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제주도를 떠오르며 끝마치는 이야기
우산을 들고 아는 지인을 만나러 노형동으로 갔다. 신제주 사이 곳곳을 헤매었다. 엄청난 폭우와 함께 나의 얼굴을 강타하기 시작한 빗방울 녀석들. 역시는 역시였다. 제주도에 오면 이러한 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굳게 믿었지만 신은 나의 편이 아니었는지 외투가 다 젖어버렸다. 사실 우산 따위는 필요 없다고 그 당시 나의 생각은 여전했구나. 반쯤 망가진 1회용 우산을 인근 쓰레기통에 고이 모셔두고 그 안에 껴입은 검은색 후드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녀석의 이름을 소개하겠다. 이름은 안수성. 닉네임 맥스. 나이 26살. 아주 다 공개해버렸다. 사실 나보다 어린 후배인데 5년 전 필리핀 보라카이 가이드를 하면서 만났던 동생이다. 그 당시 수성이의 나이는 20살이었고 파릇파릇한 청춘 다 바쳤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친구들과 학교 근처 가르텐비어에서 난생처음으로 맛보았던 생맥주를 붓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날의 연속이었지 아마. 하염없이 옛 생각이 나던 상황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어쨌든 맥스를 만나고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제주도는 희한하게 콜이 잘 잡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러 대행 앱도 활용하고 계속 기다려보았지만 전혀 도착할 기세가 없었다. 그렇게 잠깐 드림타워 앞으로 이동했을 때 손님이 급작스럽게 내리는 택시를 보며 우리 또한 재빠르게 그 택시를 세우고 헐레벌떡 목적지를 말씀드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택시 안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이동한 곳은 바로 도갈비라는 흑돼지 맛집이었다. 웨이팅이 상당하였다. 대략 30분을 기다리다가 겨우 입장하였는데 벌써부터 배고픈 마음에 우리는 이미 계획했던 것처럼 흑돼지 1인분과 목살 1인분을 시켰다. 덤으로 소주를 시키려고 하였지만 맥스는 일 중 사고로 인해 손가락에 큰 상처가 난 상태였고 현재 치료를 위한 약을 복용 중이라 금주 중이었다. 참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맥주 한 모금하면 안 되겠냐고 넌지시 물어보니 의사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해서 그냥 사이다 하나와 내가 마실 진로를 하나 주문하였다.
그렇게 나는 소주 한 잔씩, 맥스는 스프라이트 한 잔씩 소주잔에 따라 짠을 연거푸 하였고 막 나온 흑돼지를 맛있게 굽기 시작했다. 윤기나는 돼지기름 위로 우리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흑돼지는 거의 1년 만에 먹는듯했다. 육지에서는 그냥 일반 삼겹살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도톰한 육질은 마치 자연 방생한 흑돼지의 운동 열량과 같아서 고스란히 내 몸으로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맥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전 보라카이 가이드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 과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그때 함께 있었던 다른 가이드의 일상 이야기와 소식까지. 모든 게 마치 다시 보라카이 업무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때 당시 젊었던 나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행동 또한 머릿속 상상의 나래 속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맥스가 계속 자기 이야기만 하고, 나는 나만의 옛 생각을 하니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왠지 인턴 생활을 하며 하소연할 듯한 맥스의 말을 딱 끊고 오히려 기분 좋은 말로 돌려서 우리의 옛 썰을 풀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가이드를 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부터 시작하여 그 미지의 장소에서 배웠던 관광객들과 소중한 추억, 그리고 가장 힘들면서도 뜻깊었던 그런 소중한 순간까지 모든 게 비록 말로만 이루어지니 다소 추상적이고 기억 왜곡이 심했지만 이 또한 얼마나 즐거웠는지 우리는 내내 계속 웃고 짜증 내고 한편으로는 다시 추억의 보따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거센 바람과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다 내음이 제주 시내까지 퍼지는 듯했다. 이윽고 마감시간이 다 되어가자 우리는 인근 노포에서 미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26살이면 내가 가이드 했을 무렵인데 그 당시에 곰곰이 미래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지금 30대가 되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주야장천 하고 싶지만 현실과의 계약을 맺은 상태이기에 나의 행동 제약이 생겼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먹고 살 궁리를 하며 최소한 나만의 안정적인 돈벌이를 계속 만들어 가야 한다는 그 간극 사이에서 나의 말문은 서서히 막히기 시작했다. 맥스에게 이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면 이 동생은 그 상황을 간단히 파악하고 이해해 줄까. 하긴, 회사에서나 어딜 가서도 26살 남자면 아직 사회 초년생이니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적극 해보라고 권유하고는 했지.
