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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r 15. 2022

용산, 옛 철길의 추억 (백빈 건널목, 땡땡 거리)

'나의 아저씨', '너의 이름은'의 '히다 후루카와 역'을 연상케 하는

이미 예측했다만 제목의 사진을 통해 이번 골목 투어 취지는 '철길 투어'이다. (제목의 사진은 한국이 아니라 '너의 이름은'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어느덧 봄이 오는 듯, 마음 곳곳에서 쌀쌀한 감성과 무거웠던 겨울 앙금을 풀기 시작했다. 봄눈이 내리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3월 중후반부터 4월 초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될 거라는 현실적인 상황과 함께 모든 이들은 그래도 사람같이 살기를 간절히 바라듯이 오늘도 나 또한 골목투어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인근 청파동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함께 후암동을 거닐면서 인근 용산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만간 이 용산 전체 구역 중 80프로를 갈아엎고 경부고속도로의 연착선으로 용산까지 이어지도록 재공사하고, 광화문 인근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용산으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재개발 이야기가 있었고, 우리들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야겠지만 내심 완전히 기쁘지는 않았다. 온전히 골목투어의 취지는 바로 옛 골목을 구경하면서 나의 여행 철학을 기록하기 위함인데, 그러한 곳이 사라지고 있다는 부분이 참 마음이 아팠다.


친구와 드라이빙을 한 후, 다음날 그러한 곳을 리써칭 해보았더니 바로 용산역과 신용산역 뒷골목이었다.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미지의 구역, 그러나 아직 어렴풋이 기억나는 소중한 옛 80~90년대 옛 골목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풍경이라서 바로 이동해 보았다. 골목은 사진 구경보다는 직접 이동하면서 걸어야 의미가 깊더라.



한강대로 21길


이 철길 동네에 대한 구체적인 명칭은 없었다. 다만 인근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땡땡 거리'라고 한다. 그 이유는 전차가 지나가기 전에 인근 벨에서 땡땡 소리가 약 30초간 울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마치 일종의 경고음이지만 이 동네 주민들에게는 현재 이 동네에 거주하는 이유라고도 한다. 이렇게 미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실감할 수 있었다.


ps. 단순히 내가 걷는 골목은 동네와 마을만 있는 소소한 골목도 있지만, 철도 골목도 있었다는 점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경춘선이랑 경의선 인근 책방 골목도 탐방해 볼 예정이다.



용산 트레이드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90년대 '용산의 옛 골목'

제1구역과 2구역으로 구분된 옛날과 현대의 공존 동네. '용산 옛 철길'을 가다.

이로써 말해볼 수 있다. '용산의 양면성'



1번 구역은 마치 서울역 15번 출구 서계동과 만리동을 연상하게 한다. 반대로 2번 구역은 용산의 국제 업무 지구로 개발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시피 1번 지구로 이동한다. 그 반대편 2구역은 현재 BTS 신사옥으로 유명한 HYBE가 위치하고 있다. 정확히는 트레이드센터 안에 있다. 여전히 BTS에 관심이 많은 아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내 걸음은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참으로 미묘한 감성은 둘째치고 말이다.



인근 공방과 디자인 협체들이 삼삼오오 모인 곳이 있다. 특히 집성촌을 형성하면서 나름 그라피티 활용을 통해 문래창작촌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천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나의 소원이 있다면 단순한 재개발이 아니라 '건축 리모델링'을 통해서 임대가 저렴한 청년 창업가들을 위해 자리를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용산이 많은 역사 중심지로 발전될지언정, 적어도 이러한 건축과 주택 정책은 청년들에게 일면 양심 제공해 준다면 누구도 기득권층에게 뭐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이런 소소한 빨간색 담벼락이 매번 정겹기만 하다. 아무래도 화곡동에서 거주한 나는 매번 즐겨 봤기 때문이랄까. 어느샌가 짙은 회색 콘크리트로 새롭게 단장된 인근 건물들을 보면서 참으로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공간분리 #건축재생 #건축리모델링


최근에 공간건축 관련 글을 브런치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작가는 '공간'과 '예술'의 결합에 관한 연구를 하는 디자이너였다. 그분이 이야기하신 내용을 잠깐 참고한다면, 공간에서 얻는 힐링과 만족감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꽤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삭막하고 탁탁한 회색빛 네모 안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공간과, 분리를 통해 가끔씩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통한 공간은 엄연히 다른 업무적 영향을 발휘한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가끔씩 나의 공과사 공간을 따로 구비하는 이유가 있더라.


