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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y 09. 2022

11학번 대학생, 그리고 혜화

청춘이 깃든 곳이어서 더 매력적이었지.

요근래 따분한 일상의 연속을 조금 벗어나고자 노력했지. 마침 카페에서 남은 업무 처리하다 보니 허리가 쑤시고 갓혁의 일상 대부분은 따분한 글들이 많아 조금 더 리프레쉬하게 어디론가 이동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언급한 바에 따르자면 나 또한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지만, 이 초라한 '인간'은 2022년 흑호를 맞이하여 나의 2016년 대학생활 라이프의 1/3 이상을 차지했던 무언의 장소로 이동하였다.


그렇다. 혜화다. (혼자 문답법) 참으로 이곳은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의미가 깊은 곳이다.


혜화의 이곳저곳 골목을 샅샅히 파헤쳐보기로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이 대학로는 나의 가장 우선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대학생 서포터즈의 주 근거지이자 서식지. 특히 혜화에서 서울거리예술축제 대외활동과 혜화 예술 뮤지컬 및 연극 서포터즈 활동을 진행했던 유일무이한 곳!

두 번째, 연극과 문화예술, 그리고 그와 관련된 마케팅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던 곳!

세 번째, 혈기왕성했던 당시 나의 전 여자친구와의 지속적인 데이트 장소였다!


어쨌든, 서두는 길었다만 본격적으로 '혜화'를 바탕으로 어떠한 감정을 느낄지에 대해 스스로 심사숙고할지어다.


어차피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골목투어 철학인 만큼, 하나도 해맑지 않게, 담백하게, 그리고 철학적인 나의 옛 대학생 라이프를 고스란히 녹여보고자 한다.


오후 2시 연세대 매점 카페

연세대에 잠깐 일이 있어서 탐방하였다. 확실히 예전과 분위기가 선뜻 다르다. 뭐랄까.. 그 생기발랄한 똥고집 부릴듯한 새내기들과 현역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분명 이 시간에 모든 대학생들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웨이팅을 하며 1500원짜리 매점 아메리카노를 구매하여 터벅터벅 과방이나 과실, 혹은 동아리실로 이동해야 할 텐데 전혀 아니란 말이지. 이 어색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N드라이브를 꺼내 예전의 그 대학생 라이프를 한 번 살펴보았다. 그저 온라인의 저장소에 담긴 내 옛 대학 라이프와 이 조용한 현실 대학 라이프 괴리감에 눈살을 순간 찌푸렸고, 이게 맞나 싶었다.


분명 인근 쉼터에서 새내기들끼리 눈싸움을 할 그 시간대란 말이란 말이야. 인근 현역 대학생들은 그걸 지켜보면서 흡연실에서 담배를 푹 피면서 교수님 뒷담을 까며, 졸업준비생 형들은 어느 순간 현역 대학생들의 인사를 대충 받아치며 도서관으로 터벅터벅 가야 정상이잖아. 전혀 어색해. 이건 아니야. 하마터면 억울함과 창피함이 속에서 솟구칠 뻔했지만 다행스럽게 참았다. 마치 세기말 과정처럼 조용하고 둔탁한 인근 망치 두들기는 소리만 요란하여 그저 10분간 사색하면서 이동해 보기로 한다. 이 어색함과 적막함은 제주도와 전혀 다르다. 대학생 라이프는 정말 활기차야 하는데 역시 코로나 자식이 모든 것을 망쳐놓은 건 분명하다. 체감으로 직감했다면 이 어린 친구들 또한 그렇게 느끼겠지. 미안하다. 괜스레. (감정 풍부해지면 눈물흘림, 구라 아님)




사계절의 푸르름 속에서 솟구치는 열망은 어느 날 그렇게 식어갔더라. 하마터면 정말 울뻔했다니까.