당시 내가 맥스를 보며 진심 어린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다시 너 나이로 돌아간다면 해외여행을 했겠지. 지금은 다소 아쉬운 상황이잖아. 어딜 가나 코로나 때문에 눈치 보는 사회에서 참 뭐라 해줄 말이 없어. 하지만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봐. 그럼 된 거야. 그럼 된 거지.."
조용히 남은 맥주를 마시며 문득 들었던 생각이었다.
'나도 내 상황을 잘 판단하지 못하고 해결도 못하는 아직 어른 아이인데, 20대 중반 동생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겠다고..'
"형도 아직 젊잖아요. 우리 젊게 살면 좋겠어요. 그래도 힘들었던 가이드 생활 덕분에 오히려 현 사회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더군다나 첫 직장이 해외였으니 말 다 했죠. 힘내요"
그래, 이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우리는 11시가 되어 다시 콜택시를 불렀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결국에는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이 제주 시내를 걷기로 했다.
"형 이거 무슨 보라카이 같아요. 진짜 그때는 비가 와도 맞고 다녔는데. 그게 마치 일상이었잖아요. 제주도도 다를 게 없네요."
"그러네. 왜 굳이 우산을 가져왔을까. 야 어차피 늦었어. 그냥 비맞고 가자. 부질없다. 택시 올 때까지 계속 숙소까지 걸어보자."
필리핀 보라카이는 날씨가 맑은데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게 일상이었다. 그걸 스콜이라 불렀지. 그리고 바로 앞 다른 장소에서는 하염없이 맑았던 게 참 웃겼던 연출이었지.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걸어가 본다. 걸으면서 다시 옛 보라카이 감성에 푹 빠져버렸다. 하염없이 그렇게 비를 맞으며 1시간 정도 이동하니 바로 앞에 택시가 보였다. 홀딱 젖은 외투를 쥐어 잡으며 우리는 기어코 그 택시를 잡았고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며 포근한 숙소로 이동하였다. 맥스와 마지막 인사를 앞두고 한 마디를 또 툭 던졌다.
"26살, 젊음 중에 최고의 젊음이다. 그 나이에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후회하지 마. 사실 부러워서 그래. 이놈아."
"하하 잘 들어가세요. 나중에 제가 밥 사드릴게요. 아 그리고 우산 가져가세요."
이윽고 인근 편의점에서 1회용 우산을 구매하여 자기는 숙소로 들어갔고, 나는 맥스가 건네준 검은색 우산을 들고 숙소까지 5분 정도 되는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갔다.
그때 당시 들었던 노래는 나에게 굉장히 마음의 평안을 주었고 4일간 제주도에 머물렀던 소중한 추억들을 곱씹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캘린더에 기록된 버킷리스트 3개를 지웠지.
3월 버킷리스트
1. 마음의 변화를 위한 급작스러운 제주도 여정 (여행보다는 힐링)
2. 현각이형(성산), 수성이(노형동) 만나기
3. 제주 골목 투어해보기
찍찍 그어버리고 이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때마침 그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날씨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끝날 제주일지
1. 걸으면서 사유했다.
2. 직관적인 여정이었다.
3. 남들이 알지 못할 때 각인되었다.
4. 감정과 감성은 한끗 차이였다.
5. 앞으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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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 3.18 (3박 4일)
Alone in jeju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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