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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r 27. 2022

인사동과 익선동, 그 중점에서

레트로란 무엇일까요.

2월 어느 시점이었다. 삼청동에서 업무를 끝마친 후 뒤늦은 식사를 하러 인사동에 갔다. 그리고 친구가 물었다.


"넌 왜 그렇게 인사동이나 성북동, 삼청동만 고집하는 이유가 뭐야. 다른 핫플레이스도 많은데 말이야."

"아~ 그거? 있잖아.. 나중에 되돌아보면 알게 될 거야."


이 말 한마디로 친구는 순간 정적을 약 5초간 유지했고, 나는 살짝 옅은 웃음을 쓰윽 머금었다. 친구는 그게 뭔 X소리냐고 또 한마디 하였지만, 무조건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대중적인 장소에만 혈안 된 사상을 가진 친구에게 나만의 순수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사진을 몇 개 보여주었더니


"인사동.. 아 그런 곳이었구나. 야 나중에 가자."


이 말 한마디로 끝났던 장소. 그렇다. 인사동에 갔다. 북촌 마을 아래에 위치한 조그마한 시장이었지만 현재에는 다양한 전통과 공예품들이 즐비한 거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쌈지길'로 저명한 곳. 다시 레트로 감성을 찾아 떠나는 갓혁의 골목 여정. 시작합니다.




인사동으로 가는 길

여전히 골목길 사이로 음식을 만드는 그릇 소리와 예술 공품 만지는 소리가 즐비했다.

그리고 어스름한 골목 따라 식사하러 이동하는 중이었다.


인사동이 지니고 있는 골목길의 풍경 / 아직도 10년 전 포스터가 즐비하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뒤늦은 업무가 끝났다. 삼청동 어느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갑작스러운 강풍과 바람 덕분에(때문에) 내 눈에는 벌써부터 안개가 자욱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올림픽 중계를 구경해야 하기 때문에 딱 8시에 맞춰 구경할 알맞을 장소를 찾다 다녔다.


여전히 인사동에는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예전만큼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코로나 덕분이라고 할까, 확실히 한옥과 굽이굽이 진 골목길 사이에 늘어선 고즈넉한 풍경이 옛 감성을 더욱 극대화했더라. 덕분에 속마음은 살짝 기뻤다. 어느덧 친구와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면서 삶에 찌든 서울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업무 이야기를 그러나 친구는 여전히 자신의 미래 프로젝트에 대해 굉장히 열광하듯이 아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더라.



그렇게 우리는 인사동 골목을 곳곳 후벼 파기 시작했다. 예전에 인사동 쌈지길에서 공방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에 소상공인들이 제작한 저렴한 제품들이 즐비했던 풍경이 어느덧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갔고 그 장소로 잠깐 고개를 돌렸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그렇게 발걸음은 얼른 추운 몸을 따스하게 보호해 줄 식당으로 이동했지만, 내 시선만큼은 그 쌈지길로 돌아가고 말았다. 살짝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나 둘 눈 덮인 인사동 골목을 스텝 밟으면서 친구의 추천을 받아 좁디좁은 후미진 인사동 뒷골목으로 이동한다.



주모, 여기 수제비 한 그릇이요 ._.

아 동동주도 시킬게요!



처음으로 왔던 곳인데, 외관부터 고즈넉한 풍경과 한옥 이미지, 그리고 성인 남자가 겨우 들어갈만한 장소였기에 매력에 이끌려 입장하였다. 그리고 사실 매우 추웠던 기억도 있었기에 얼른 들어가서 몸을 식히고 싶었다. 호호 입김을 불면서 자리에 착석하였고 7000원 인사동 수제비를 시켰다. 그리고 오른쪽을 돌려보니 벌써부터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준비를 하고 있더라. 내가 예전부터 응원했던 '황대헌' 국가대표 선수가 입장할 시간이었다. 시간은 대략 오후 8시였나. 가물가물했지만 타이밍이 좋았다는 명분으로 우리는 일 이야기는 잠깐 접어두고 티비에 더욱 열중하였다.