다만 이러한 행동이 일관성 있게 작용된다는 점에서 큰 부작용을 낳는다. 때로는 너무 과도한 공간 분리가 우리 삶에 탁한 먼지와 같은 존재로 양립할 수 있다고 한다. 솔직히 나 또한 이 맥락을 충분히 이해했다.



공간은 우리의 일상이지만

때로는 무책임한 공간 형성이

우리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브런치, 어느 디자이너의 말씀 中




한 사례로 문래동 지인이 1층에 카페로 창업을 하여 손님들을 위한 힐링 공간을 만들었다면, 2층은 카페 점주와 직원들끼리의 소소한 힐링 장소와 사무실로 구비되며 다른 계열의 일과 디자인 회의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2층을 잠깐 구경할 수 있도록 외관의 벽을 통해 시설을 따로 만들었다만 정확히 내부 구조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3층으로 올라가면 다시 손님들을 위한 카페 직원들의 그림과 일기장, 심지어 문래동 예술가들 합세하고 고심하여 만든 전시회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1층과 2층, 3층을 따로 '공간 분리'를 통해 같은 장소여도 소소한 만족을 얻어 가고 또한 경제적 불황에 직면한 우리 세대에는 큰 효율적인 변화라고 생각이 든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본질적인 재개발을 통해 그 지역의 모든 문화와 싹을 다 뿌리 뽑고 오히려 비싼 값어치의 땅덩어리와 건물을 세운다는 점은 참 가슴이 아픈 일이더라.


오롯이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취지는 이 의미와 같다.


공간이 주는 특이점은 우리가 살고 있다는 존재 의미이지, 단순히 경제적인 수치를 위한 투기가 아니란 말이다.


한강대로 7길, 15길


순수함이 가득한 동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짤짤한 임대를 맛보고 투기하고 싶은 최후의 보루인 동네.


제일 정육점

때로는 이러한 소소한 사람들이 머문 자리에 한 푼의 돈을 더 쥐여주고자 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있는 반면, 무자비한 지자체와 정부의 간섭과 통제로 용역업체를 끌어들이는 최후의 보루까지 생각한다면 이미 절망의 세대를 지내고 있음과 다름이 없다. 그러한 상황들은 언제나 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신과함께이승편


예전에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 이승편'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어린 꼬마 주인공 '동현'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이런저런 소시민의 삶을 대변해 준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정확한 전후 상황 내용을 모른 채 그저 결과에만 충실히 몸담아 보았던 이 웹툰은 점점 성숙해지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담게 해 주었다.


동현이는 결국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인근 동사무소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갈 예정이었지만, 이승의 주인공들이 동현이를 위로해 주고 결국에는 신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소시민의 삶을 적절히 그려내고 또한 지극 적성으로 우리 삶을 무한히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이런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 중에, 재개발 관련 소재가 자주 다뤄지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영위하고 싶은 삶이란 하나뿐인 '공간'과 '동네'를 살아감에 있다는 순수한 의미이지, 절대 다른 타지로 발령 나 또 다른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이승편> 웹툰 中



날씨가 좋다는 명분으로 우리의 삶을 대변해 주듯이 언젠가는 이러한 동네 또한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바뀌길 간절히 기대한다.



누군가의 항공 점퍼. 아마 인근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깃든 점퍼임이 분명하다. 구제 옷을 연상케 한다. 예전 외할아버지가 중대장이셨을 무렵, 이 느낌의 항공 점퍼를 입고 가끔 읍내로 출장 가셨다고 한다. 엄연히 권위적이되 그 사람의 자질과 계급을 엿볼 수 있는 외관이 '옷'이 아니겠는가.


단순한 똥별이라는 이미지의 군대 기득권보다 외할아버지가 더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마치 이 동네가 우리 외갓집 같기 때문이다. 소소히 걸으면서 들려오는 강아지가 짖는 울음소리, 아침 햇살 같은 새소리, 그리고 인근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꽃 피우는 웃음 섞인 소란까지 모든 게 합천의 운봉 마을 같았다.


