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해설가님은 고무신을 신은 채 저 멀리 설악산 울산바위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근처 풍경을 구경하기에 앞서서 핸드폰 캘린더를 열어 내가 이 설악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차근차근 기록하기 시작했다.
‘템플스테이 느낌이 나는 절을 구경해 본다.’
‘설악산 자락 눈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다.’
‘뚜벅이로 가는 곳까지 올라가 본다.’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전히 뚜벅이로 등산복 차림이 아닌 내가 올라간다는 것은 그 누구도 말릴 것이다. 하염없이 생각만 곤두세울 때 난 그래도 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천천히 이 신흥사를 구경해 보고 울산바위 방면으로 올라가 보았다.
생각보다 눈이 깊게 쌓여있었다. 한 발짝 두 발짝 올라갈 때마다 운동복 복 빈틈 사이로 눈망울이 하나하나 흡수되기 시작했다. 무릎이 서서히 시리기 시작했지만 이내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 내가 또 이 설악산 자락이라도 와 볼 것인지 나도 잘 알고 있었지. 적어도 후회가 없다면 정말 잘한 일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내내 무릎 부분이 다 젖어버리고, 필라 신발까지 촉촉이 회색 빛깔로 물들어갔다. 오히려 흡족했다. 드디어 신발 신고식을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했기에 말이다.
사실 중반에 ‘내원암’라는 고즈넉한 사절에 잠깐 들리었다. 이름 모를 외국인들이 내원암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내원암은 나도 처음이라 함께 그쪽으로 가보자고 나도 모르게 설득당했다. 가는 내내 힘들었지만 이 외국인 친구들이 도움 되는 말을 자주 했었다.
"어째서 그 복장으로 이유 없이 혼자 이 설악산에 올라가는 거냐?"
대뜸 해석하기 어려운 낱말과 단어를 쉽게 풀이해 주면서 어색한 한글을 적절히 섞어내 가던 친구들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흡족한 미소로 달관하면서 이 말을 남겨주었다.
“나 또한 사람이기에, 그리고 그냥 해보고 싶었어. JUST DO IT”
이 말을 조금 철학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어느새 잘 받아쳐준 외국인들은 “COOL”을 연발하면서 함께 내원암까지 올라갔다. 결국 도착했고, 이 친구들은 지칠 기색도 없이 서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난 신발을 잠깐 마룻바닥 아래 큰 기단에 살포시 벗어놓고 마루 위에 앉아 눈 내린 설악산 자락 풍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고요했고 그저 어느 참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파랑새의 목소리가 저 멀리 들리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칭찬 섞인 활기참을 드러내었다. 나도 그 기분에 덩달아 유튜브에 올릴 것이냐면서 장난 섞인 말을 했지만 그렇게 하겠다면서 자부했더라. 알고 보니 그 친구들 중 한 명은 유튜버 크리에이터였다. 나에게 구독해달라며 미소 머금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울산바위로 향해 이동하던 그 친구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이 내원암 내부에 잠깐 모든 걸 내려놓고 서적에 꽂혀있는 책을 하나 꺼내었다.
내용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턱대고 읽다가 마치 역사를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내원암의 시초부터 시작해서 이 설악산 자락에 있는 다양한 불교 사적과 보물, 유적에 관한 과거사가 담긴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중에서 청나라 전쟁 때 한번 소실될 뻔한 신흥사와 내원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6.25 전쟁 때 국군의 실수로 내원암 일부 건축물을 방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이 참 신기하면서도 슬펐다. 더군다나 실수라고 치부하기에도 그저 하나의 범죄로 단락 된 이 소중한 이름 모를 절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 자체가 좀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또다시 마룻바닥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20분이 지났을까. 옆방에 있던 어느 스님과 인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절실한 불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그분께 절실한 90도 절을 하고는 이내 앞에 있는 석가모니상에도 큰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색함이 감도는 이 분위기 속에서 나에게 따스한 잣나무 이파리로 만든 차를 선뜻 내밀어 주셨다.
그 맛을 기록하고 표현하자면 입안에 피톤치드 향이 풍기면서 내가 나락(사실 안 좋은 말이 아니다. 기독교에서 천국으로 대변되는 불교의 참된 장소) 어느 깊숙한 곳으로 빠진 느낌이었다. 입안에 감도는 향 덕분에 나의 머릿속에 담긴 부정적인 생각과 감성을 잠깐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이내 스님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셨다.