그리고 네이버 응원 창을 틀고 황대헌 선수를 위한 장문의 응원 문장을 작성하였다.


'국가 대표인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실패해도, 실수해도 기죽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주세요! 파이팅입니다.'



두꺼운 옹기.. 아니 소규모 항아리에 담아준다. 이름 값했다. 아니 소소한 브랜드마저도 감미로웠던 이 풍경과 외관에 벌써 몰입했던 나 자신에게 매우 기특해했다.


'야 잘 왔다. 여기 분위기 진짜 좋다. 베이징 올림픽 구경하면서 우리 옹기에 있는 수제비 한 번 뜯어보자!'


이 말 한마디와 함께 겉으로는 황대헌 선수를 응원한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인 수제비를 허겁지겁 삼켜버렸다. 꼭꼭 씹으면서 건조해진 내 입 안 속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수제비 원소 하나하나가 구내 면적에 활성화되었던 그 추억은 아직도 머릿속에 기억난다. 벌써부터 오른쪽 위에 입천장 부분 따갑다. 최근 설날에 만드셨는지 매우 달콤 쌉싸름한 겉절이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국물을 들이켜보았다. 속에서 요동치는 요란스러운 나의 위장은 어느덧 얌전해졌다. 1분간 내 위장의 느낌을 한번 느껴보고, 다시 한번 더 들이켜본다. 또 들이키고 하다 보니 어느새 수제비 국물은 바닥을 드러냈다.


친구가 동동주를 시키자고 했다. 하지만 동동주를 마시면 입 돌아간다는 생각이 난무하더라.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사장님께 입을 열었다.


"사장님 동동주 있나요? :D"


"네네 여기요!"


그렇게 친구와 동동주 한 사발을 쭈욱 들이켠다. 황대헌 선수는 내 마음을 모른 채 열심히 쇼트트랙 위를 달리고 있는데, 덕분에 열기가 찬 이 수제비 항아리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고 열정을 3번 외치며 합심하여 국가대표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때가 그립더라.


그냥 마스크 안 쓰고 예전처럼 소소한 풍경을 간직했던 그날이 그리웠다. 그런 하루하루의 연속이.. 아니 사실 그때 그 나이가.


人 ㅇㅇ ㅡ ㅁㅁ

'음음'

._.


밤 오후 8시 40분쯤. 그렇게 동동주를 다 들이키고 밖으로 나섰다. 입에서는 동동주 알코올 향이 아직 미처 가시지 못했고, 그저 추위가 우리를 또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진지한 모드로 돌입하는 친구의 주둥아리를 겨우 닫아버렸다. 5분도 안되어서 읍읍 거리면서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아니 그럼 아까 회의 시간에 이야기하지 그걸 굳이 사적인 공간에서 이야기하냐고 속으로 삭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술기운에 이야기하는 것이니 오늘은 참았다. 알고 보니 요즈음 코로나라서 참 힘들다는 하소연. 뭐 나도 똑같지.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 우리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닐 지금 엔데믹 상황인데.


아, 그러고 보니 이제는 팬데믹이 아니고 엔데믹이란다. 엔데믹은 일종의 풍토병으로 보자는 인식인데.. 그저 특수한 지역에서만 생기는 질병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니까 이제는 장기적인 감기로 생각하자는 보편적인 관점이다. 세계 보건기구가 그렇게 언급했으니 우리는 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각자도생이라고 느껴왔던 나는 내심 조금 부끄러웠다. 엔데믹이면 사실 너무 이기적이고 잔인한 상황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인생 운명론에 따라 건강에도 차별화가 생기고 그로 인한 세대갈등, 남녀갈등, 빈부격차 등등.


