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 그리고 고구마쌀롱, 동명동

나홀로 속초 여행, 나에게 로컬이란 무엇인가.

by 갓혁

'설악산도 식후경.'


이미 설악산 중턱까지 다녀오고 나서 딱히 이 말을 써먹을 일은 없어 보였다.


다시 소호 259에 도착하여 일하시던 직원분께 죄송하지만 동명동에서 1인 회를 주문할 수 있는 곳을 조심히 물었다.


인근에 속초관광 수산시장이라는 곳을 안내해 주셨고 당시 시간은 오후 6시였으니 오후 7시까지 닫힐 예정이라 재빠르게 그곳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그저 뚜벅이로만 이용해도 30분 안에 도착했던 해산물 냄새 가득했던 곳이었다.


천천히 곳곳을 살펴보면서 어디가 맛이 좋을지, 어느 후기가 좋을지 고심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벌써부터 아주머니들이 여기가 맛있다고 장사를 하고 계셨는데 난 문득 서비스가 후한 곳(특히 야채가 많고 소스가 맛있는 곳)으로 자연스레 이동하였다.


시장 곳곳에서는 닭강정과 고로케, 심지어 아바이 마을에서 보았던 오징어순대를 팔고 있는 가게가 많았다. 허나 나는 가을철에만 잡히는 보리숭어가 먹고 싶었다. 이내 지하 1층 어딘가 이름 모를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갓 잡은 보리숭어를 손질하시는 모습 구경하였고, 순간 그 싱싱한 보리숭어를 구매했던 나의 의지력 정말 칭찬해-


속초관광수산시장
노을지는 속초 동명동, 그리고 골목길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먹을까 하다가 사실 날씨도 서늘하고 구름도 뭉게뭉게 짙게 피어서 바닷가 연안에서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찍은 장소는 등대해수욕장 인근 방파제 쪽이었다. 때마침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초콜릿 우유를 구매하여 천천히 바다 냄새를 맡으며 이동하였다.


여전히 동명동은 아름다웠다. 노을이 지고 어둡게 가라앉은 이 분위기는 말로 형용이 어려웠다만 그저 로컬 감성 자극했던 감수성은 더욱 솟구쳤더라.


고구마쌀롱, 옛날 선술집을 로컬화하다.


이동하는 길에 잠깐 지나쳐본다. 낮에 보는 감성과 밤에 보는 느낌은 전혀 색다로웠다. 잠시 쉬었다가도 괜찮다는 말을 뒤로한 채 나는 그저 등대해수욕장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다음날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등대해수욕장, 그리고 수산시장에서 갓 잡아온 보리숭어 세트


도착했다. 작년 12월 강릉 강문해변에서 고독하게 바다 보며 먹었던 해산물 만두가 기억이 났다.


그리고 어느 3월의 나의 속초 여정 또한 다를 게 없었다. 데자뷰라고 할까. 편의점에 들리었는데 어느 사장님이 밤 되면 바다 때문에 날씨가 싸늘하니 여기 배치된 벤치에서 먹어도 된다고 친절하게 말씀하셨지만 난 그저 모래라는 자연적인 돗자리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고 싶었기에 양심을 속일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그게 홀로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또 이런 느낌을 언제 즐길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다행히 수산시장 아주머니께서 야채를 푸짐하게 싸주셨고, 직접 만드신 된장소스도 예술이었다. 그리고 일회용 컵에 소주잔을 들이부으며 다시 한번 더 이 짤을 기억하노라면 그걸로 속초 야행 감성 여행은 끝난 거였다.


속초의 밤, 모래해변에 살포시 앉기.


심령사진이 아니라 90년대 버튼식 필름 버전으로 보정했다. 서늘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곳에 조용히 앉아 야밤에 네온사인이 비친 속초 바다 전경을 바라보는 장면은 예술이었기에 말이야.




다음날이 되었다.


