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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y 07. 2022

서울역 11번 출구, 해방촌

서울 골목 투어, 레트로 골목을 찾으러 떠난 여정.

그렇게 가지각색의 풍경과 소소한 광경을 놓치기 힘들었다. 스스로 그렇게 자부했으니까 말이다. 어지간하면 2월부터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그 생각은 현실적인 상황과 이상적인 부분과의 경계였다. 그 틀을 깨부수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나는 그렇게 혼자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현실과 고군분투하고 있을지 남들은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현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 서로 무관심이었다. 오히려 더 반가운 소식이었다. 걱정 없는 내색을 겉으로 표현할 때마다 나는 오히려 더 무관심 속의 관심을 이끌도록 노력했단 말이다.


사실 금년 3월부터 지속되는 코로나의 여파 사이에서 골목투어나 여행은 쉬운 게 아니었다. 이미 역학조사가 불가능한 시점에서 오롯이 나 스스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코시국의 이면 된 벽. 당분간 영업 또한 사이버로 진행될 예정이라 모처럼 시간도 여유로워 후암동을 가보기로 하였다. 요즈음 잠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움직여야 했다. 남산 자락에서 일몰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 동안 많이 곱씹고 싶은 나의 일상이었다.


4호선 서울역 11번 출구로 이동한다. 그리고 용산고등학교 방면까지 걸어본다.


후암동, 그리고 두텁바위로길

서울 골목길 재생사업의 일환

그리고 주민들의 삶의 변화를 만들다.


남영동 방면 미군 기지


용산에는 미군 기지가 이미 이전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주한 장교들은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그들은 해방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여쁜 6살 딸과 미군 장교 아버지는 스페인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 따님의 생일이니 스페인 음식 먹으러 HBC에 가자는 아버지의 기쁜 말투가 정확히 내 귓가에 들렸다.


용산고등학교

어느새 시간이 흘러 후암동에 도착했다. 용산고등학교를 보자마자 순간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바로 이 모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예전 용산고 학생들은 불량하기 그지없었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5년 전에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학창 시절 썰을 들어보면 양아치 고등 학생 시절을 청산하고자, 그리고 유교의 때가 묻은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기 위해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고 들었다만 여전히 그 과정이 의문이다. 그러나 확실히 봤던 점은 '용산고' 출신이 맞았던 우리 아버지.


후암동 랜드마크라고 자부하는 N타워, 일명 남산타워




남산타워가 코앞이라는 점을 까먹고 사진을 찍었을 때, 결과물에 찍힌 광경을 보고 금치 못했다. 그렇게 여자친구와 함께 올라가자고 서로 간의 약속을 꽁꽁해두었지만 쉽지가 않았다는 점, 남산타워에서 사랑의 열쇠고리를 만들고 영영 헤어지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결국 3년 뒤의 나를 뒤돌아보니 똑같은 데자뷰의 장소였지만 여전히 반갑지가 않더라.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그저 SNS라는 비대면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왜 그렇게 무색할 정도로 너에게 관심을 못 가져다 준거였니. 이제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나 또한 성향이 많이 바뀐 듯하다. 남에게 의지하고 수동적인 삶을 옳은 삶의 틀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니었음을 그렇게 생각했다. 요즈음은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


아무튼 남산타워를 바라보면 그저 너만 기억나더라. 그렇지만 하루 종일 함께했던 2017년의 추억을 다시 회상하기는 싫었다. 그러면 괜한 감성 낭비라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게 고심할 이유도 없다. 그저 그렇게 남산타워 방향으로 이동하면 또 하나의 레트로 골목을 맞이한다. 이름은 ‘두텁바위로’라고 한다.






두텁바위로 방면 정확히는 후암동 오거리 가는 방향


요 근래 아는 지인이 이 골목길을 한 번 거닐어보라고 추천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사진으로 봤을 때에는 그저 평범한 마을이 있는 골목길인데 어떠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지. 그것보다는 K가 이런 말을 남겨주었다.


“소소한 골목이나 장소에서 스토리텔링 꺼내기 쉬운 사람들 없는데, 너는 너무 잠재적 감성이 풍부한 나머지 여길 적극 권유한다. 안 가면 알지?”


