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설악산에 가려는가.

3월 마지막 눈이 덮인 설악산 자락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by 갓혁

수복탑이라는 작은 정류장에서 속초 매거진을 읽는 동안 어느새 버스가 내 앞에 도착했다. 기사님께서는 어디로 가냐고 우선적으로 물어보셨다. 그 이유는 속초와 양양 사이를 오고 가는 시외버스가 가끔 이 정류장에 서기 때문에 혹시라도 기본요금으로 내야 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기사님의 철저한 원칙 부탁이셨다. 이윽고 나는 설악산에 간다고 하니 다음 버스를 타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내가 탑승하려고 했던 버스는 양양군으로 이동하는 시외버스였다. 인근에 속초 시외버스가 있다보니 가끔 이 동명동 곳곳을 지나치나보다. 다음 버스는 7-1(설악) 버스였다. 운이 좋았다. 배차 간격이 40~50분이라고 기재되었던 버스 어플을 확인하고 급하게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30분과 함께했던 속초 매거진은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고, 덕분에 설악산행 버스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요금을 내고 나는 맨 뒷좌석에서 바깥 구경을 하며 오늘 당일 해야 하는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한 번 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고,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친구들의 일상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30분 내에 도착했던 설악산 입구였다.



소호259 - 수복탑 버스정류장 - 설악산 (7, 7-1 버스) / 버스 소요시간 : 30분


여기가 유토피아일까. 2022년 3월 마지막 눈내린 설악산 풍경은 여전히 잊지 못하지.


진심으로 도착하자마자 소리 질렀다. 사실 내가 도착한 곳은 설악산 자락이 아니라 '설악산 소공원'이라는 7-1버스의 마지막 구간이었다. 자락까지 올라가는 버스는 없고, 눈길이라 미시령까지 가기에도 (더군다나 자차로 거기까지 갈 수가 없지.) 부담이 컸다.


나는 강원도의 마지막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실 속초에 갔던 이유였으니 역시나 난 운이 굉장히 좋나 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다. 버스에 탔던 10명 남짓의 사람들도 대부분 관광객, 혹은 등산객들이었다. 다만 나의 옷차림으로 보아 나는 그저 설악산 등반에 최적화되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옆에서 산악회 차람의 선글라스와 등산 풀 장착을 하신 아저씨께서 나의 옷차림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차셨다.


"에휴, 그런 외투 옷을 입고 어떻게 설악산에 올라간단 말이야? 그냥 저기 중간에 어느 절에 가서 템플스테이나 하고 오슈. 내가 걱정돼서 그랴. 신발도 운동화네? 피..필라?그게 뭐시여"


"하하하하하"


나의 복장이 역시나 사람들에게 제대로 눈에 띄었나보다. 이에 나는 한 가지 말씀을 당부드리고 내리자마자 바로 설악산을 향해 한발 두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도 끝내 이 멋진 설악산을 등반할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요. 나중에는 필라말고 꼭 10만원 더 값어치하는 등산화 신고 꼭 올라가겠습니다."


"당차네 이놈" (애증표현이셨지.)



당시에는 정상까지 완주가 불가능했다. 지금은 설악산 종주가 가능할지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참고해보면 된다.


*참고 : 현재 기상특보 발효로 인한 탐방로가 일부 통제이다. (설악산 정상 등반 불가 / 3월 29일 기준)


속초에서 설악산 가는 방법 (뚜벅이/대중교통) :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7, 7-1 마을버스를 타고 설악산 소공원에 내리면 된다.


문화재구역에 진입하자마자 네이버지도에서도 역시 '설악산국립공원'이라는 GPS 구역을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도착했다. 사실 설악산은 산세가 험난한 인제와 바다의 고향인 속초, 그리고 강릉과 양양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속초 부근에 있는 '외설악'이라고 한다. '내설악'은 설악산 정상을 등반하는 다양한 프로 등반가들이 이용하는 험악한 코스인 '인제' 구역이다. 뭔가 나의 자존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옆에 있던 등산 동호회의 어떤 아저씨가 이런 말씀을 하셨지.


"이왕 온거 내설악까지 가야 제맛아니겠나. 아, 눈도 오고 바람도 서늘하게 불고 햇빛도 맑고 얼마나 좋아. 외설악은 그냥 밑져야 본전이야."


"아이고 형님, 우리가 프로니까 그런소리를 하지.. 등산 못하시는 분들에게 그런말 함부러 하지 마이소. 끝나고 아바이나 갑시다. 거기에 소주 한잔 딱?"


