다. 대여를 따로 하는 시스템이 예전에는 없었고 그저 공터면 무조건 달려들어 자리를 잡고는 했어요. 그게 약육강식이었지요. 어쨌든 생각보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동네라고 생각이 든 이유는 차들이 많이 없었습니다. 단지 조용하게 지나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연세가 꽤 드신 토박주민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분들이랑 이야기할 여유도 없고, 굳이 이야기할 껀덕지는 없었지만 여느 사회인이 되어 그분들과 이야기할 타이밍이 생겼어요. 바로 이 막걸리 골목에서 고등학생 친구와 술을 마실 때죠. 정확히 기억납니다. 2018년 어느 여름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친구와 막걸리를 먹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로 이동했던 곳이 이 골목 사이를 누비면서 '허술한 집'이라는 맛집을 찾게 되었어요. 간판부터 허름해질 듯한 느낌이랄까.


아 여기 있네요.


허술한 집 / 2022년 기준 (네이버뷰)


인턴 관련 이야기를 나눴던 그 여느 여름밤이었어요. 막걸리를 시켰는데 무려 동동주처럼 한 사발로 내놓아 주시더라고요. 사장님은 젊으셨고, 아주머니께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굉장히 친절하셨어요. 막걸리가 5000원인 걸로 기억해요. 지금은 물가를 모르겠어요. 마치 노포를 연상하는 분위기와 비가 오는 장마철을 대변해 주니 환상의 궁합이 따로 없더랍니다. 그리고 친구와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던 도중 어느 아주머니가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알고 보니 여기 공항동 50년 토박이라고 하셨어요.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어쩌다가 공항동 개발 관련 이야기를 친구와 꺼내려고 했던 타이밍이었거든요. 마침 그 상황을 들었던 아주머니는 냉큼 한소리를 하셨습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이 녀석들이 돈을 우리에게 안 줘~ 지원금도 안 주는데 무슨 개발을 하겠다고 지롤을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우린 절대 반대야."


이 한마디를 정겹게 하시고는 막걸리를 한잔 서비스로 더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욕쟁이 할머니처럼 행동하셨던 그 아주머니가 참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이 막걸리 골목길은 마치 을지로를 연상하게 해줘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오래된 골목 상권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하고 낭만을 가꾼다는 느낌이랄까요. 코로나 터지기 전 만선 호프가 이런 느낌이었잖아요. 딱 그 상황이랑 매칭되는 구조였어요. 그리고 인근 잘생기고 예쁜 스튜어디스, 스튜어드, 공항 직원분들도 가끔 회식하러 다녀가곤 했어요.


근처가 김포공항이고 사실 상권은 이 공항동 밖에 없던 셈이죠. 그래서 가끔 일반인들과 공항 직원들끼리의 기싸움도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친해지면 같이 술 게임하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하기도 했어요. 그때가 코로나 터지기 직전인 2018년이었을 겁니다. 참으로 생각납니다.


인턴에 막 취업한 친구와 썰을 풀고

공항동 아주머니와 재개발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김포공항 직원분들 혹은 스튜어디스, 스튜어드 분들과 함께 술 파티


이 삼단 콤보의 그 자체는 바로 '허술한 집'이라는 작고 소중한 저의 옛 기억에서 만들어지고 추억이 되었답니다.



셋째.

강서구는 많은 군부대가 존재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마곡동 아파트 옆에 군부대가 있는데 3년 전에 어디론가 이전했답니다. 지금은 마치 흉물처럼 바뀐 조용하고 써늘한 군부대가 되었어요.


색칠된 지역 / 방화대로 사이에 있습니다.


정식 부대 명칭은 모르겠으나 신월동으로 가는 방향에 '독수리 부대'라는 특공여단이 따로 있습니다. 아마 그 예하부대가 아닐까 해요. 지금은 삭막한 아파트 단지로 바뀐 마곡동 사이에 위치한 공터 같아요. 마곡동으로 이사 왔을 무렵이 아마 2017년 중반으로 생각됩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필리핀 가이드를 했을 때인데, 당시 어머니가 이사 도와달라면서 잠시 한국 귀국을 했거든요. 난생처음 보는 마곡동 풍경에 입안이 쩌억 벌려졌어요. 여기가 제가 아는 마곡동이 맞았나 싶었지요.


