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굉장히 조용한 동네. 그래서 슬프다.
<밤에 보기 좋은>
혜화동의 밤 (골목 감성을 묻다) (brunch.co.kr)
이번 주말에 혜화동에 갈 일이 있었다. 여유로운 마음의 갈채를 하나하나 쌓아가며 어느덧 3월을 맞이한 나. 그러면서 예전 대학생활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혜화동으로 이동해 보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멀리 퍼지는 소소한 대학가라는 점에서 여전히 온전치 못한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청춘의 앞길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 무리에 포함되겠지.
시간이 어느덧 흘러가면서 나 또한 대학생이었음을 직감했던 또 하나의 직관 장소였다. 예전 대외활동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속으로 하염없이 갈망했던 사회인이었지만 사실 어쩌면 5년 전 한창 대외 활동하면서 대학 생활을 누리던 그때가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청춘'이라고 읽고, 한편으로는 '추억'으로 한 번 더 읽고 싶어졌다.
최근에 대학 라이프를 살린 드라마를 밤마다 구경하고 있다. 비록 자기 전에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어느새 다시 추억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대학생 때에는 드라마 '치인트'와 '응답하라 1988'을 보았고, 대학생의 라이프가 이런 느낌이었다는 것마저 그저 감미롭게 받아들였다. 이제는 그 감성은 온전히 사라진 셈이다. 그렇지만 봄이 다가오면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청춘의 색깔은 나에게 또 하나의 고단한 기록을 가져다주겠지.
고리타분하고 회색 빛깔,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권력욕이 자극되는 대기업의 숲을 넘어 혜화로 들어서면 이유 모를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참 희한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강남과 테헤란로, 그리고 서울역이 나의 낭만이길 간절히 바랐던 2016년 취준생 시절의 나. 그러나 이제는 지겨워서 그 회색의 번쩍번쩍한 고층 건물들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혜화로 이동했다. 삼삼오오 모여 짝을 이룬 커플들의 화목한 웃음소리, 그리고 가족애 섞인 아이의 꽃봉오리 같은 앵두 입술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으로 예술가들이 거닐고 거닐던 하나의 상가를 무심히 지나갈 때 비로소 나의 마음이 온전히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의 마음 또한 하나의 젠트리피케이션화 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 심란하지만 한편 여유를 잠깐 가지고 싶었던.
불분명한 사업 속에서 오히려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그래도 마음의 풍요로움을 잠깐 누릴 수 있었던 나의 젠트리피케이션.
천천히 아르코미술관을 떠나 '이화마을' 방향으로 이동했다. 포근함이 깃든 인도와 도로변, 그리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여러 조형물이 여전히 아른거렸다. 그리고 나의 마음 한편에는 앞으로 이 추억 또한 머지않아 사라지기에 조심스럽게 이동해 보았다.
혜화가 가지는 고유의 골목 지명 또한 유서가 깊다. 원래 혜화동 부지는 서울대학교 본관이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사범대학 부설여자중학교만 남겨둔 채 관악으로 이동하였다. 그래서 혜화동의 추억에 빠진 1,2대 서울대 모교 졸업생들은 동창회를 통해 곳곳에 젊음의 흔적을 부각하고 모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가 바로 인근 소규모 극장들의 흔적이었다. 더군다나 아르코미술관 직원들을 위한 복지서비스 정책을 처음으로 강구한 사람들이 원래 이 서울대 모교 출신 사람들이었다.
그 지역의 동네를 그리워하는, 그리고 모교가 그립고 아쉬워 다시 돌아본 골목의 흔적에서 기 졸업생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엿한 사회의 한 무리가 되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잘 아냐고? 2016년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서울 거리예술축제' 서포터즈 활동 당시 서울대 동창회 사람들의 지원을 받게 되었고 거기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역시 세상 참 좁다.
낙산공원 방향으로 꺾다 보면 '이화장'이라는 사적 장소를 보게 된다. 3월 초봄의 오후 5시에 바라보는 맑은 하늘, 우두커니 서있는 이름 모를 소나무의 굳건함, 그리고 빨간 담벼락의 조합이 이를 증명한다. 이화장은 사실 조선 이후로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이 자랐다고 하여 붙여진 곳이다. 그리고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으며, 현재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오후에는 입구를 개방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옆으로 치우 져 친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갔다.