"역시 아우밖에 없네그려 허허"


그들만의 소소한 이야기가 내 귓구멍으로 휘황찬란하게 난입했고,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덕분에 다음에는 꼭 정상까지 가려고 마음을 다시 부여 잡았다.



안전한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무모한 길로 갈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10초간 망설였다.


케이블카로 가는 방향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마침 이때가 마지막 강원도 겨울 시즌이니 그 방향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지. 15분도 안되어서 정상까지 구경할 수 있다는 소리에 나도 덜컥 왼쪽으로 꺾을까 고민했지만 사실 그러면 속초 뚜벅이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그저 조용히 울산바위 방향으로 다시 꺾어보았다.


그 후.. 나의 흰색 필라는 흙탕물과 눈과 화목하게 친해지는 불상사를 낳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았던 나는 이 문구를 지었지.


'축하해. 설악산에서 신고식 당한걸'


'너 누구야'


설악산국립공원 가는 방향,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주문이 나를 맞이한다.


울산바위로 걸어가는 방면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저 편하게 걷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 마련이지. 더군다나 곳곳에 보이는 불상과 한국의 멋을 알리는 탑, 그리고 맑은 하늘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스한 햇빛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름 모를 가족들은 설악산과 처마 밑 눈이 매달린 풍경에 사로잡혔고, 거대한 불상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여쁜 노년 커플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제대로 된 보정 감각이 없는 나는 그저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그대로 표식 되도록 열심히 사진을 찍어드렸다. 연쇄적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실수로 동영상을 담았는데 그들의 웃는 모습까지 세밀하게 찍혔더라. 노부부에게는 다시 한번 찍어드리겠다고 말하면서 사실 나는 그들의 인상 깊은 표정과 함께한 동영상을 3초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젊은 청년, 뭘 그렇게 멀뚱거려요. 얼른 찍어줘요~ 당신보다 우리가 더 시간이 촉박하다고~ (우스갯소리로)"


"맞아맞아. 청년도 일로 와봐. 내가 사진 한방 찍어줄게."


멋쩍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포즈가 어색한 그분들의 사진 촬영이 계속 이어졌다. 나도 어색한 포즈를 취하며 곧이어 사진을 확인했을 때 생각보다 잘 찍으셨던 광경에 순간 놀랐다.


"놀랐어요? 저 사진 촬영기사입니다. 하하하하. 젊은이도 사진 잘 찍어드렸어요. 복 많이 받아요! 눈길 조심하고!"


"감사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흐뭇해하며 다시 나는 어디론가 이동하였다.





신흥사에서 운영하는 불교 기념관 및 기념품점. 달마의 눈빛이 예사롭지 못해서 더 각인되었다.


여기가 아마 계조암이라는 불교 사적 옆에 있는 조그마한 한옥집을 기념품샵으로 바꾼 곳임이 틀림없다. 곳곳에 보이는 다양한 한국의 옛 전통이 담긴 기념품들을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나무 수저 세트는 참으로 신기했다. 목탁 두들기는 소리가 났으며 실제로 밥을 퍼먹을 때 나무 수저를 이용하면 은은한 잣나무의 향이 몸속 깊숙이 들어와 마음의 심신을 달래준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이니 말이다. 사실 그 말이 공식화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이 분위기의 풍경과 적절한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소란, 서서히 눈이 또다시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면 그저 모든 게 감미롭고 행복할 따름이었다.


난 무종교이다. 사실 우리 조부모님이 극심한 크리스천이셨다. 내가 예전에 불교 템플스테이한다고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린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화내시면서 가지 말라고 하셨던지.. 나는 꼭 목사가 될 상라고 세뇌시키면서 언제나 어릴 때부터 항상 검은색 차를 이끌고 저 멀리 광진구에서 강서구까지 그 머나먼 1시간을 뚫고 데리러 와주셨다.


그게 엄마한테는 얼마나 곤욕이었던지 아직도 트라우마라고 하신다. 물론 지금은 조부모님 두분다 천국에 가셨다. 절실하셨기 때문에 좋은 곳에 가셨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종교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분들이 떠오른다. 더군다나 그 악독 같던 나의 옛 기억이 사실은 그분들에게 행복한 일상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잘 살고 계시죠?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내 손에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생전 어느 병원에서 마지막 그분들을 보내드렸을 때 어느 스님의 마지막 간청 어린 목소리가 들렸던 것처럼.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개하십시오."