개발은 2014년부터 진행되었고 2017년 완공되었으니, 그리고 현재에도 아직 마곡 부지에 여러 대기업이나 인프라 시설을 구축 중이에요. 그래서 이 군부대가 가지는 미묘한 감성은 마치 옛날 제가 20대 입대한 그 느낌을 물씬 받도록 해주었어요. 특히 새 집에서 잠을 자는 첫날밤, 정확히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인근 낯이 익은 군대 기상나팔소리가 제 귓속을 후벼팠답니다. 전 마치 군대 꿈을 꾼듯이 몸을 아주 벅차게 깨웠습니다. 다행인 건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죠. 아주 개 같은 꿈이었어요. 놀라운 점은 아파트 단지 넘어서 창문을 바라보면 군인들이 헛둘 아침 조회와 체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구보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마치 그 당시 기준으로 5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제가 2012년 5월 어버이날에 입대했으니까 말입니다. (TMI 그만) 그래서 다시 필리핀으로 일하러 갔을 때에도 그 기상나팔소리 트라우마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 다시 한국에서 첫 직장을 잡을 때 어느 순간부터 아침 구보 소리가 안 들렸습니다. 인근 주민들의 회의에 따르면 인프라에 군부대가 껴있으면 상업 발전을 저해하고, 땅값을 낮춘다는 부동산 정책이 발현되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의아했는데 나중에 엘리베이터 공지사항에 올려지자마자 이해했어요.


알고 보니 저희 아파트 단지 주민대표뿐만 아니라 인근 여러 아파트 단지에서 소송장을 냈답니다. 군부대 이전해달라는 간곡한 하소연의 찌라시가 바닥에 억눌러져 있는 그 2018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독수리 아파트 (군인 아파트)


생각해 보니 저희 집 앞에 독수리 아파트라는 자그마한 아파트가 있었어요. 무지막지하게 작았어요. 저희 아파트에 비하면... 그런데 그 묘한 매력에 이끌리는 게 사람 심리일까요. 여전히 학창 시절 습관 못 벗어났는지 또 친구 몇 명을 섭외하여 이 아파트 골목을 누비기로 했습니다. 모험 심리 습관 무시 못 하네요. 하하


그런데 인근에 계신 경비원이 절대 저 아파트로 들어가지 말라고 억장을 부리셨어요. 그것도 들어가는 순간 통지 소송 걸 테니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들어가지 말라는 건지 저는 1도 이해가 안 됐거든요.


그래도 몰래 들어갔던 당시 풋풋했던 청년들이었죠. 한 야밤이었어요. 경비원 몰래 들어갔어요. 친구는 랜턴을 몰래 가져왔더라고요. 그리고 위 사진에 보이는 입구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군인 아파트였어요. 바로 앞에는 보초병들이 서 있었고, 주위 군인들은 왜 민간인이 함부로 들어오냐면서 나무랐어요. 사실 이미 성인인 저희들도 대뜸 말대꾸를 했지만 이미 위법을 저지른 저희가 잘못했죠. 그래도 그냥 경고음만 날리시고는 얼른 나가라고 독촉했던 해당 아파트 경비원분과 군인 간부들 덕분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보초병과 친해졌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저희가 그 보초병에게 초코파이를 던져준 기억이 나요. 입대 후 고생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던 저희는 당연히 현역의 입장을 당연히 알고 있었죠. 국방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는 아쉬웠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던져준 초코파이를 받고 감사하다며 눈인사 하던 어느 병장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옆에는 일병이 꼿꼿하게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병장은 그 일병에게 긴장하지 말라며 이런 경우도 있다면서 당직사관에게는 비밀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군 생활을 서울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신기했어요. 마치 대관령에 있어야 할 부대를 그대로 서울 강서구, 그것도 저희 집 동네 옆에 붙여놓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더 내적 친밀감이 생겼고 어느 날만 되면 계속 그 병장을 보기 위해 항상 이 자리를 지나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전역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늦은 새벽 2시였습니다. 마지막 근무였대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저의 연락처를 메모지에 적어서 비행기를 날려 그 병장한테 보내줬어요. 그 편지를 읽은 병장은 꽤 감동하였는지 하염없이 울었답니다. 저는 그저 그 곡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새벽 3시까지 이야기 후 집으로 귀가할 때, 어머니한테는 잠시 친구를 만나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죠. 그리고 다음날 군부대 그 병장은 사회인이 되어 정말 저의 친구가 되었어요. 바로 그 친구가 연희동 일기에 나오는 K입니다...하하하하핳


무슨 공동경비구역 JSA 보는 느낌 나지 않나요? 실제 강서구에 사는 저 또한 군부대에서 이렇게 친한 동료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군종병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방화동이라는 지역이 있어요.


여기는 인근에 개화산이라는 120m 조금 넘는 산이 있거든요. 사시사철 꽃이 핀다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그건 사실 좀 과장이지만 그만큼 개화산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공방이랑 카페도 많았어요. 특히 방화동이랑 개화동이 연결되어 있는데, 강서구 북쪽 개화산 자락 따라 위치해 있어요.


방화동 2022년 기준 로드뷰 (네이버뷰)
방화동 2014년 기준 로드뷰 (네이버뷰)


방화동 2011년 기준 로드뷰 (네이버뷰)


옛날 떡 방앗간이라고 합니다. 인근에는 방화6구역이라는 재개발 업체가 있어요.


위에 사진들을 비교하면 여느 골목과 동네 이미지에 대한 차이가 없죠? 비록 10년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더 친숙하고 감성 있어요.


강서구에 이런 곳이 많이 없거든요.