할머니가 해준 시골 김치찌개 밥상, 나연식당


아침이 되었다. 소호 259 근처에 있는 나연 식당이란 곳을 방문하였다. 옆으로 황금 식당, 충남 식당이라는 상호가 줄지어 붙어있는데 진짜 마치 50년 전통처럼 보이는 기사식당을 연상케 하였다. 오래전에 칠해진 시멘트 껍질이 벗겨지면서 더 로컬 감성을 자극했다.


아침이라 일단 어제 먹었던 소주를 위에서 세척시키고 싶어 생각 없이 바로 들어갔던 게 흠이었지만, 어떤 할머니께서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로 인사를 건네주셨고 나는 바로 앞자리에 착석하여 김치찌개백반을 시켰던 상황은 아직도 이해 불가였지. 생각해보니 할머니 손맛 김치찌개가 그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상차림이 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반찬이 철판 위로 가득히 올라왔다. 특히 두부 장조림과 콩자반은 예술이었고, 이내 뜨끈하게 열이 나는 김치찌개를 한입 먹자마자 입천장이 까지는 줄 알았지만 특이한 마력을 지닌 칼칼한 묵은지의 달콤함 덕분인지 계속 입속으로 들어갔다. 순간 합천에 계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녀가 만드신 김치찌개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후의 햇살처럼'

배부르게 식사한 후, 다시 소호 259 숙소로 이동했다. 이제 마지막 힐링을 하며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경민이가 떠올랐던 옆자리를 보면서 당진에서 잘 지내고 있을지 내심 생각하였다. 방 한편에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을 잠깐 열었고, 5분간 사색을 하였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해야 할지 천천히 버킷리스트에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풀어놓았던 짐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아 그렇지. 그전에 스페인어 책을 가져왔지만 여기서 공부를 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소호 카페에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고 30분간 스페인어 공부를 하였다. 타지에서 공부한다는 생각은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오히려 머릿속에 더 각인되었던 느낌이랄까.


때마침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소호 사장님께서 스냅샷 촬영을 하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스냅샷 촬영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체크아웃 이후라 결제해도 진행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의 속초 사진을 찍어준다는 점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을 듯했다.


사장님께 지금 신청해도 진행되냐고 여쭤보니 진행 가능하다고 하셨다. 이내 추가적으로 버킷리스트 하나에 추가될 '속초에서 스냅샷 촬영'이 떡하니 생겨버렸다. 덕분에 나의 사진을 위풍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했다.


그렇게 오전 11시가 되자 스냅샷 촬영 작가님께서 오셔서 나와 일행 한분과 함께 동명항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동명항을 배경으로 스냅샷을 찍었다.

'속초에서 난생처음으로 타인에게 사진이 찍혀보다 ._.'


동명항 전경이 보이는 속초 등대 전망대에 올라섰다. 가파른 계단은 아니었지만 그걸 핑계로 살짝 숨이 가빴던 나의 체력을 반성한다. 작가님과 일행분은 오히려 잘 올라가시더라.


동명항 앞바다, 속초 푸르른 바다를 만끽하다.
속초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속초 바다, 그리고 영금정 정자


일단 풍경이 너무나 좋았다. 날씨도 무척 좋았고 파도가 시원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특히 저 멀리 '영금정'이라는 정자가 언덕 위에 우뚝 존재하더라. 일출이나 일몰 구경 시 최적의 스팟이라고한다. 물론 이번 속초 여행 내내 나는 일출과 일몰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저 강릉에서 찍었던 걸로 만족했지만 사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그래도 찍을 걸 약간의 후회 중이긴 했다.


어쨌든 스냅샷 작가님께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셨다. 다양한 구도와 포즈를 취해보라고 하셨는데 역시나 남이 찍어준 사진에 굉장히 취약한 나는 어색한 포즈만 취하게 되었고, 중간중간에 작가님께서 숙소 생활 어떠셨는지 물어보시기도 하며, 오늘 처음 스냅샷을 촬영하게 된 일행분이랑 같이 사진 찍으면서 재미있는 질문을 계속 던져주셨다. 덕분에 어색한 포즈를 잠시나마 풀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스냅샷 촬영하러 오신 분도 홀로 여행 오셨다고 하는데 이런 분들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낀다. 사실 나도 홀로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못했기에 그래서 홀로 여행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잠시나마 스스로 느끼는 시간도 덤이었다.