“날씨가 참 좋네요. 가끔 머물러가도 됩니다. 그렇게 만든 절입니다. 앞에 공양미라고 모든 절이 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머물다 가시고 책도 읽으시고 때로는 옆에 있는 고양이와 함께 놀다 가세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말 한마디에 예쁨과 정성, 그리고 겸손이 함께 묻어나 보였다. 왜 사람이 겸손해야 하는지 나는 그분이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극정성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살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물며 그 스님은 싸라기를 들고 내원암 근처에 있는 눈을 쓱쓱 쓸어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파랑새가 스님에게 속삭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나는 이내 그 자리를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더 감미로운 이 풍경을 사진 한 폭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사색하며 30분을 더 있다가 스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울산바위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에는 초코바를 조심스럽게 하나 건네주셨다. 참으로 따스한 마음 아니겠는가. 인류학의 대표자이자 선구자를 내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분이 사실 앞에 있었다. 감미롭고 따스한 손길에서 느껴지는 그분의 노고는 나 잊지 못해.
그 기운을 이어받아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몸을 이끌고 산속 더욱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어느새 울산바위에 도착했다. 마음의 피로와 위로가 함께 다가왔다. 기분 좋은 피로였다.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바위를 연달아 찍었다. 바위 사이에는 불교의 어느 문구가 적혀있는 듯했으나 한자로 되어있어서 굳이 해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 멀리 도 닦는 어느 스님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관광객들과 일부 등산객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를 향해 일제히 몸을 돌리고 묵념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여느 때와 다른 회개의 시간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 또한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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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어느 청년들이 혼자 온 나에게 사진 한 방 찍어주겠다며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하나의 풍경화를 찍어주고 갔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정이 넘쳐날까. 도시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모든 게 다 감미로울 수가 없었던 나를 반성하고 또 회개한다. 그리고 성찰했다. 우리는 이렇게나 보듬아주는 일상을 살고 있단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이윽고 내원암 스님께서 주신 초코바를 입에 물었다. 감미로운 초콜릿 열량이 나의 몸속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뜻깊었던 사색의 시간과 사유의 감정은 그때 비로소 발현되었다. 마스크를 잠깐 벗어던지고 관광객들이 없는 틈을 타서 소복이 눈이 쌓인 바위 침대 위에 누워보았다. 10분 정도 있었는데 등이 굉장히 시린 거 외에는 별도의 짜증남이 없었다. 자연과 한 몸이 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난 5분 정도 더 누워버렸다.
이윽고 어느 등산객 아저씨가 여기서 죽지 말라면서 나를 나무랐다. 사실 자살로 위장한 하나의 행동 예술이었을까. 그저 깔깔 웃으면서 뒤에서는 어느 아주머니께서 제 갈 길 가라며 자연과 동화된 나의 모습에 칭찬을 해주셨고, 아저씨는 그런 내가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의 표정이 행복함이 물씬 감도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풍기던 아저씨였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청년들은 무얼 해도 열심히 할 거라면서 또 진심 어린 칭찬을 해주셨고 난 그렇게 다시 마스크를 착용하며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보았다.
사실 오르막길이 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눈이 내리니 내리막길은 진짜 위험한 곡예를 펼치는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운동화를 신었기에 더 아찔했다. 누군가의 동지 없이 스스로 내려가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시작이었다.
이로써 등산할 때 왜 눈 내린 날에 하산이 제일 어려운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지극 당부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아들아, 그 옷차림으로 설악산 절대 못 간다. 내가 장담한다. 그리고 다치니까 헛짓하지 말고 알아서 해라. 내가 네 성격 알거든”
“하하하 저 성인입니다. 이래 봐도 건장하고 제 앞가림 잘하는 청년이라고요.”
“그 문제가 아니라 니 옷차림부터 그렇게 간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어서 그래. 이해 불가라고 임마.”
그 말 한마디라도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내려갈 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나의 과거사까지 그 모든 조언조차도 쓰레기처럼 짓밟히지 못할 순간이었다.