곳곳에는 화이트로 낙서된 흔적과 그라피티가 있었다. 예술가를 대표하는 혜화동이야말로 문래동보다 더 앞선 것이다. 그리고 곳곳에는 마치 2008년도를 기약하자는 두 연인의 러브스토리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들의 운명은 낙산공원에서 이루어졌을까. 다만 그 이야기는 서로를 지탱하던 그 고유의 본인들만 알 것이다. 옆구리 시린 느낌을 뒤로하고 계속 올라간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낙산공원 방향의 좁디좁은 골목길을 말이다.
'잘 살기 학원'발견
(세 번 삭발의 어머니 잘살기 꿈 이루다.)
이곳은 1965년 - 1989년까지 불우 청소년들에게 '잘살기 학원', '대명 중학'의 이름으로 잘 살기 꿈을 이룬 36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배움터라고 한다.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 2년을 중퇴, 상경하여 아들을 위해 세 번이나 삭발을 하신 어머니(박순이)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당시 경희대학교 3학년 학생인 마대복씨는 경희대학 구내에서 구두닦이를 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이 여러 신문사에 보도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직접 불러 간판을 전달했다고 한다. 특히 젊은 교사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많은 청소년들이 사회 각처에서 '잘 살기 꿈'을 이룬 것이다. 졸업생 중엔 목사, 대학교수, 변호사, 공무원, 소설가 등이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는 이화동 벽화마을이 관광명소가 되어 무료로 개방되어 사랑 정신을 심어주고 청소년들에게는 상담과 체험학습을 통한 의미 있는 장소로 사용되는 중이다.
현재 2022년에는 운영을 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 흔적에서 느껴지는 마음 따스한 느낌이 곳곳에서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요 근래 내가 아는 이화마을은 예전과 선뜻 달랐다. 아마 코로나의 장기화 여파일지는 몰라도 관광객의 흔적조차 거의 없었다. 이 또한 인근에 있는 낙산공원 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들만 잠시 거쳐가는 마을일 뿐, 심지어 주민들의 웃는 소리와 소주잔을 탁탁 치며 이동하는 현지민들의 모습조차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조금 허망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시끌벅적했던 관광지의 명소였는데, 그 당시에는 일부 이화마을 주민들 또한 복잡한 관광지가 된 탓에 종로구에 엄청난 컴플레인을 걸고는 했지만 요근래는 주민들이 좨다 빠진 모양이다. 관 위주의 도시재생에 실패한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 이유도 되려나.
길을 가다 보면 '임대' 피켓이 붙여진 여러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 탓에 괜스레 연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홀로 벤치 위에 앉아 있는 미니어처 토끼 인형이 나를 반겨주었다. 감미로웠던 봄 내음 가득한 낙산공원 향기가 여기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그리고 인근에는 '몽'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파란색 로봇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친구 또한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번지고 있지만 썰렁하기 그지없던 당시 이화마을의 흔적들. 그래도 추억으로 남기려면 기록으로 승화시켜야지.
이 근방이지만 정확히 장소 언급이 안 되어있다. 예전에는 주소지가 찍혀있던 곳인데 지금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전한 가게와 카페들이 많았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골목투어를 하실 분들에게 장소를 따로 걸어놓겠다.
참고로 최근 브랜드 오픈한 스테이크 맛집 겸 카페이다. 외관부터 한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던데 아마 구 가옥을 건축 재생한 느낌이 난다. 난 요즈음 이런 느낌의 집이 좋더라. 화려하게 치장된 곳보다 차라리 유서 있고 고즈넉한 한옥 상권이 더 마음에 깊이 파인 이유는 우리 인생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일지, 미용실인지 구분이 어려운 가옥을 발견했다. 내부 구조는 한옥인데 외관은 적산가옥 비슷하면서도 서양 느낌이 물씬 풍긴다.
헤어샵일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무성한 낙엽만 잔뜩 쌓인 곳을 보자니 아마 운영을 하지 않은 듯하다.
참고로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이화달팽이길'이라고 한다. 왜 달팽이냐면 저기 사진 위에 보면 달팽이 나선 모형처럼 둥글게 꺾이는 곳이 있다. (겨울에는 아주 위험한 코스여서, 가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또한 눈썰매는 덤.) 그것도 중요하지만 곳곳에는 이화 마을에서 구경할 수 있는 다양한 독립서점과 공방, 카페, 심지어 게스트하우스 또한 이 자리에 즐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접 가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 1번부터 무려 34번까지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10개 정도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놓치지 않고 현재 구경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황홀한 장소가 펼쳐진다. 마치 응답하라에 나오는 쌍문동을 대변하는 느낌의 골목이다. 덕선이가 어디선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을 법한 감성.