다분한 느낌 그대로.


잠깐 날씨가 좋아진 틈을 타서 밖을 바라보았다. 바로 앞 어느 직원분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신흥사'라는 설악산의 거대한 절이 나온단다.


최근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한 불교종의 새로운 행사 관련 이야기를 서로 대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예전에 불교 관련 공부도 했었고, 특히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이쪽 분야도 굉장히 궁금했었다. 그녀들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한가로운 마음을 이내 털어버리고 다시 그 방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의 소망과 염원은 아직도 그자리에 머물러있죠. 그래서 더 좋아요. 행복하세요.


반쯤 녹은 눈의 흔적이 행복과 염원이 깃든 어느 사람들의 기왓장 사이로 스며들어갈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어 간다지.


하나의 소망은 곧이어 실제로 이루어졌다. 절실한 불교신자들이 이 추운 날씨에 신발을 벗고 바로 앞 웅장한 석가모니상 앞에 큰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양 사이드로 조용하고 그윽하게 풍기는 양초가 설악산 바람에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이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조용하게 걸어갔다. 마치 그 신자들에게 최소한의 피해조차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지.


나도 잠깐 그 자리에 머물렀다. 30초간 90도 꺾인 절을 하였고 이름 모를 석가모니상에게 나의 소망을 속으로 기도하고 꾹 다짐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며, 코로나가 서서히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주위 사람들은 더더욱이요.'

그 모습을 보던 곳곳의 불교 신자들도 내 마음과 뜻을 잘 아셨는지 흐뭇하게 웃으시며 나에게도 얕은 절을 하시고는 설악산 신흥사 방향으로 이동하셨다.


아마 내가 보았던 그 절실한 신자는 신흥사 스님일지도 모른다. 관통사 공부할 때에도 끊임없이 외우고 외웠던 그 신흥사로 무작정 걸어가 보았다.


스님의 뒷모습이 보이자마자 나는 우선 그분의 모든 행동과 갖가지 포즈, 그리고 사진 속에 남길 여운까지 담아내기 시작했다.


스님과 절, 석탑, 4m되는 참나무들, 눈 내린 설악산 이 모든 풍경은 마치 유토피아같았다.


그 인기척을 아셨는지 급히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넌지시 물어보셨다.


"그렇게 기록하면 어떤 삶이 달리지나요? 혹시 무언가를 깨닫고 싶다면 그저 따라오세요."


"네? 네"


왼쪽 : 신흥사 / 오른쪽 : 울산바위. 또 한번 갈림길을 맞이하다.


스님은 이내 나에게 갈림길을 알려주시더니 울산바위로 올라가 내암사라는 곳에서 도를 잠깐 닦고 오던지, 아니면 나를 따라와 신흥사 구경을할지 선택권을 주셨다. 가운데 명찰을 보았을 때 스님이 아니었던 걸 깨달았지. 사실 그분은 도를 닦고 있던 설악산 문화해설가셨다.


예전에 이 지역에 와서 산속의 험난하고 울창한 숲에 감동을 받아 탈수도권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분의 말을 잠깐 들으면서 신흥사 방향으로 눈을 사북 사북 밟으며 이동하였다. 아무런 말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 심정이지만, 이윽고 그 문화해설가는 나에게 이 말을 또 남겨주셨다.


"생각보다 사람은 단순한데 의외로 모든 걸 끌어모으려고 애쓴단 말이죠. 가끔은 내려놓을 때가 있을 때 저는 신흥사로 갑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사실 과도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온전한 나의 무의식적인 생각이 곧이곧대로 발현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작은 고무신을 신은 문화해설가를 따라 나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참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님.. 아니.. 해설가님이 말씀하셨던 그 참이라는 건 사실 우리 마음속에 잡힌 또 하나의 운명론이 아닐까 해요."


"참으로 어려운 말 쓰십니다. 그저 그걸 '사유'라고 하지요."


"네 사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를 닦기 위해 굳이 사유한다니요?"


"우리 인생이 곧 도 아니겠습니까. 여기 계신 신자들은 어떠한 이유로 여기에 왔는지 아세요?"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해 왔어요. 왜 사람들은 반복되고 일상 된 상황에서 우울한지 아세요?"


"당연히 지루하고 싫증 나니까요."


"그럼 끝났습니다. 답을 정확히 알고 계시니 우리는 사유하러 가봅시다."