사람이 죽을 위기가 처하면 나의 소중했던 시간들이 순간 지나간다면서. 물론 이렇게 비유하기에는 참 애매하지만 당시 상황이 딱 그랬다.
곳곳 풍경을 담아보며 겨우 아까 올라왔던 신흥사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서서히 노을 지는 풍경을 바탕으로 나의 마음은 하나둘 얼었던 흔적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먼저 내뱉었다. 때마침 아까 신흥사에 계셨던 문화해설가님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 말 한마디를 남겨주셨다.
“그래서 울산바위까지 갔다 오는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안 다치셔서 다행이네요.”
“네 스님. 저 스스로 걸어서 거기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험난했지만 또 하나의 모험이었고 도전이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각인되었던 설악산 여행이었답니다. 나중에는 기회가 된다면 등산 차림으로 정상까지 올라가 보도록 할 겁니다.”
“하하하. 참으로 기특하면서도 특이하십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참 재미있는 법이지요. 아무튼 잘 배웠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나중에는 더 멋진 모습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이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 맞다. 그래서 뭘 배웠다고요?”
“스스로 잘 다듬고 가꾸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까 제가 했던 말이 그저 오지랖이 아니었군요. 내려가 보도록 하세요. 이제 슬슬 해가 저물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난 그렇게 다시 버스 정류장에 겨우내 도착하였고 걸어가면서 오늘 배웠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기록하였다. 아직도 노란색 포스트잇이 내원암 안에 꽂혀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큰 도전이자 하나의 용기였다. 비록 템플스테이를 못해도 간접 체험은 했지 않은가. 삶은 참 아름답습니다. 스님.
발이 푹푹 빠졌던 3월 중반의 설악산 자락 (마지막 2022년 눈이었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어서자연의 순리를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물며 나 또한 자연의 일부 인간에 불과했지. 그래서 아름다운 거야.
눈이 내린 풍경이 더욱 감미로워서한번 찍어보았다. 스님들 그쪽은 포근하십니까.
스님이 돌아가시면 화장을 하는 풍습이 있다. 스님의 몸속에서 구슬 모양의 알갱이가 나오는데, 이를 '사리'라고 하며,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보관한 곳을 '부도'라고 한다. 탑은 원래 부처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요즘은 절을 상징하는 의미로 만들기도 한다.
내원암 올라가는 길.외국인 친구들과 함께여서 든든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나보고 베스트 프렌드라고 했던 어느 인도 청년.
내원암에서 잠시 사색하다. 양초에서 풍기는 구수한 향냄새가 내 몸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윽고 공양미를 찍어보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심청이의 마음이었나.
내원암 종소리가 요란히 울러퍼질 때, 저 멀리 설악산 자락에서 파랑새가 구슬프게 지저귀었다.
울산바위까지 올라가느라 지친 나에게하나의 힐링이 되었던 돌담과 돌담 침대. 잠시나마 10분 정도 누워있다 왔다.
울산바위 풍경근처 거대한 돌이 울산바위라고 한다. 왜 울산바위냐면 경상도 울산에서 누군가가 가지고 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계조암 석굴이라고 한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건립했다고 한다. 웅장한 석가모니가 예술이었다. 목탁 두들기는 소리도 덤이었다.
이끼가 핀 바위를 배경으로 아기자기한 아기동자들을 엿볼 수 있다.
익명의 청년이 찍어준 나의 흔적과 내원암 스님이 건네주셨던 초코바. 덕분에 정이란 걸 다시 알게 되었지.
설악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향이다. 참고로 나는 등산복 차림이 아니라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다시 내려왔다.
설악산 자락에 있는 울창한 참나무들.
스님들 사리가 담긴 부도와 행운의 돌멩이들이 즐비했던 설악산 자락
법당이라는 곳을 발견했지만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인근 쌍천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마지막은 다시 신흥사로 돌아와 곳곳을 찍어본다. 특히 보물과 유적이 있는 삼층석탑과 극락보전을 찍어보다.
눈 내린 풍경은 여전히 감미로웠기에.
다시 이 길을 천천히 내려온다. 인적이 없는 곳이라 더 감미로웠다. 어느새 눈이 녹아내려 하천으로 흘러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