결론은 한번 가보라는 말이었는데 또 삥 둘러말하네. 내심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고마웠다. 그만한 기대였을까. 솔직히 도착했을 때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감성 충만한 골목길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또 걷고 걸었다. 리모델링한 빨간색 담벼락과 아이보리색의 카페들이 즐비하고, 곳곳에서 복합문화 단지와 소소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었다.


두텁로 40길은 현재 서울 골목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복구되었던 10개 골목 중 하나이다. 그 길을 지금 걷고 있다.


위치 : 두텁바위로40길 /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딱 하나이다. 해방촌이라는 소소한 집성촌을 보기 위해서이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오밀조밀하게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가끔 인근 이태원이랑 오해하는 곳이긴 한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경계선이 구분되어 있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태원 외국인 사장님들이 임대가 저렴한 해방촌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더라. 그리고 그들에게는 ‘HBC’이라고 불린다. 딱 봐도 해방촌의 스펠링 이니셜이다.


10년 전 유세윤과 뮤지가 만든 대박 신드롬, ‘이태원 프리덤’을 들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 또한 당시 갓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으로서 꽤 문화충격이었지만 어느새 외국까지 발 뻗은 제2의 강남스타일이라고 할까. 아는 사람들은 아는 유세윤만의 고품격 B급 개그 감성이 한몫했다고 한다.












그 당시 정말 이태원이 이런 느낌일까 했다. 그러나 요즈음 내가 가는 이태원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리고 후암동 또한 그렇다.


그런데 확실히 하나 차이를 느낀 것은 이태원은 밤에 가야 의미가 있었고, 인근 후암동과 해방촌은 오후 3시 이후, 심지어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려면 일몰 시간인 오후 5~6시 사이에 와야 한다. 같은 인근 지역이지만 확실히 차이가 있는 이유는 단 하나.


후암동이 가지는 감성은 마치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는 감성이랄까. 정확히는 일몰 때 보는 남산타워가 확실히 내 감성을 잘 대변해 주더라. ‘오늘 하루 고생했어’라는 수식어구에 걸맞게 나도 모르게 인근 서울 전망이 보이는 남산 자락에 위치한 소소한 카페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면 그 정답을 알 수 있었다.



The ROYAL
오후 5시 30분의 후암동


신흥로 20길 / 일몰 보기 좋다는 후암동의 명소. 여러 레트로 카페가 즐비하다.


2022년 한 겨울, 오후 5시 30분의 후암동.


그렇게 저 멀리 보이는 동네부터 서서히 소소한 불빛이 맴돌기 시작한다. 어쩌면 오늘 정말 고생했다는 느낌을 그렇게 풀어가는 사람들이기에 더 마음 곳곳에서 아련함이 맴돌기 시작했다. 서울역에 위치한 높은 빌딩들도 그렇게 오늘을 마감하듯이 서서히 불이 꺼진다.


후암동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굉장히 매력적인 서울역이 있고 인프라가 좋아 보이는 현실이지만 사실은 용산구에서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렇지만 곳곳에 보이는 공실과 허름하게 쓰러져가는 인근 미군 돌담길조차도 오늘도 무사히 버텨왔다는 듯이 다시 새로운 예술가의 보금자리로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후암 오거리

그리고 무니(MOONIE) 카페


서서히 일몰이 지려고하니 인근 레트로 카페가 유독히 눈에 띄었다. 특히 작지만 아담한 공실을 카페로 리모델링했다. 위치는 조그마한 신흥시장 옆에 있다. 서울에서 이런 소소한 오거리를 본다는 것은 매우 드물다. 내가 아는 오거리는 사실 후암동이 처음이다. 사거리는 많이 들었지만 오거리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장소를 거쳐갔는지 나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 레트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무니'카페로 들어가 라떼를 하나 시키고 그동안 밀렸던 '연희동 일기'를 작성하고 있었다.


바다에 오션뷰가 있다면, 후암동은 일명 '일몰뷰'가 있다. 그리고 서울 전경을 볼 수 있게끔 창이 널찍하고 커다랗게 되어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자리는 여전히 만석이더라. 그래서 나는 콘센트가 있는 구석 자리에서 그저 멀찌감치 노을을 구경하려고 열심히 사색하는 마음을 준비하고 있었지.