그래서 더 보고 싶은 외할아버지.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극정성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영위하고자 다시 일어나고 계신다.



거울에 비춘 나의 모습과 동네 공간이 마주치는 순간. 소소함에서 예술을 얻어간다. 공간에서 예술을 얻어간다. 그것이 진리이다.


영원한 건 없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그래서 세상을 아름답고 조금 더 멀리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소소한 골목길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반겨주지 않는 사람들. 아니면 공실이 많은 이유일까.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에서 온전히 느껴지는 감성.


아까 '공간 분리'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각 층을 나누는 것인지, 아니면 방을 나누는 것인지 말이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이 부분이 맞지만 우리는 마음의 공간을 분리한 적이 있을까 고심이 생각해 본다.


긍정적인 부분을 파헤치는 마음과, 부정적인 앙금을 쌓는 마음의 분리. 아주 현명하게 살려면 이 공간 분리가 있어야 하겠다.


한강대로 7길



춘천 식당


사진을 찍다가 문득 주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거대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또 하나의 과거 회상을 나에게 들려주기 시작하셨다.


세상은 나름대로 반짝이는 공간이 많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터전이 조만간 사라짐에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문래동 신흥시장 아주머니께 들었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그래서 뭔지 모르게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일종의 데자뷔라고 할까.


그리고 물 한 통을 사 가면서 사장님께 어스름한 눈으로 괜스레 미안해지는 표정을 굳이 할 필요 없이 인사만 후딱 하고 앞만 보고 지나갔다.




요즈음 건축물 인테리어와 외관에 꽤 많은 호기심이 생겼다. 버려진 공실과 허름해진 건축물을 다시 리모델링하는 일명 건축 재생을 통해 사람들이 다시 오고 가는 소소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리고 그 장소는 제주도였다.


최근에 '효리네 민박'에 나왔던 이효리 누나의 집을 다시 리모델링하여 카페와 복합 문화 단지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이름은 '소길별하'였다. 마치 제주도 소길리라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의미처럼 소소한 스토리텔링이 부여하는 인간 감동 실화는 당연히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게 해 주었다. 실제로 가본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면 나름 재미있는 스토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효리네 민박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예전 그 장소와 공간을 찾아가는 일종의 동심과 모험 심리를 자극받는다고 한다.


그 민박을 구매하고 리모델링하신 분은 엄청난 예술가이면서 인문학에 몸을 담근 작가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많은 감동 실화를 얻어 간다는 점에서 누구나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이름 모를 왕따 나무


그래도 인근 소소한 텃밭과 원예 작물, 조경 나무가 즐비하다는 점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열려있는 창문 소리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웃음기 가득한 소리가 전해져 들려왔다. 그저 사진을 찍기에는 다소 민망하였고 이 좁디좁은 골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길을 마주하게 되었지.




용산의 땡땡 거리, 일명 철도 골목 거리 (이촌로 29길)

경의 중앙선과 차도가 겹치는 순간의 찰나, 백빈 건널목 (나의 아저씨 촬영지)

사진 한 폭에 담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좋은 기록으로 남길 기대한다.


용산 뒷골목 뒤로 보이는 거대한 기업체들


#용산국제업무지구 #용산철길 #이촌로29길 #한강대로21길


현재 용산구에서 진행 중인 부동산 정책에 따르면 이 1번 지역을 아예 싹 다 갈아엎고 새로운 주택단지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용산역 인근에 있는 옛 상권이 현 거대 자본 기업의 손아귀에 투기 장소로 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왜 손아귀라는 부정적인 어구를 기록한 이유는 단순히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졌음이 아니다. 혹시라도 사상 검증을 받아야 하는 단순한 사회 일타자로 낙인찍힐까 봐 이렇게 기재한다.


윗글의 취지는 단지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암묵적인 기득권의 힘에 의해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으로 살려내고자 하는 나의 의지 행동일 뿐이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것이 옳다고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었고, 그래도 예전 추억을 보존하는 것 자체는 너무 고리타분하잖아. 어쩌면 나 젊은 꼰대 돼가는 중일지도.


