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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y 04. 2022

사라진, 살아난 동네 <새문안마을>

뉴타운으로 지정될 새문안 마을을 기록하다.

사라진 동네, 살아난 동네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 어렸을 적에 이런 느낌의 동네에 살았었다. 서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매우 노후화되고 낙후된 지역.


그때는 옹기종기 모여 빨간 벽돌 마주보며 서로 깔깔 웃으며 옆집 담벼락 넘나들며 친구들과 오징어게임 비슷한 놀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삭막하다. 그래서 조금 더 중점을 두고자 작성하는 글이다.

사라진 동네, 살아난 동네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돈의문 안과 밖의 새문안 동네와 교남동 일대는 2003년 '돈의문 뉴타운'으로 지정되었다.


돈의문 밖,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성곽 아래로 한옥과 나지막한 집들이 펼쳐진 교남동과 주변 동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만큼이나 오랜 시간의 정취가 배어 있고, 정든 이들의 추억이 쌓여지는 그윽한 동네였다. 한편, 돈의문 안에는 '작은 시간의 섬'처럼 새문안 동네가 자리했다. 오래된 골목 사이로 한옥과 근현대기의 집들 할 것 없이 식당과 가게들이 들어설 때가 되면 찾는 손님들도 북적이는 활기찬 동네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러한 동네의 모습을 서울 생활문화자료조사 사업을 통해 기록하였고, 그 결과물을 '돈의문 뉴타운 조사 보고서 - 돈의문 밖, 성벽 아랫마을 2009'로 발간하였다.


뉴타운 지정 후 10년이 지난 2013년에 교남동 일대의 전면 철거가 시작되었다. 많은 집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가운데, 이를 기록해두고자 민간 연구그룹이 모여 자발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한옥과 일식 주택, 전후에 지은 연립주택과 함께 한가운데 자리한 홍파동 골목을 자세히 실측하고 기록했다.


한편, '근린공원'으로 계획되어 일부 건축물만 남기고 사라질 뻔한 새문안 동네는 이러한 노력들에 힘입어 오래된 골목과 집들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구상되었고, 이를 실측하고 인터뷰도 하는 등 기록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2층에서는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던 #아지오 (AGIO) 공간을 복원했다. 그동안 이루어진 기록 작업들을 모형, 영상, 패널 등으로 전시해, '사라진 동네 교남동'과 '다시 살아난 새문안 동네'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내가 골목투어를 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도시재생과 관련된 서울 사업이 마음에 들기 때문. 재개발자들과 투자자들은 한편으로 무분별한 서울 재개발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새문안 마을 유명한 레스토랑 아지오 (Agio) 마스코트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 도시 건축 변화의 기록


2013년 봄, 오래된 성 밖 동네 교남동은 뉴타운 건설을 위한 철거 현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떠나고 빈집들의 벽면에는 붉은 페인트로 철거 대상임을 나타내는 표시가 거칠게 그려졌다. 뉴타운이란 이름의 새 동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것이라지만 오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안타까움이 사라질 동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생각은 망설임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대략 길이 850m, 폭 250m 가량의 거대한 땅, 그 위에 쌓여있는 하나하나 빠짐없이 모두 소중했을 수많은 삶의 증거물들 앞에 우리의 실측판은 너무 작았고 우리의 눈과 손은 너무 느렸다. 철거 작업은 때로는 굉음과 함께, 또한 때로는 소리 없이 압박해왔다. 어쩔 수 없이 기록의 대상을 오래된 집들을 중심으로 선별해야 했다. 삶의 가치, 그 흔적의 가치를 차별할 수 없겠지만 얼마 되지 않는 우리의 손과 실측판 수 그리고 주어진 시간의 한계는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했다. 결과적으로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의 총 900여 동의 건물 중 307동을 조사기록했다.


조사기록 작업은 철거가 진행 중인 교남동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시작되자 놀라운 발견들이 어어졌다. 교남동을 따라 흐르는 만초천 천변에 땅의 형상과 변화를 따라 적응하며 세워진 놀라운 모습의 한옥군, 마지막까지 대청마루에 창문도 달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사용된 한옥집, 초가집에서 시작하여 주변의 집들을 통합하여 성장해간 복잡한 구조의 음식점, 초가집이 원형인듯한 여관집, 북촌 등지에 일반적인 도시한옥이 성립되기까지의 중간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평면구성의 사례들, 일식집 같은 한옥, 양옥 같은 일식집... 층층이 쌓여있는 삶의 퇴적된 층 속에서 변화의 과정, 적응의 과정, 절충의 과정 등 이제까지 찾기 어려웠던 실제적, 도시적 양상들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교남동의 조사기록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서울시에서는 여러 논의를 통해 조사된 건물들 중 11채의 한옥을 선별하여 철거하되 상세한 해체 보고서를 작성하고 해체된 부재들을 보관하였다가 원래는 돈의문 뉴타운의 공원 부지가 될 새문안 동네에 옮겨 세우자고 결정했다. 무작정 시작한 조사기록 작업이 시발점이 되어 오래된 집들이 본래의 터를 떠나지만 인근에 남게 되고 또 그 집들이 옮겨질 새문안 동네의 운명 또한 완전 철거에서 보존 재생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 11채의 선별 보관된 한옥은 결과적으로 새문안 동네로 옮겨 지어지지 못했다. 또 다른 상황의 변화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애초에 철거될 계획이었던 새문안 동네의 도시한옥과 일식집, 양옥집들의 대부분은 조사기록 작업과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옛 동네 교남동은 사라지고 돈의문 뉴타운 새 동네가 만들어졌다. 새로운 동네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층들이 또 쌓여갈 것이다. 성 밖 교남동과 마주 보고 있던 성안 새문안 동네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그 안 깊숙한 이곳, 옛 아지오(AGIO) 건물은 서울역사박물관 돈의문 전시관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공유하는 이곳에 옛 동네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의 조사된 기록들을 담아 전시하였다.