엊그제 20대 대통령 대선 30일을 앞두고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이 4명이 요리조리 토론을 이어가던데, 특히 2030 세대를 위한 마케팅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더라. 솔직히 우리 표심이 많이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들을 겨냥한 것 자체가 좀 그렇다. 우리 잘못도 아니잖아. 나중에 누굴 원망하게.


동계올림픽 대표단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우리들은 뭐 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친구와 인생무상 이야기를 곁들인 채 30분가량 골목을 거닐어보았다.


인사동 10길로 빠져나간다.


표지판은 인사동 8길을 가리키지만 우리는 그 길로 이동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일은 없거든.

인생 또한 그렇잖아.


고즈넉한 풍경과 외관을 머금은 큰 대로로 나왔다. 인근에 한옥 게스트하우스들이 거리마다 나온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여기.. 사실 북촌 한옥마을인 줄 알았다. 아니면 서촌 마을..? 그쯤 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시 정신 차리니 여기는 '인사동'이었다. 인사동은 거짓말 안 해. 예전 감수성 풍부한 전통 공예품들과 전시품들이 즐비했던 미술관과 소규모 전시회, 복합 문화 단지들을 구경하면서 저벅저벅 거닐어 보았다.


그리고 친구가 또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하 인생 진짜 너무 힘들다. 그래도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 하면서 풀 수 있다는 게 좋다."

"응 너 인생은 너무 부질없어서 내가 오히려 위안된다. 내가 너보다 비교우위 조금 +10 ?"

"미X놈아"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면서 거닐어본다.


인생 미래 이야기. 조만간 결혼한다는 친구의 이야기. 예비신부랑 같이 술 한잔하자는 이야기, 최근에 메타버스 관련 주식 종목 떡락했다는 이야기, 일론 머스크 개X끼는 여전하고, NFT (불가 대체 토큰) 관련 이야기, 생계 관련 업종 이야기, 자영업자, 프리랜서, 사업장 이야기, 거래처 이야기 등등.............. 쓸데없이 남자들끼리 고민할 거리가 이렇게 많았던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게 참 슬펐다. 난 ENFP라서 아직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인 대가리 꽃밭을 유지하고 싶은 '어른 아이'이고 싶은데 참 쉽지가 않더라.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나.


"뭘 어떻게 해. 그저 사색하면서 그냥 인생 흘러가듯이 살아야지 않겠나."라는 친구의 말에 한 번 더 짜증 났다 (-_-)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고 싶은데, 내 친구는 너무 극단적인 현실주의형 인간이라 나랑 도저히 안 맞는다. 그런데 의외로 이 친구 예비 신부가 나랑 같은 ENFP란다. 역시 연애는 공감대 맞고, 결혼은 공감대 안 맞는 사람들끼리 해야 하나? 우리 부모님 보면 그렇다. 맨날 싸우신다. 성향 둘이 1도 안 맞는다. 아 맞는 거 하나 있다. '똥고집은 더럽게 강력하다.' 이건 인정한 부분이었다.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탑골공원에 계신 10년 인생 득도한 할아버지처럼 껄껄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그렇게 한적한 골목을 발견하고 이동해 보았다. 친구는 이 고즈넉한 풍경 자체가 이제야 이해한다고 했다. 참 웃기다.


본인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면서, 한편으로는 노지 캠핑이나 등산, 사람들이 자주 안 가는 노지 여행을 좋아하는데 이런 고즈넉하고 조용한 풍경을 싫어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사실 자기 취향이 아니었고, 그냥 구경만 하는 거 아니냐고.. 뭔가 텐트 치면서 움직이는 활동, 액티비티, 등산 등 고된 활동 여행이 더 재미있지 않냐고 하는데, 사실 나는 반반이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사실 단체 (4명 이상) 가는 여행이면 글램핑, 캠핑, 등산, 야영 등 조금 내가 뭔가 이루려고 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보이면 더 재미있고 서로 돈독한 군대 스타일을 느낄 수 있겠지만, 요즈음 코로나라서 온전히 나 혼자 여행하고픈 생각만 많아지더라.