참고로 방화동 또한 김포공항에 따른 고도제한으로 개발이 덜 된 지역이에요. 아까 공항동처럼 마치 80년대, 90년대를 보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가끔 친구들과 골목 여행하기도 딱 좋은 곳이랍니다. 그런데 예전 같지가 않아요. 낙산공원 이화마을이나 서촌 마을처럼 그렇게 특색 있는 동네도 아니고 북촌 한옥마을처럼 전통이 깊은 동네도 아니며, 심지어 문래동처럼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곳도 따로 없어요. 연희동, 연남동이 되길 바라는 강서구 주민들의 반발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강서구청에 따르면 제일 먼저 상권 개발과 재개발을 위해 앞으로 발전시킬 곳이 '공항동'과 '방화동'이라고 해요. 그만큼 절실한 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내용이었기 때문이에요.


말이 길었지만 저 또한 성인이 되고 어느덧 2021년이 되었을 때 한참 잘나가던 인근방 카페거리가 싸그리 조용해지고 어느새 대부분 공실만 유지하고 있어요.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아마 코로나의 영향이 컸겠죠. 그리고 인근에서는 재개발을 바라는 사람들의 각종 소리가 나날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 시작점이 바로 '방화동'이었으니까 말이죠.


제가 최근에 공항동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이 근방을 지나쳤어요. 카페 구경하는 김에 간 거죠 뭐. 그런데 정말 예전 같지가 않다는 말이 계속 속으로 말해지더라고요.


방화동 재개발지구라는 문구와 피켓이 곳곳에 물들기 시작하고, 윤석열 후보가 이 강서구를 전면적으로 고도제한을 없애고 상권 개발을 위한 재개발을 하겠다는 강서구 공약을 내걸었더라고요. 말이 참 쉽지. 사실 사람이 못 미더운 것도 있고. 예전부터 박원순 서울시장뿐만 아니라 현재 서울 오세훈 시장도 이 강서구의 옛 동네인 '방화동'과 '공항동'을 어떻게든 개발시키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어요. 대신에 옆 동네는 바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말이죠.


거기가 바로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마곡동이에요.

그리고 이제부터 방화동의 진실된 기록을 올리기로 합니다. 앞으로 재개발로 인해 없어질 그러한 동네이기에 사진 한폭에 담아 기록으로 사유하려고 합니다.


옛 전조등과 빨간 벽담
카센터인데 이름을 잘 모릅니다.그나저나 할아버지께서 공구류를 제조하고 계셨고그 찰나에 찍었습니다.
고분하게 놓인 여러 항아리들이 방화동 여느 골목길에 있네요.
공항 교회가 여전히 불을 켜고 있지만 예전 같지가 않아요.
특히 옛 감성 돋보이는 전조등과 변압기, 우편함, 굴뚝은 여전하네요.
쓰러져 가는 처마 밑 거미줄이 인상 깊었어요.
뒤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로 앞에는 옛 전통 한국식 양옥이 있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기이하고 신기했어요.
심지어 따릉이 대여소도 구모델이에요. 그리고 흘부러져 있어요.강서구에서는 이 동네에 관심이 없는 걸까요.
작은 동네를 벗어나 밖으로 빠져나오니 아파트 단지가 등장합니다.
아까와 전혀 다른 느낌




방화동 끝자락에서 불과 5분 걸었을 뿐인데, 갑자기 현대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이때부터 기분이 기이하고 아이러니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분만 걸으면 코앞이 저희 집입니다.


마곡동의 진실을 대변하는 이제는 사용 안 하는 버스 정류장
방화대로를 사이로 왼쪽과 오른쪽의 확연한 차이


방금 저는 방화대로 왼쪽에 있는 방화동 사진을 올렸습니다. 네이버 지도를 보았을 때 긴 건너 오른쪽 마곡엠밸리 아파트 단지와 확연히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옛날과 현대가 공존한 강서구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고민이 많은 재개발 시점입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재개발 장소들을 보면 그 동네를 대표했던 연식 장소를 많이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서촌 마을을 누비다 보면 온전한 옛 예술가 마을 형태를 지닌 주거 단지와 아래쪽으로 갈수록 상권이 짙어지는 특색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예술공방을 만들어가고 있었죠.


그 리모델링 사례가 바로 '오에프알'이었어요. 여러 젊은층들의 인기를 사로잡고 있는 그 특유의 공방 서점과 독립서점의 절묘한 조합이랄까요.


강서구 주민 투표에 의하면 현재 공항동과 방화동을 어떻게 살릴 것이고 골목 상권을 부활할 것인지 논의 중입니다. 저 또한 그 일부 중에 한 명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소중한 관심도 조언이 전 무척 기대됩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강서구의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평야지대가 많았던 동네

2. 군부대가 있었던 동네

3. 고도제한이 있는 동네

4. 방화동 재개발로 인한 논란

5. 현대와 과거의 공존


솔직히 아직 할 말이 더 많은데 너무 정치적으로 이야기할 듯해서 참으려고 합니다. 다만 옛 추억을 되살려드리는 것은 덤입니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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