의문 뉴타운 새 동네에 쌓여갈 삶의 층들이 옛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를 이어가는 것임을, 옛 동네의 기록이 새로운 동네에서 쌓여질 기억으로 이어질 것임을 믿음과 함께.



옛 교남동은 지금의 이 경희궁 자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근에는 교남동의 흔적이 있다는 듯한 표적과 흔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교남동 옛 아지오 레스토랑의 창문


새문안 동네는 돈의문으로 들어오면 만나는 작고 오래된 동네이다. 1890년 영국인 월터 힐러(Walter Caine Hillier)가 촬영한 사진에서 돈의문과 성곽, 경희궁 사이,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옛 동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가와 기와집이 들어선 골목과 땅 모양을 추정하여 지금과 비교해 보아도, 많은 부분에서 큰 차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도시 조직이 잘 남아있는 동네라 하겠다.


동네를 크게 동서로 나누어 보면, 변화가 많았던 서쪽은 돈의문과 둘러싼 성곽이 없어지면서 '열린 큰 땅'을 나누어 새 건물이 들어섰다. 큰 길 방향으로는 커다란 유한양행 사옥이, 그 위로는 경희궁과 사이에 도시한옥들이 골목을 끼고 나란히 들어섰다. 동쪽은 오래된 땅 위에 개화기를 시작으로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다양한 시기의 집들이 들어섰다. 그중에는 한옥 바탕에 일식과 서양식이 섞인 독특한 집이 지어지기도 했다.



옛 교남동과 새문안 마을의 풍경. 2003년 뉴타운 계발 계획 전 아름답던 옛 순수했던 동네. 고층 건물이 없었던 그 당시 그대로 순수한 건축물들의 대표지.



새문안 동네 좁은 골목길마다 있는 자생 식물들 분포도. 이 도시재생 시민단체가 얼마나 노고를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축물 뿐만 아니라 인근 가로수와 골목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매력적인 시도였다.


교남동 일대와 새문안 동네 전체 지도 2013


돈의문 뉴타운으로 지정된 교남동과 새문안 동네의 ‘골목과 집’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를 시작한 2013년을 기준으로 한옥, 일식 주택, 제2중앙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지은 재건축 주택단지 등을 표시하였다. 1914년 지적원도를 바탕으로 옛길과 돌길을 지도에 표시하여 2013년 당시의 길과 비교하였다.


성 밖 교남동 일대 중 위쪽에 자리한 ‘재건축 주택단지’ 지역은 변화가 가장 많아 오래된 골목과 집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새로운 길과 집들로 바뀌었다. 아래 지역은 예전의 골목과 집들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편이었다.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는 만초천 주변의 오래된 동네를 실축 자료를 바탕으로 모형을 만들어 ‘홍파동 골목’이란 이름으로 전시하였다.


성안 새문안 동네는 크게 동서로 나누어지는데 동쪽은 골목길 안에 개화기와 근현대기의 다양한 집들이 들어섰으며, 서쪽은 1930년대에는 큰 변화를 맞이해 유한양행 사옥과 도시한옥이 들어섰다. 주택이 주를 이루던 교남동과 달리 새문안 동네는 식당과 가게들이 모인 작은 동네가 되었다.




골목 조사 기록과 입면 - 조사 및 작성 2013 / 편집 2018



당시 교남동과 그 인근 마을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한 기록과 마을 구상도를 통계화, 수치화하여 마을 건축물에 대한 기록을 상세하게 보관하였다.




문 안팎 동네의 골목과 집들


사라지고 잊혀가는 교남동의 골목과 집들을 모형과 영상으로 만들었다. 수년간 진행한 답사와 실측자료를 바탕으로 집과 골목, 나무와 사람, 간판과 맨홀까지 주민들이 살던 '한창때 동네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다. 철거되는 교남동 현장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이축을 위해 해체한 후, 다시 지어지지 못한 '한옥 11채'의 부재를 쌓아 '동네와 집들이 사라진다.'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하였다.


한편, 새문안 동네의 예전 모습은 답사와 기록을 바탕으로 영상과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성곽 터를 따라 들어선 유한양행 본사, 골목 안에 있던 LP Bar, 현재 '돈의문 전시관'으로 쓰는 레스토랑 아지오와 한정, 한옥 식당 골목 등을 골목 지도 안에 담아 보았다.



어렴풋이 아래 전화번호 733 - 3334가 보인다. 지역번호 02가 없다는 점을 보아 아직 통신망이 완전히 구축되고 통합되지 않았던 1970년대~80년대 사이로 보인다. 또한 적산가옥 느낌을 보여주는 건물임을 증명한다.


원조 서울집


귀빈장

여관처럼 보이는 장소 앞, 여러 사람들이 담배를 피며 노가닥거리고 있다. 


궁전숯불갈비, 한국법정신문, 버블캐슬


효성 스즈끼, 대림

요즈음 나와 같은 젊은 세대는 효성 스즈끼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다. 허나 우리 부모님 세대는 효성 스즈끼가 무엇을 의미하고 대표하는지 정화히 이해하시는 듯 하다.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과정에서 '도시재생'과 '건축 건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점점 변화되고 있다. 이 세상은 재개발로 인공적인 자리를 가지는 사회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다들 알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올리게 된다.


현재 기록하는 이 글은 도시재생 및 재생건축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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