그냥 코로나 10만 명대 돌입부터 사실 겁먹었다. 이러다가 나도 무증상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설날에 외할머니 댁에 가기 전에 미리 자가 키트 진단도 받아보고 음성 체크도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거 있잖아. 다행스러운 건 난 주위에 그렇게 술 퍼마시고 놀자는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위안되었다. 그런 친구들 있으면 무조건 멀리 여행 가서 술만 퍼마시거든.. 예전에 그런 경험 이후로 다음날 일정 꼬인 부분도 있고 사실 나만의 '여행 방식'이 확고하지만 그렇게 여행 관념 확실한 타인들과 친구들이랑 같이 동행하면 괜스레 내가 불편하더라. (아마 여행을 임하는 성향 차이인 듯)


나는 온전히 '무규칙, 무계획' 여행을 좋아했기에, 이러한 부분은 남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지.

그런데 막상 해보니 사람들도 대리 만족했었고, 나 또한 그래 왔다. 그럼 이걸로 된 거였지.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야기를 친구한테 정성적으로 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니 결국에서야 '갓혁만의 여행 철학'을 드디어 이해했다.


역시 친구 아니랄까 봐, 진짜 설득하고 이해시키느라 이 똥고집 선비 마인드 친구를 겨우 설득시킨 나 자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짝짝 ._.


인사동 10길


경운동 민병옥 가옥,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구경할 수 있다.


친구랑 경운동 민병옥 가옥 풍경을 보고, 여기는 진짜 재벌들이나 부촌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확답했다. 사실 민병옥 또한 그랬다. 나중에 자신의 가족과 사업 증진을 위해 결국 '친일파'로 변질된 인물이지만 말이다.


근현대사를 보면 왜 이렇게 변질된 사람들이 많을까 의심이 들었다. 예전에는 교과서로 배운 자아가 미성숙한 학창 시절에는 그저 욕만 하기 바빴다. 마치 이완용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어느 정도 성숙해지고 다양한 역사 체계론을 공부하다 보니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저명한 역사학자가 그랬다.


국뽕 가득한 국사만 공부하지 말고

객관적인 시야를 가진 세계사를 공부하면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가지게 된다고.


나는 이 말에 굉장히 납득했다. 국사랑 근현대사는 너무 국뽕이 넘쳐흐르지 못해 그냥 홍수다.


이때부터 알았다. 왜곡되고 편협된 시야를 가지는 것은 어쩌면 하나만 보고 둘을 모른다는 개념이 아닐까.


그리고 내심 속마음을 바꿨다. 민병옥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이완용도 그랬다. 고종 대신 서약한 그 과정, 분명 자신의 가족을 위함이겠지. 명분 없는 이유도 없고, 이유 없는 명분도 없었다.


단지 크게 거시적으로 '나라'를 팔았다는 그 하나만으로 욕만 먹었던 건 부정할 수 없었기에..


어쩌면 현 정치판도 좌, 우로 구별된 이유가 이 사례랑 비슷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하나만 보고, 둘을 못 볼까...



그렇게 친구와 열띤 역사 관련 이야기를 하니까 온몸에 있던 '수제비 열기'가 사라졌다.


아까 그 동동주 열기도 다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하나 더 시키고 거기서 마무리할걸. 괜히 나와서 자기 이야기만 고집부리는 주둥아리만 나불대는 우리 친구 썰을 듣자 하니 귓속 고막에서 피가 나올 듯했다. (추위는 덤으로 아오.. 하하하)


그렇게 인근을 걷다 보니 '이화 문고'라는 서점을 발견하였다. 표지판부터 뭔가 레트로 하였다. 여기 가면 옛날 80년대, 90년대 만화책이나 관련 서적을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내가 좋아했던 당시 드래곤볼과 닥터슬럼프, 슬램덩크까지.. 한번 구경하러 가볼까 했는데 역시나 코로나 여파로 닫혀있었다.