이래서 내가 대학생 라이프를 무시 못 한다는 거야. 그렇게 공부 처해서 대학교 갔더니만 거기서도 공부만 하라는 인생은 아니잖아. 우리는 적어도 인간이었고, 그 이전에 한 생명체로 태어났다면 당연히 천부적인 인간의 '기본권'을 섭렵할 권리를 지니고 있을 테니 말이야. 그걸 부정하는 순간 오롯이 공부만 해. 누가 안 말려. 하지만 누가 정녕 공부만 하겠어? 노는 것도 하나의 천부적인 재능이자 권리야.


잘 놀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공부하자. 그것이 인간의 기본 원칙이로다.



날씨는 무엇보다 쌀쌀하니 감성이 솟구치면서 더할 나위 없이 새로운 연도를 맞이했다는 신념과 함께 아프지 말아야지, 그렇게 아프면 어디 가서도 무시당한다는 명언을 스스로 습득하면서 고개를 내렸어. 무심히 하늘을 보면 저렇게 가지만 앙상한 이름 모를 나무가 전깃줄에 걸려있는데, 마치 교차하는 인생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저러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보다 무섭지만 이것 또한 자연의 순리인 걸 스스로 깨닫는 것도 별로 몇 분도 아니, 몇 초도 안 걸렸지 뭐야. 그렇게 스스로 인생의 회의감을 잠깐 맛보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마음을 부여잡아 601번 버스를 타고 싸클노래를 틀었지.



그렇게 가사를 곱씹으면서 어느덧 도착한 혜화역. 그냥 가보고 싶었어. 이유는 딱히 없어. 그저 연세대에서 있었던 어떠한 무지막지한 그 감성 덕분에(때문에) 내 심장은 좀 바운스 거렸거든.


마치 그 장소와 연관된 내 라이프가 여기에도 온전히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걸어갔어.



여전히 근처에 있는 KB 은행과 스타벅스 건물이 보이더라. 바로 혜화역에서 내리니 보이는 이 전망 좋은 빨간색 벽돌의 건물은 꽤 연식이 깊었어. 예전부터 2016년부터도 나 자신과 한참 싸울 동안 어느 세월아 네월아 힘겹게 이기기 위해서 이곳에서 많이 고군분투했어. 제2의 사춘기를 맞이할 나는 그렇게 절망스러울 수가 없었어. 어쩌면 이 장소는 나에게 너무나도 유익하고 큰 변환점을 제공해 준 곳이기도 하거든. 하마터면 또 2차로 울뻔했던 이 건물 앞에서 말이야.


혜화 대학로는 진심 나에게 의미가 깊은 장소이다. 인근 마로니에공원, 광장, 책다방, 북카페, 학림다방, 방탈출, 동숭아트센터 등등...



스타벅스 여전하구나. 5년 전에도 너 있었나 싶기도 하고. 참 신기하다. 여전히 있어줘서 내 감성 고스란히 그곳에 머물러주게 해주어서 고맙다.


2016년부터 꾸준히 사랑해왔던 장소가 있다. 바로 혜화역이다. 모든 장소가 예술적인 감각과 하나의 고즈넉한 감성을 품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한 발짝 두 발짝 이동할 때마다 옛 추억이 상기된다. 2016년 대학교 대외활동을 한답시고 이 장소를 거닐면서 다양한 서포터즈 활동과 연극의 메카답게 서울 거리축제 홍보 체험을 해보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예술적 가치를 서로 논하고 소통하면서 한편으로 인문학에 대해 크게 눈을 뜨게 된 시점이 바로 '혜화'가 아닐까 한다.


인근 대학로 겹겹히 쌓인 '어쩌다산책'이라는 서점을 최근에 알게되었다.

예술론에 근거한 대학생들이 여기서 책을 읽으며 미래에 대해 예찬하겠지.


장리욱


이분 동상도 여전히 있어서 고맙다. 2016년에는 그저 이름 모를 동상이 있어서 '이게 누구야? 우리 혜화역 토박이 아냐?' 이러면서 우스갯소리로 넘겼는데, 사실 리써칭해보니 꽤 저명하고 유명한 근현대사 인물이더라. 장리욱 선생님은 한국의 교육자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장과 총장을 지냈으며 《새벽》 지 사장, 주미대사, 흥사단 이사장, 실지회복 이북 동지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고 한다.