"네"


어?


스님들의 작은 휴식처를 하나의 로컬로 만든 절 '신흥사'
십이지신을 의식하게 하는 소소한 돌담길과 눈모자를 착용한 해태가 귀여워서 찍어보았다.
얕은 내천 물들이 졸졸 하류를 향해 내려온다. 아마 설악산 봉우리에서 녹은 눈 들이겠지.
중간에 거대한 침엽수림 같은 나무를 발견하였다. 같이 동행하던 문화해설가는 그저 500년 머금은 나무이기에 가까이하지 말고 멀리 쳐다보기만 하라고 하셨다.


사실 그 스님은 문화해설가였지.


그렇게 신흥사에 도착했다. 신흥사는 온라인에서 보았던 내용과 다르게 직접 봐야 큰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저 내가 알던 내용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어느 커다란 절이었고, 실제로 와보니 이 절 전체가 가진 내각과 누각, 부속 건물들, 그리고 전체적인 땅의 부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진기한 상황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눈 내린 고즈넉한 풍경까지 더해지니 어린 동자스님들이 합세하여 서까래와 싸라기로 눈을 퍼기 시작하는 장면까지 모든 게 하나의 연출 같았다. 날씨가 이윽고 좋아지자 문화해설가님은 자기소개를 하시기 시작했다.


"저는 김선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여기 계신 분들도 반갑습니다."


알고 보니 이 신흥사에 문화해설을 위한 미팅 시간이 있었던 셈이었다. 아까 일주문에서 조용히 차 한 모금을 하며 사색하던 해설가님이 나를 각인하여 먼저 말을 거셨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이끌렸던 이유도 사실 신흥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지. 무척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신흥사에서 도를 닦는 이유부터 확인할 수 있던 하나의 사례라고 할까. 그것이 바로 오늘에서야 비롯되어 알 수 있었지.


어떤 절실한 관광객은 해설가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흥사 극락보전과 운하당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시던 젊은 커플들도 절실한 불교 신자였던지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삼층석탑에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하나의 도를 알고 사유를 얻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 이윽고 문화해설가님의 감미로운 내용이 담긴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신흥사 전경
내부 울창한 참나무와 눈 덮인 담벼락과 내부 불교 상징 건축물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계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모든 분들을 만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특히 여기 계신 분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마음을 가다듬고 이곳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장소에 왔고 어떠한 인생 방법을 배워야 할까요? 그것을 아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에게 이따금 하나의 약속을 요청해 주신다면 제가 곧 그 기약을 맹세로 여러분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화해설가님. 신흥사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혹시 환생을 믿으신다면 다시 스님의 입장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의 삶은 마치 신라 의상대사와 같습니다. 인생의 순리를 정치에 역행시키는 방법은 불건전한 방법이었지요. 과거에는 그것이 하나의 이치였다고 합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신흥사에서 배우는 모든 도의 가치는 우리를 이따금 다시 원초적인 인간으로 뒤바꿀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답이 있나요? 여기 스님분들과 직원분들 모두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신다면, 저희와 같은 평범한 관광객들도 행복한 인생을 여기서 받아 가겠죠?"




"그렇게 믿어야죠. 그리고 그 믿음은 본인으로부터 나옵니다. 해답은 알리되 정답은 본인이 알고 있지요. 그러므로 편하게 구경하시고 다시 돌아오세요. 여기 옆에 조금만 벗어나면 거대한 참나무와 잣나무가 우뚝 서있습니다. 다만 만지면 안 됩니다. 온전히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이 고스란히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흥사가 그러한 역할을 조율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 해우소에서 볼일을 보시고 다시 올라와 극락보전에서 웅장하고 다분한 석가모니님을 바라보며 소원을 만드시고요, 명부전에서는 심신을 달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마음에 현존하는 것들을 밖으로 향하도록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선조들의 지혜가 고이 닦인 명부전을 한번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소리가 끝나기 전에 내가 다시 극락보전을 향해 구경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지.


"덤으로 여기 있는 모든 불상과 문화재, 보물들은 이 신흥사 스님들의 사적 유물뿐만 아니라 보존 가치가 담긴 장소이므로 최대한이면 건들지 말아 주세요.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이내 여유로운 미소와 깔끔한 멘트를 마무리로 그는 울산바위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제히 모든 관광객들은 이 의미 깊은 신흥사에서 일제히 해산하며 자신만의 관광 루트를 찾고 사유하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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