앞에는 크게 'CLOSED'도 아닌, '닫힘'이라는 아주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이 말 하나로 우리는 빵 터지고 말았다. 이 나이 먹고 이런 소소한 개그도 아닌 말 감성에 훅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골목을 후벼 파기로 마음먹었다.




삼일대로에서 낙원동 아귀찜 거리로 이동했다.

인근에서 뭔지 모르지만 낯이 익은 한옥들을 발견했다.

어.. 여기 그곳이다.

익선동이었다.




익선동으로 가는 길

예전 20살 때 싸구려 10만 원 일렉기타 구매하겠다고 왔던 낙원 상가

여전히 영업 중이지만 예전의 그 힙하고 버스킹 하는 장소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낙원삘딍


낙원 상가 저렴한 기타와 일렉기타.

여기서 대부분 락에 대한 입문 과정을 거쳐간다.

그리고 줄 하나씩은 튕겨 떨어진다.




나의 20살 추억이 깃들었던 '낙원상가' 이름하여 '낙원 삘딍'...


너무 아재스러운 말투였나. 그렇지만 이 감성은 묘하게 나의 대학 시절 예술혼을 불태웠던 '홍대'와 '혜화' 다음으로 꽤나 유서 깊었던 장소였기에 누구보다 더 진득한 감성을 받아 갔다.


아쉽지만 지금은 재개발 논란으로 인해 낙원상가 인근 일부 골목이 서서히 옛 감성이 사라진채 현대적으로 바뀌고 있다.


정확히 기억난다. 낙원상가 어딘가 2층에서 보세 옷이랑 저렴한 빨간색 일렉기타 사겠다고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생떼 부렸던 수능이 끝났던 2010년 11월 말..


그리고 15만 원을 받아 3만 원 보세 옷을 구매했지만 동대문 밀리오레의 무서운 2007 버전 형님, 누님들께 뚜까 협박당하고 강요로 구매했던 사기판 비니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당시 동대문에 영업했던 친한 형이 나에게 원가보다 50프로 더 가격을 올려 팔았더라. 아직도 억울하지만 그분들 지금은 어엿한 유치원생 아이를 가지며 사회에 찌드셨겠지. 그립기만 한 그때의 동대문 감성. (참고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동대문과 낙원상가, 홍대 구제, 보세 옷이 유명했다. 지금은 온라인 상품과 해외 직구로 가능했다만, 그때에는 SNS가 있었겠나. 해봤자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초창기 버전'이 전부였던 그 아름다운 20대 시절.)


원조소문난집국밥전문, 종로3가 노상포장마차


2000원에 해장국을 판매하는 30년 전통의 허름한 맛집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내가 '아재'된 느낌을 물씬 받았다. 10년 전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업무를 끝마치고 여기서 가끔 술 한잔하셨다고 한다. 거래처 사장님들과 사업 존속 여부를 위해 진득하게 동동주와 파전, 그리고 해장국까지 1~3차까지 부어마시고 끝에는 결국 계약 유지와 장기 체결까지 진행되었던 지금의 강남 옛날 느낌이었지.


인근 노포 여전하구나. 노상 포장마차는 개인 사업이라 그런지 영업시간의 여부를 딱히 받지 않는 듯하였다. 인근 술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코로나로 인해 영업 제한을 받다 보니 대부분 소소한 회식을 위해 이 노포에 몰린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시끄러움은 덤.


친구도 여기서 한잔할지 물어봤지만, 왜인지 여기서 한잔하면 새벽 3시까지 미친 듯이 고량탱이 마냥 처마실까 봐 그냥 싫다고 했다. 그리고 한걸음 두 걸음 거닐면서 속으로 내심 생각했다.


'아 진짜 마실까? 아냐 괜히 마시다가 코로나 걸리면 어쩌려고, 그것도 그렇지만 추운 곳에서 마시면 입 돌아가고 부모님도 못 알아보면 어떡하냐..'