오후 6시, 후암동 전경과 무니 카페의 조명등



인근에는 후암동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구경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 시끌벅적했던 어느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여느 시장처럼 굉장히 조용하다. 이제는 비대면이라는 시국에 걸맞게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상당히 힘들어하는 그들을 기록으로 남겨보려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후암동 사람들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당연히 있지. 그렇지만 오늘은 이렇게 주민들을 더 크게 위로하고 대변해 주려고 한다. 단지 내가 머문 자리가 아름답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그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을 무조건 던져보자.


‘후암동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사시는 것 같다. 그렇죠?’


정답은 모른다. 오히려 이 질문 하나에 다양한 해답이 엇갈리겠지만 우리는 조금 더 삶을 인문학적으로 관 조해야 한다. 순간 굉장히 어질했던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렇게 '신흥로 20길' 방향에서 '후암 오거리'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물씬 풍기는 감미로운 공실에서 빨간 불빛을 머금은 레트로 감성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다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흔적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장님들은 멀찌감치 바깥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지 그저 구경만 하실 뿐이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
id plants
브루어스
남산 마트
돈키돈키
신흥시장 내부 카페 타자기
신흥시장 인근 고양이
해방촌 신흥시장, 옛 시장을 리모델링하고 건축물을 재생시키다.


해방촌 오거리를 중심으로 골목 곳곳을 이동하다보면 신흥시장을 마주하게 된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95-9 / 신흥시장




해방촌 신흥시장에 도착했다.


아까와 다르게 전혀 신비롭지 않은 분위기는 뭐랄까. 오히려 이 장소는 후암동이나 해방촌이나 거의 비슷했다. 다만 일몰이 진 이후로는 전혀 색다로운 느낌의 장소였다. 점점 이국적인 분위기에 전조등이 켜지기 시작하더니 아기자기한 벽돌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간다. 빛의 역광으로 전체적인 해방촌 골목길은 마치 하나의 유토피아 같았다. 예전 여자친구와 함께 거닐었던 장소가 이곳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잠시나마 헤어졌던 여자친구는 조용히 나에게 물어보았다.


‘우리가 알던 해방촌이 어느새 더 이국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네. 그때 너에게 줄 편지가 있었는데 그걸 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야 한 번 더 고백하네. 또 좋은 인연을 만나길.’


솔직히 나만의 생각이었지만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그녀가 건네준 편지를 그냥 곱게 받아볼 걸 뭐 하러 의심했을지 말이야. 스스로 그렇게 고집부렸던 3년 전 해방촌의 나는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보고 싶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생각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후암동 108계단

주민들을 위한 전동 엘리베이터


코스 : 두텁로 41길 - 신흥로 21길 - 후암오거리 - 신흥시장 - 후암동 108계단


이 코스면 후암동 반나절을 돌 수 있더라 ._.



해방촌 사람들과 후암동 사람들, 그리고 여기에 계신 예술가, 주민들의 흔적이 물씬 풍겨지는 엘리베이터. 예전에는 단순한 벽화마을로 자리 잡을 예정이었지만 이화마을과 북촌 한옥마을처럼 오버 투어리즘이 될 우려를 느낀 문화재청과 관광청에서 용산구에 소소한 지원을 해준 결과 이렇게 '주민들을 위한 관광지'가 완성되었다.


외부인들을 위한 관광명소와 또 다른 차별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보려고 하였지만 '주민들을 위한 엘리베이터이오니 외부인들은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인근 풍경을 찍기로 하였다.




밀영109


오늘은 "잘 했어."

"참 행복했다."


해방촌 녹색 골목길 中


내려오니 미군 기지가 보인다. 1년 전에 용산 미군 기지가 이전하고 남은 장교 건물과 LH 표식이 여전히 보인다.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에 가면 더 감성이 돋보이겠지.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란 하행선 골목을 이동하면서 곳곳의 추억이 담긴 풍경을 기록해 보고 또 곱씹으면서 추억을 만들어간다.





흐미 재즈바, 감성 주점


흐이 와인바와 미군 기지 담벼락


인근 스페인 음식점에서 사장님이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셨다. 그래서 더 감성 깃든 그 장소였기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리고 더 내려가면 외국인들을 위한 서점이 있다. 여전히 내 마음속을 후벼팠다. 한참 스페인어 공부에 관심 많았던 그녀와 2시간 이상 머물렀던 소소한 장소였기에, 그리고 여행을 좋아했던 동반자로서 나 또한 굉장히 소름이 돋았고 앞으로 다시 올 일이 없을 것이라 굳게 다짐한다.


고마웠다. 그리고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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