어쨌든 작가님의 화려한 스냅샷 촬영 사진은 추후 카톡으로 받게 되었고 그 사진을 보며 흡족해하는 나는 인스타그램 인생 샷 한 장을 장식할 추억을 만든 셈이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D





그렇게 사진을 찍고 바로 옆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돌아오는 길에 MBTI 이야기도 하고 작가님의 일상과 업무 이야기도 잠깐 들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정부에서 로컬 사업과 관련한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정책이 있는데 지금 그 업무를 위해 속초에 계신 거라고 한다. 나도 로컬 감성 좋아하는데 직접 사업으로 펼치고 하는 이야기는 속초에서 처음으로 체감하였다. 남해 여행에도 도움 될만한 자료도 조금 얻어 갔다. 이건 노코멘트-



저 멀리 뭉게구름 아래 간신히 보이는 눈 내린 설악산 자락이 아직도 저 설악산 중턱까지 올라갔던 어제의 나를 상기시키는 듯하였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만 나중에는 다시 저 정상까지 올라갈 일이 있겠지.


그리고 점심시간인지 인근 공사 노동자분들이 모여있는 식당을 발견하였다. 저게 말로만 듣던 기사식당인가해서 혹시 지도에 리써칭해보았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매력 요소가 많았다만 아쉬운 점은 내가 10년 전에 보았던 속초 느낌이랑은 살짝 다른 느낌이었다.


점점 재개발로 인해 고층 빌딩과 오피스텔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중간에 미처 만들지 못한 건물들도 종종 보였다. 컨테이너 작업물들이 가끔 즐비해서 이곳이 옛 속초거 맞을지 살짝 의심했지만 속초 또한 점점 현대화에 젖어들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이것 또한 받아들어야겠지.




다시 소호 카페에 도착해서 곳곳 풍경을 찍었다. 그리고 속초의 소호 거리 상징이 있는 굿즈를 받았다. 굿즈의 종류가 다양해서 다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나중에 갈 고구마쌀롱에서 다시 설명해야겠다.

덤으로 스냅샷 촬영 후 속을 달래줄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분홍스러운 맛이 톡톡 입을 감싸던 복숭아 음료 같았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나중에 갈 고구마쌀롱에서 다시 설명해야겠다.


소호 카페를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이 카페와 호스텔, 클래식 숙소의 기록과 유산의 가치를 넘나드는 아주 중요한 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소호를 계획하고 만드신 사장님의 노고가 역사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 느낌이랄까.



원래 소호란 의미는 뉴욕을 대표하는 젊음의 상징 골목이라고 한다. '사우스 오브 하우스턴'이라는 지역의 약자로 SOHO라고 불리며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뉴요커의 패션 장소가 바로 이 소호 거리에서 상징되었다고 적혀있다. 덕분에 젊음을 대표하는 골목이자, 뉴욕의 어느 로컬 동네에 '젊음'이란 스토리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사장님은 직장인이셨지만 자신만의 호스텔을 만들고 싶어서 전국 곳곳을 방문하였고 그렇게 2015년 소호 259 게스트하우스 1호점을 바로 이 속초 동명동에 오픈하셨다고 한다.


추후 옆에 호스텔 2호점과 카페, 스튜디오를 열었고, 속초를 방문하시는 여러 뚜벅이들과 관광객들에게 속초에 대한 스토리를 알려주고 싶은 게 글 자체에 녹아들었지만 모든 걸 담기에는 다소 시간이 부족하니 직접 와서 구경하시면 더욱 좋고, 그저 마음만으로 이해해달라는 글이었다.