마침내 표정을 읽었던 친구는 그냥 쓰윽 웃으면서 "장난이야 인마" 이러고 다시 이동하였다. 하지만 얘도 솔직히 속으로 나를 원망할지도. '아 그냥 가자면 가자고 할 것이지 말이 많냐.'라는 느낌이었겠다.


그리고 인근에서 젊은 커플들이 취해서 싸우고 있었다. 입김 얼어붙는 와중에 서로 외투 집어던지고 사랑싸움하더라. 우와 역시 젊은 게 좋구나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좋은 게 아니었다.


해당 영업 중이던 노포 주인들은 말리고 있고...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다들 술 즉당히 드세요. 진짜 개 되면 답 없다. 소중한 추억이 아니라 그냥 망나니야 이것들아.


자, 웰컴 투 익선동 한옥거리



일명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진짜 신기한 점 하나 알려드림? 전 포스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촌, 북촌, 남산골 한옥마을처럼 여기에도 ㄷ, ㄴ, ㄱ 자로 된 한옥들이 많다.


요즈음 네이버 로드뷰 보면서 이런 맛에 산다. 가끔 업무 하다가 심심하면 대리로 한옥마을 찾으러 떠난다.


일명 갓혁의 랜선 한옥마을 찾기 프로젝트


응 사실 부질없는 짓은 아는데 누군가가 안 찾는다면 내가 이런 거라도 찾고 포스팅하면 도움드리는 것 아니겠는가?



다들 이렇게 골목투어 한다는 게 봉사 활동한다고 뭐라 하겠지만 난 봉사 활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하나의 콘텐츠로 될 수도 있거든.


랜선 한옥마을 구경하기. 얼마나 재밌어. 가끔 생각이 드는데 이것도 생각나더라.


이런 한옥마을 사이사이로 '런닝맨'이나 '숨바꼭질', 그리고 '숨겨진 쪽지나 보물찾기', 더 한다면 이름 모를 한옥 폐가나 흉가에 '방 탈출 게임'까지 만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누구는 미친 짓이다 하겠지. 그런데 요즈음 미친 짓 또한 하나의 콘텐츠더라.




맛있는 음식을 맛없게 먹어보기

숨겨진 흉가와 폐가를 리모델링하여 1달 살아보기

24시간 멍 때리기

마을버스만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기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한옥마을'에서 24시간 한복 입고 조선 왕 놀이하기



이 이야기를 친구한테 30분 동안 썰을 풀었다. 아이디어 하나는 기가 막힌데 그런 촬영과 시간, 돈을 누가 소비할 것이냐고 현실적인 답변을 남겨 놓더라.


음.. 그러게 사실 이러한 부분까지 너무 진지하게 가면 일단 진부하길래 그냥 '아이디어'만 내놓았다. 역시 아이디어 창고, 기획, 계획안의 우두머리 ENFP는 분명하지.


사실 현실은 불가능하다. 아직 시기상조인 것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먹힐까? 그걸 컨텐츠화 한다면 누가 구경할 것이고 어떤 플랫폼을 적절히 활용하겠는가. 또한 성별과 세대 유무까지.


모든 걸 생각하면 끝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넌지시 물어봤지만 30분 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친구가 긍정적인 답변의 입을 열었더라.


"어, 야 솔직히 괜찮긴 하다. 요즈음 다들 BTS와 오징어 게임에 머물렀지. 유튜브에만 환장한 사람들이 그런 콘텐츠에 관심 가지려면 예능 프로그램 느낌으로 찍으면 좋지 않겠냐?"


맞는 말이다. 나 또한 그런 느낌에 한몫했다고 본다. 솔직히 친구가 이야기했던 그 맥락에 어느 정도 이해한다. 아니 솔직히 무릎을 탁 치고 싶었지만 추워서 못했다. 손이 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충분히 공감해 주고 동감해 주었던 친구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기뻤다. 이 친구도 사실 골목투어를 귀찮아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좋아했지 덜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솔직히 '게으름' 때문에 진행을 안 할 뿐이었다.