"야!"
"응 왜 덕선아!"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엄청 가파른 하향식 계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몰과 함께 구경하는 참된 매력이 지닌 사진 포토존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다. 이 장소에서 멀찌감치 남산타워까지 구경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단.
서서히 노을지기 시작했다. 오후 5시 45분쯤. 지금 서있는 장소에서 노을을 맞이하기에 더 감미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혜화. 낙산공원에서 일몰 보는 느낌과 다르게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보는 느낌 또한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이화동 마을 박물관, 낙산공원 올라가는 길
그 외 다양한 골목 풍경을 사진에 담아본다.
예전 1박2일 이승기가 천사 날개 포즈 취했던 장소가 오버 투어리즘으로 이화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2010년에 그 흔적을 지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화마을의 정체성이 사라진 이후 똑같은 천사 날개를 이 장소에 누군가가 다시 그렸던 것, 바로 혜화 여러 예술 창작단들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던 마을을 살리고자 다시 벽화를 그렸던 취지가 바로 현 장소. 그 이후로 급격하게 핫 포토존이 되었다. 나 또한 혼자 셀프 찍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셀카봉도 가져오지 못한 나를 누가 원망하리.
이화마을 사이사이에는 벽화의 흔적이 여전히 머물러있다. 단지 지워졌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이 마을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관광지가 아님은 분명했다.
원래 있던 벽화를 다시 지우고, 현지 주민들을 위한 벽화가 다시 재탄생하게 되었던 점은 지극히 잘한 일이다. 특히 골목 곳곳에 '조용히 해달라'라는 경고 표시가 자주 보였던 예전과 달리 요즈음은 그림으로 승화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긴장감이 덜어지는 한편, 소소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취지가 되었다. 예술단 참 칭찬해 !
여기가 그 유명한 달팽이 거리의 끝자락 핫플레이스이다. 이화마을 하면 대부분 이 장소를 떠오르게 된다는 마력의 곳. 특히 겨울에 오면 당연지사 재미와 사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1석2조 장소가 바로 여기란 말이다. 급커브로 이루어지는 건물마다 초록색의 이끼가 슬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존했던 카페의 흔적을 잠시나마 찾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거대한 담벼락 한가운데에 길게 이어진 빨간 고무통과 화분의 흔적이 인상 깊었다.
몽페? 정확한 장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여기 또한 공가이다.
올라가고 싶게 만든 현재 공가의 계단.
조심스럽게 올라가 본다. 여기는 2층.
하지 말라고 할 때
하고 싶은 게 청개구리 심보.
3층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흔들거리는 철제 계단 발견.
진짜 올라가?
3층 입성 완료.
그러나 인적이 없는 여유로운 루프탑.
녹슨 안테나 방향으로
서울 전망 구경하기
반대편 장독대가 보이는 곳
그리고 소소하게 색칠된 여러 집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가끔 빨래 널러 나오신 몇 분들과 눈인사를 할 정도.
아, 이화마을이여.
한참 노을을 보면서,
10분 동안 사색하다가 다시 내려가 본다.
내려가다 보니 충신동 방향으로 이어진다. 여기가 그 유명한 봉제 공장으로 유서가 깊다는 충신동일까? 지도를 켜보았다.
참고로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은 로드뷰를 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아마 이화마을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네이버 업체에 하소연한 듯하다. 제발 여기 오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 모양이다. 참고로 이번 편은 사진 구경 위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좋다. 장황하게 설명할 글을 적는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하소연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저 걸으면서 오늘도 이런 곳이 있었기에 안심하게 골목투어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든다.
중요한 점은 혜화가 가지는 매력은 사실 '이화마을'이었다. 인근에는 낙산공원이 존재했지만 사실 그 이유도 이 마을에서 유명해졌기 때문에 그 근처로 영향력을 뻗은 셈이다. 오늘도 이 글을 작성하면서 다소 차분하게 어엿하게 진행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내 감성을 속일 수 없기에 재미있게 쓴 글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이화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골목길은 아래 장소 찾아보시면 됩니다.
낙산 4길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이화마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장길 70-11
이화장길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92-4
율곡로 19길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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