혜화의 대학생 그 추억을 생각하며..


그동안 덩굴에 휘감긴 이 느낌마저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니, 참으로 마치 나의 인생과도 같다.


새내기의 봄을 맞이하더니, 어느덧 혈기왕성한 현역 시절의 여름, 바쁘게 살아가고 치열하게 스펙 쌓고자 대외활동하여 살짝 지쳐간 가을, 그렇게 무덤덤해지고 자신에 대해 회고하는 겨울이라는 이 이미지에 걸맞게 덩굴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존재야. 4개월 뒤에 너 또한 푸르러질 테니 그때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줘. 다시 싱그러워질 테야.



그래도 그 자리에 있는 거지? 그렇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환영이야. 혜화는 더 이상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고, 또한 그저 평범한 상업적이 색깔의 의미로 짙어지기 싫어.


'예술'적 감상이 풍부해진 그 자리에 언제나 머무길 바란다.



연세대 호그와트 닮은 이 색깔의 조합은 뭐랄까.


스타벅스 입구


참 낯이 익네. 여기서 뮤지컬 공연했던 사람들과 잠깐 휴식 타임 가지면서 뮤지컬과 연극에 대해 소소하게 알아갔던 장소. 왜 그때가 그립지. 참 재미있었는데 말이야. 그분들도 잘 지내려나? 아 그전에 왜 혜화가 연극의 메카냐면 우리 부모님 시절부터 여기서부터 연극의 상업적인 활동이 시작되었거든. 그러나 최근 거대 자본 투입으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화 되어서 외곽으로 많이 빗겨나갔어. 참 안타까운 도시 재생의 역사야. 이래서 모든 부분은 다 연결되고 우리는 하나만 습득하고 이해하면 된다.


나무를 보는 대신에 숲을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한동안 많은 연예인들과 심지어 개그맨 양세형도 동두천에서 연극을 보기 위해 혜화까지 왕복했다고 할 정도면 말 다 했지. 어쩌면 또한 숙명일지라도, 모든 부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불쌍한 '혜화'는 점점 몸살을 앓고 상업의 거리로 변질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관심을 가져다주어야 해.


요즘 코로나로 인해 연극 지원금이라고 특수고용 프리랜서를 위한 정부에서 지원하는 금액이 따로 있거든. 이 부분 또한 위드 코로나로 2단계로 인해 결국에는 많은 활약을 하지는 못했어. 그럼 이분들은 소규모 연극 활동을 통해 벌 수 있는 수익이 점점 낮아지겠지.


각종 TV에서는 유명하고 저명한 연예인들의 연애 시뮬레이션, 집들이 구경, 집 풍경 보여주면서 자랑하는데 뭔가 뜬구름 잡기랄까? 우리는 전혀 그렇지가 않잖아. 그래서 가끔씩 생각이 들어. 순수한 연예인, 즉 이 연극배우들을 위한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따로 제작해서 3편 종편으로 방송해 주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잡생각이랑 잡소리가 참 길었지? 미안해 ! 예전에 꿈이 이런 길이기도 했고, 연극과 관련된 예술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대학시절이 생각나서 말이야. 다시 취지로 돌아가자.



참고로 이 근처는 항상 사람들이 버스킹 하면서 인근 대학생들과 다양한 관광객이 모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통했던 광장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무 조용하고 쌀쌀한 이미지를 맞이하여 꽤 조용하더라. 다시 그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광장에서 브레이크 댄스와 나얼 노래 부르면서 사랑 노래 읊고 싶다. 흑


전 여자친구와 한 겨울날, 손 호호 불면서 인근 '학림'이라는 아주 전통 깊은 카페에서 책 읽고 예술과 관련된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이 또한 추억이구나.


그 카페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지만, 예전과 사뭇 다르게 불이 반쯤 꺼져있었어. 마치 코로나 시대를 암시했나 봐.


그래도 여전히 그 다방 감성 돋우는 2층 창문을 통해 대학생들이 자주 갔던 장소임은 확실하더라.