HANG OUT



그렇게 익선동을 30분 넘게 걸었나. 역시나 커플들이 많았지만 내 친구는 DSLR 카메라를 들고 서서히 풍경들을 하나하나 찍기 시작했다. 괜스레 그 분위기에 한몫하여 찍는 일종의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짝 키득거리면서 이 친구가 찍는 과정이 얼마나 유익한지 아닌지 한번 결과물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잘 찍는다. 구도와 배경, 그리고 타이밍을 제대로 아는 친구인데 '귀찮음' 때문에 안 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여기 '행 아웃' 앞에 있을 테니 내부 구조 찍고 오라고 살짝 조언 겸 강요, 설득을 했다. 그러더니 이 미친놈이 바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술 마시는데 DSLR로 사진 찍는 게 아니더냐.


난 순간 황당하였지만 10분 내로 모든 감성이 완벽했는지 이대로 입구로 팔자걸음 하면서 나오더라. 난 당황했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다. 괜히 시켰나..? 아니 솔직히 그냥 해본 말인데 이 친구도 꼴에 사진 찍는 자존심이 있었다. (친구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친한 애증 표현) 그래서 결과물을 또 보았다.


웃긴 건 사람들이 DSLR을 들고 온 어떤 장발의 거인을 보니 다들 숙연해지고 마치 연륜이 있는 촬영 작가로 인식했나보다.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_.


그리고 어떤 젊은 청년 3명이 같이 사진 찍어달라고 친구한테 달라붙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알았다. 이 친구는 유튜버를 해야 했다. 진짜 얘는 뭘 해도 대성할 친구였다. 솔직히 이때부터 조금 부러웠다. 그래서 앞으로 나도 장발을 하고 DSLR을 준비하려고 한다. (?)



아무튼 잠깐의 소동(?)을 뒤로한 채 어깨가 머쓱 올라간 친구는 갑자기 진짜 본인이 작가인 것 마냥 행세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옥마을 어딨냐고 계속 나보고 앞으로 주말마다 가자는 것이다. (이 자식은 자기가 기분 좋으면 언제 나쁜 이야기 들었냐면서 남에 대해 관용을 아주 잘 베푼다.)


물론 시간이 없는 관계와 같이 가면 내가 가는 장소와 구도가 분산되고 예술 철학에 막대한 손해 지장을 줄까 봐 가기 싫다고 했다. 갑자기 머쓱해진 친구는 '알겠다'면서 그냥 멍하니 앞만 보고 거닐었다. 그리고 인근에서 맞이한 마지막 한옥을 배경으로 멋적스럽게 사진 한 방 찍어주고 우리는 이 익선동 골목을 벗어나기로 한다.


사실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가 심해졌으나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건 부정할 수 없더라.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이 자영업자분들께 막대한 피해를 줄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평양 익선 회관




'너의 사랑, 나의 사랑' By 김경진


우리가 아는 그 김경진 개그맨님이 맞다. 이제는 개그맨이 아니라 예술가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본다. (마치 이상순이 노래 작곡가였지만 이효리와 제주도를 떠난 뒤 예술가가 된 느낌처럼)


2007년인가 당시 MBC 예능 코미디 '개그야'에서 한참 장발 머리로 바보 컨셉으로 유명세를 펼쳤던 김경진씨. 그때 그 개그 감성 너무 그립더라.


개콘이 망한 이유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 솔직히 거기 있는 개그맨분들 다 개성이 있는데 공중파의 한계인가. 정치적 이슈와 결부된 개그 그 과정 자체에서 왜 문학, 예술, 언론 과정까지 탄압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요즈음은 쌍팔년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부분이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한 건 확실히 '공중파'가 '정치'와 연관되었기에 그랬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청계천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골목투어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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