땡땡 거리 인근 공실 가게와 뒤로 보이는 하이브와 LG 기업


저 멀리 보이는 용산의 새로운 대기업 건축물들이 하나둘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2년 전부터 서울 시장 오세훈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용산은 3년 뒤면 새로운 자리로 재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미리 이 기록 일지를 작성하고 골목 투어를 위한 분들께 소중한 자료로 제공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촌로 29길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철부지 없던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오르게 하였다. 마을버스 통행로와 인도의 구분점이 없던 시절 무작정 맞은편에 있는 친구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까지 겹겹이 겹치는 그 상황의 연출까지. 오롯이 이 영화에 품격 있게 담겨 있었다.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이 영화를 보고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는 감성적 부족함이 없었다.


<너의 이름은> 영화의 히다 후루카와 역 / 구글 일부 사진 발췌


한국판 히다 후루카와 역 (일명 이촌로 29길)


정확히 기억하자. 여기는 한국이다. 다만 영화처럼 실제 분위기를 80프로 정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노을 지는 한 겨울의 6시 이후의 감성이란 말로 형용 못하더라. 눈 내리면 잠시나마 이 주변의 감성을 맛볼 수 있는 하나의 소소한 공간도 있었다. 잠시나마 이 구역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여기 아이유랑 이선균이 나온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입니다 ._.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한 소소한 스포일러였습니다. 하하하.


기찻길주점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로 29길 35


우리 점박이 고영희가 웬일로 내 눈앞에 아른거리더라. 문을 툭툭 쳐도 귀만 살짝 움츠리기만 하는 녀석. 참고로 이 장소가 심히 궁금했다. 담배 피우러 나오신 사장님께 여쭈어보았다.




여기는 용산에서 숨겨진 서점 겸 다방이라고 불린다. 심지어 레코드판과 LP 판이 즐비했다. 인근에 다방이라도 있단 듯이 마치 한 공간에 옛스러움이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었던 장소. 쌍화차 하나 끓여줄까라고 물어보시는 사장님께 대뜸 거절하겠다고 하면 얼마나 예의가 없어 보일까. 다만 사장님이 건네주신 명함을 받고 나는 시간이 없다면서 나중에 꼭 친구나 연인과 다시 오겠다며 소소한 약속을 잡은 채 전방의 길을 걸어갔다.


추억의 전봇대와 변압기


정지! 정지! 정지! 땡! 땡! 땡!


'아저씨, 아저씨는 왜 저의 마음을 정확히 아세요?' by 이지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中)


실제로 인근에 계신 철도 관련 공무원 아저씨께서 급하게 나오셔서 행동 정지 몸동작을 해주셨다. 그 순간 모든 차량과 사람들은 제 갈 길을 멈추고 멍하니 철도만 전방 주시하더라.


이 순간 조용한 침묵 속에서 저 멀리 울려 퍼지는 경의 중앙선의 한 전차가 재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참고로 인근에는 2개의 철길과 전동차가 지나간다. 하나는 경의 중앙선 전차(일명 ITX), 그리고 1호선 같은 전차가 지나간다. 대부분 서울 교통의 중심지답게 용산으로 다시 모이는 형국이라 때마침 이 자리에서 전차로를 무려 2개나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노을 질 때 구경하는 맛이란 또 묘한 감동을 선사해 주더라.


참고로 이 분위기에 한 술 더 뜬다면 꼭 이런 친구들이나 연인과 와야 색다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다.


1. 노을 지는 전차 지나가는 장면과 땡땡 거리는 경고음을 동시에 듣고 싶은 분들.

2. '너의 이름은' 영화를 보고 감명 깊었던 사람들. 그러나 일본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

3. 전동차, 전차 역사에 관심 많은 분들과 남들이 잘 모르는 출사 지역을 원하시는 분들.

4.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를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


열차가 지나간 뒤 정적의 철도 골목


한동안 멍하니 30초를 기다렸다. 전차가 얼마나 길던지 전차 내부에서 자는 사람과 책 보는 사람, 심지어 수다 떠는 사람들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안에서 구경하는 탑승객들은 밖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 또한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게 조용했던 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제 갈 길을 다시 가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인근에 거주하시는 분들 같다. 내심 나처럼 사진 찍거나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 짜릿한 나의 변태적 사진 촬영 욕구를 남발하기에 큰 시너지로 다가왔다. 그리고 또다시 다가오는 전차의 정적 소리가 들린다.