충분히 이 글을 읽었을 때, 제주도에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현각이 형이 떠올랐다. 자신만의 숙소를 만들고 이름 모를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 되돌아보는 기록을 하나 둘 쌓아간다는 개념이잖아. 그게 추억이 되었고 어느새 무명의 숙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로컬로 변하게 된다. 충분히 납득되었던 숙소 감성이었다.


왜 tvn 체험형 숙소 프로그램인 '윤스테이'를 떠오르는지 알 것 같다. 단순히 식당과 카페라는 형식적인 장소가 아니라 다녀간 사람들에게 좋은 의미를 되새겨준다는 것, 그것이 정답이었다.


소호를 뒤로하고 다른 여정을 찾으려고 이동해 본다. '완벽한 날들'이라는 상호가 내 눈에 띄었다. 딱 봐도 독립서점임을 암시하듯이 앞에 나열되어있는 책의 큐레이션 흔적이 나를 불러들었다. 허나 난 내가 가야 하는 곳을 알고 있기에 바로 앞 고구마쌀롱으로 이동하였다. 건물 측면에 있는 속초 페인팅이 여전히 내 마음을 뜨겁게 자극해 주었다.


완벽한 날들, 로컬 서점



속초, 고구마쌀롱 벽화


홀로 뚜벅이 여행 온 분들을 위한 다양한 엽서와 사진첩, 그리고 스탬프, 드로잉 사진까지 모든 게 하나의 감성이었다. 아늑한 분홍색 내벽과 짙은 자연 초록색 목재 스타일은 자연스레 따스한 오두막을 연상케하여 여행객들이 머물다 가기에 소중했던 아지트 같아 보였다.




고구마쌀롱에서 로컬 감성이 더 짙어지다.

원래 고구마술집이라는 선술집 감성의 노포를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로컬 공간으로 구축하였다고 한다.


내가 진정 알고 있던 속초의 매력이 지금 이 자리에 전체적으로 고스란히 녹아든 느낌이었다. 아까 카페에서 보았던 동명동과 소호의 관계성을 더 부각했던 장소라 1시간가량 이 자리에 머물다 이동했지.



뚜벅이 여행자를 위한 자석 굿즈들.
어서오소호, 동명동으로


일단 내가 그토록 찾고 있었던 로컬 관련 책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라는 책이 한켠에 꽂혀 있었는데 잠깐 읽어보았다. 독립서점의 묘미는 바로 이런 느낌이랄까. 사실 여기는 독립서점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전시회이자 예술가들의 회의 장소라고 읽는 게 더 좋을 듯하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 목재 의자에 앉아 로컬 관련 책을 읽으면 내가 동명동 주민 시점이 되어 속초를 이야기하고 싶더라. 그리고 곳곳에는 동명동의 옛 풍경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 풍경, 심지어 현재의 동명동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속초 생활사 사진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소호 사장님과 고구마쌀롱 사장님, 작가님은 분명 예술에 진심인 분들이셨다. 덕분에 서울로 돌아가 내가 하고싶었던 '서울 골목투어'에 한 번 더 감성을 심어줄 계기가 되었다.




'어서오소호 동명동으로'


그 옆으로는 소호 숙소의 옛이야기가 담긴 사장님의 스토리텔러 감성이 녹아든 책이 있으며 잠시 눈을 그곳으로 돌려 구경하면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소호에 왔을 때 옆으로 쓰러져가는 여인숙과 한옥, 그리고 인근 가옥의 '존재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점점 재개발로 인해 옛 흔적이 사라지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아쉬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게 분명 사장님의 마음이었겠지.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있을 때 잘하자.' 이 모든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닌 '예전의 동명동'이었기에 더 아쉬움이 컸던 거구나.


철제 콘크리트와 자연적인 옛 가옥이 사라져 가는 것은 분명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나 또한 지극히 이 마을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업을 하시는 사장님들이 큰 노고를 담당하시기에 더 와닿았던 속초 여정이었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어떤 동기부여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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