아르코 예술극장


가장 저명한 혜화의 예술 극장이야. 인근에 동숭 예술관도 따로 있긴 한데, 사실 여기가 제일 원조라고 보면 되더라. 나름 해외파로 물먹었던 저명한 예술인들이나 뮤지컬 전공했던 분들이 오셔서 이 예술 극장 지하에서 하루 종일 연습을 했었어.


그리고 그 예술인들을 위해 보필하고, 동선 안내해 주고, 밥 먹으러 점심까지 인솔해 주고, 외국인이면 통역해 주고, 심지어 끝나면 인스타나 블로그로 홍보까지 해주고 참 재미있었던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추억이 되었어. 이분들과 친해지면 재미있는 게 확실히 예술인들이다 보니 고유의 간직한 똘끼를 그대로 발산하더라.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이분들은 뮤지컬 대본 연습과 동선 시뮬레이션이 끝나고, 나와 같은 서포터즈들은 공연 관리까지 다 마치면 함께 인근 고깃집에서 1차를 먹고, 2차로 인근 외국 삘 느낌 나는 재즈 바에서 하루 종일 밤새도록 (새벽 5시) 맥주 마시면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여기는 아까 아르코 예술극장 인근 광장이야. 굉장히 널찍한데 사람들이.. 거의 5명 있을까..? 그래도 인근에서 예술 홍보를 해주거나 잔잔하게 버스킹 하는 사람도 보이더라.


홍대나 신촌, 이태원, 명동, 강남과 다르게 혜화는 상업적인 기질이 거의 드물어. 진짜 고유의 한국 전통 예술과 가치를 돋보여주는 그런 곳이기도 하고, 정말 예술을 하고 싶어서 모이는 순수한 마력의 장소이기도 해.


안나 플라워


SINCE 1977. 이 문구로 끝난 거야. 한국의 예술의 근거 장소는 혜화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지 ?


그래서 꽤나 명성이 깊은 영향을 받은 음식점과 꽃집도 많아. 특히 인근에 방송통신대학과 다양한 학교가 있고, 현재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에 원래는 1970년대에 서울대학교 제2의 캠퍼스가 따로 있었는데 이전되었어. 그래서 당시 1970년만 하더라도 졸업식을 위해서 다양한 꽃다발을 준비한 꽃집들이 많았다고 해. 그리고 예술인들의 뮤지컬 공연이 끝난 후 하나의 사은품으로 주는 장식품 또한 전시되어 있어서 나름 유서가 깊은 것도 덤이야.


나 왜 이렇게 잘 알아 ?! 정말 혜화에 물들었던 순수했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나는구나 갓혁아.



선인장을 잘 봐봐. 뽀송뽀송한 마력을 가진 느낌이 아주 총총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아? 더군다나 이 무심한 디피마저도 내 마음을 홀리게 했지 :D



아르코 예술극장 인근 이름 모를 식물을 보면서 세월 참 빠르다고 느낀다. 이 5년이란 시간 동안 얘네들도 엄청난 역경을 견뎌왔을 거 아냐.



사람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정녕 그런 사람들은 나 포함하여 주위에서도 드물기는 한가보다. 어느 정도 성숙한 상황에서 당시 옛 활동적이고 혈기왕성한 대외활동의 흔적이 있는 '혜화'를 다시 본다면 지금 30대가 된 '나'는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될지어다. 여전히 빨간색 벽돌과 무색의 담벼락이 즐비한 아코르 예술 극장과 함께, 나의 옛 대학교 생활의 1/3을 전념하여 뜻깊은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 '혜화'는 참으로 고마운 동네였다. 코로나로 인해 앞으로의 시대는 세기말적인 감정으로 물들어질게 뻔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 과정을 예술로 승화시켜 하나의 역사 기록물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한다.



달이 참 예쁘게 떠서 뭔지 모르게 마음의 심금을 울리게 하네. 그런데 내 갤러기로는 도저히 사진에 잡히지가 않아. 이 형태와 윤곽마저도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냥 오늘 하루 모든 게 고맙다고 생각할게.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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