(땡-땡-땡 / 정지-정지-정지)


정확히 5분~10분 사이마다 지나간다.



용산 방앗간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로 29길 31




#백빈건널목 #용산방앗간 #용산땡땡거리


아이유와 이선균이 나왔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언급된 장소 한 번 더 발견! 참고로 이 구간은 '백빈 건널목'이라고 한다. 인근 방안갓 안에서 소소한 음식 냄새와 90년대 감성 돋우는 흔적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떡 냄새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인근 담당 전차 안전 공무원분께서 계속 서 계셨다. 아마 출퇴근이 제일 많은 6시 이후의 시간대라 전차 배차 수가 많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그분에게 노고의 박수를 내심 갈채하였다.



노을 지는 백빈 건널목.


아이유와 이선균이 이런 느낌으로 서로 한탄을 풀었을까.

소소히 들려오는 감성만이 우리 귓속을 맴도는구나.


관리원 없음 (전동차단기)


또 다른 1호선 같은 골목을 찾았다. 그러나 안전 관리자가 없어서 매우 위험했지만 전차가 오지를 않았다. 아마 내 생각에는 1호선의 일부 전차 노선이 경의 중앙선으로 긴급 투입되기 위한 하나의 임시방편 철도 같았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은 노보텔 앰배서더이다. 용산 최고의 호텔이라고 자부한다.



골목을 하나하나 거닐면서 사진을 담아본다. 신기한 점은 이 전차 양 사이드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집이 없다. 그러니까 이 소리에 민감한 분들의 보금자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철도 양 사이드에는 그저 자생하는 식물들과 누군가가 키우는 원예 작물들만 즐비할 뿐이었다.


이런 광경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군산의 어느 전차 골목을 지나가면 이런 느낌이었다.


군산의 철길 / 참고자료 : <여행스케치>


예전 일제강점기 이후 자리 잡은 하나의 운송수단용 전차였지만 추후 철길이 폐쇄된 후 이 곳곳의 자리에 길게 이어진 모퉁이 시장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오늘날의 경의선 숲길과 같은 맥락이었다. 홍대 건너편에 있는 연남동 술집과 카페가 많은 그 자리가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의 유서였다.


E studio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로 29길 29


인근 철길이라 그런지 건축물도 굉장히 낮았다. 그래서 더 아담하고 소소한 공방과 카페, 사진관이 한데 어우러져서 이 지역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인근 카페가 어디 있는지 검색을 해보았지만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아까 이 구역으로 출입했던 그 골목으로 다시 끼고 들어가야 나오더라.


밤 노을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로 29길 25


뒤로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과 앞에 자리한 아담한 소규모 공간이 버무려지는 이 지역은 나에게 어느 특정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만큼 큰 상징성을 가져다주었다. 솔직한 단순한 마을 골목 투어가 아니라 정말 여러 공간과 요소가 믹싱 되어 마치 예전부터 전해 내려 온 하나의 구전 전래 동화처럼 연결되었으면 하는 갓혁의 골목투어가 되고 싶다.


단순히 보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네에 살고 계신 사람들의 진득한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하는 하나의 기록 일지이고 싶다. 다행인 건 아직 나에게 그러한 말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여행과 여정은 달라요.

크게 보면 단기적인 힐링 소모는 여행이고,

장기적인 힐링 소모는 여정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 저 맥락에서 나는 무언의 정답을 찾았다. 골목투어는 형식적으로 여행이지만 사실 여정이었다. 나는 이 여정을 해석하시는 분들에게 또 하나의 예술 철학과 관련된 나의 의도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인식해 드리고 싶었다. 그게 잊히지 않기에 '장기적 관점'이라는 의미를 붙이신 의미였나 보다.


내심 기뻤다.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마쳤다. 사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여러 감성이 솟구쳤다. 더군다나 특정한 동네가 아니라 거대 자본 앞에 가려진 이면의 장소를 떠오르게 하는 곳이며, 특히 사람들의 인식이 점점 사라져 갈 그러한 동네를 찾아간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소소함에서 얻어 가는 의미가 있듯이, 사유에서 얻어 가는 의미가 있듯이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매개물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난 이런 여정을 하는 스스로를 싫어하지도 않고 오히려 원망하지도 않다. 다만 앞으로 이러한 글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 있을지 나는 내심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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