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미리 먹어도 배고픈 이유는 단지 배고파서가 아니다. 더 배고프고 싶은 욕구였다. 이 절정의 여정이야말로 재미진 연속이었다.
어느새 도착한 곳은 '면사무소'라는 장칼국수로 유명한 곳이다. 인근에 다양한 로컬 맛집이 많았지만 대부분 휴무가 많아서 홀로 고독히 이곳을 방문했지. 일명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에 빙의되어 20분의 기나긴 웨이팅 끝에 큰 뚝배기가 등장했던 그 녀석을 맞이하고서야 나의 현란한 젓가락 놀음이 시작되었다.
장칼국수란 의미에 걸맞게 걸쭉한 된장과 여러 해산물이 농축된 국물의 맛은 단연 일품이었다. 천천히 나의 목구멍으로 들어갈 때마다 시원함과 구수함이 동시에 절묘하게 조합되어 속이 해장되는 느낌이었다. (맛표현은 잘 못하겠다.)
칼국수가 가지는 미묘한 이유는 단 하나, '직접 손으로 만드는 손맛'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호 어느 직원분의 추천을 받은 맛집이라서 더 감칠맛 나게 먹고 밥 한 공기를 시켜 뚝딱 마무리하였다. 참고로 밥이 셀프인 줄 모르고 추가 결제를 요청했던 나는 이내 민망하였다.
"손님, 밥은 무료 셀프입니다. 마음껏 퍼다 드세요."
"아. 네네"
면사무소 / 로컬 현지 맛집이라고 한다.
그렇게 배가 부르자 이내 천천히 이동한 곳은 푸르른 호수가 드넓게 펼쳐진 '영랑호'라는 곳이었다.
서울에 서서울호수공원, 올림픽공원 그리고 롯데월드 근처 송파 호수가 있다면 속초는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호수인 영랑호가 있더라.
더군다나 원래 해안가였던 곳에 자연스레 입구가 점점 봉쇄되더니 지금의 자연 호수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인근 관광해설가의 도움을 받아 팸플릿을 받고 천천히 이 호수가 가지는 미묘한 매력에 푸욱 빠지려고 노력했다.
영랑호 가는 길 / 산책로가 무척 아름답고 곳곳 피톤치드 향 풍기는 나무들도 많다.
영랑호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든 코스가 따로 있다. 특히 동네 마을 주민들이 이 둘레길 같은 곳을 산책로로 애용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자연과 동화되면서 한편으로는 소중한 자연과 함께 공생한다는 생태주의에 한몫했겠지. 자전거를 타며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달리기하는 어느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나를 문득 떠오르게 하였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속초 여행을 가면 항상 그 자연적인 공간 주위를 곳곳 돌아다니면서 그 풍경을 만끽하고는 했는데 점점 사회인이 되다 보니 그럴 일이 드물고 하물며 일에 찌든 나를 모른척하는 10년 전 속초가 그대로여서 조금 원망스럽기는 하다. (속초에게 미안하지만 그런 감성이 조금 남아있다.)
영랑호 한 가운데 데크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면서
어느새 도착했다. 영랑호 한가운데에 보딩 테크가 있다. 바로 건너편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조성되었더라. 당시 설악산 방면은 날씨가 우중충하고 내가 있는 곳은 오히려 날씨가 굉장히 좋았던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눈이 반쯤 녹아 어느새 산자락 절반이 거의 보일 정도의 설악산은 이내 자신의 웅장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호수 가까이서 보는 설악산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직접 가서 탐방했던 그 느낌과 전혀 다르다. 저 멀리 높은 산과 산자락에 걸친 뭉게구름, 그리고 살짝 덮인 눈 자락과 조용하기 그지없는 고즈넉한 호수의 잔잔한 느낌이 어느 시가 떠오르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대의 잔잔한 호수요, 노 저어주오'
그렇게 삐거덕 거리는 목조 수중 데크를 하염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즐거운 표정의 가족들과 애완견의 조합은 여전히 반가웠다. 한강 어느 여의나루역 근처에 온 듯한 서늘한 봄날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여 나의 숨죽이는 목소리는 점점 더 한결 나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거대한 바위에서 단체사진 찍는 가이드와 손님들
이내 드넓은 설악산 풍경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서 유난히 더 와닿았던 곳이었다. 이곳에 잠깐 누워 메모장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싶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패키지여행객들과 어느 활기찬 가이드의 웃음꽃 소리가 내 주위로 다가오자 나는 무작정 다시 가방을 닿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단체샷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왔던 분들도 있었고, 설악산 투어를 하다가 잠깐 이곳에 들린 사람들도 있었고, 인근 영랑호 리조트에 잠깐 머물다 이동하는 가족 단체 회원들도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고 단지 단체샷을 찍기 위한 하나의 바위였더라.
"어르신 거기서 조금만 이동하면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오세요."
"아이고 젊은 가이드 양반, 나 아직 펄펄해- 걱정마. 저기 보이는 설악산도 제 뚜벅이로 올라갔단 말이야."
"하하하 알겠습니다. 걱정돼서 그래요."
확실히 여행하면서 듣는 타인들의 목소리는 더 진득하고 의미 있게 와닿더라.
왜 서울에서는 이러한 소소한 말조차 의미가 없고, 그저 무시하려고 노력했을까. 아니면 무의식적인 연출이었을까. 아름다운 것들을 무시했던 삭막한 곳이라 더 슬펐지요. 하지만 이제 아니랍니다.
또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조금 더 소소한 것에 의미를 가져야겠다.
영랑정과 어느 웅장한 바위
사실 나도 모르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이름 모를 웅장한 바위 위를 걷고 있었다. 인근 표식을 확인해보니 '영랑정'이라고 한다. 어떤 사유가 있는 것일까. 이름 모를 빨간색 정자가 그 옆에 고스란히 있었다. 자연스레 무거웠던 가방을 빨간색 정자 목조 의자 위에 올려놓고 10분 동안 영랑호 풍경을 관찰하고 구경해 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웠던 당시 영랑호의 풍경은 나도 모르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예전 관동별곡을 만든 정철의 마음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을 가지고 관동(강원도의 동쪽 지역) 곳곳을 구경하며 스스로 여정 일기를 작성했던 어느 조선 고위직 관리의 마음이 이제서야 납득되었다.
영랑호의 묘한 감성을 스케치에 담고 싶다.
다시 무거운 가방과 함께 산책로가 안내해 준 방향 따라 계속 이동하였다. 어느 큰 바위를 앞에 두고 청둥오리 식구들이 둔탁한 모래 위에 잠시 쉬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더라. 이름 모를 정자와 곳곳에 핀 자연적인 어린 소나무가 이내 강문해변에 온듯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역시나 데자뷰였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 소호에서 전동 자전거를 빌려 영랑호 한 바퀴를 돌까 생각도 했었는데 이미 체크아웃을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꼭꼭 전동 자전거 대여도 하면서 날씨가 좋은 날에 이 영랑호 주위를 3바퀴 정도 돌아야겠다.
영랑호의 묘한 감성을 스케치에 담고 싶다.
사람들의 흔적이 없어서 더 좋았던 어느 깊숙한 영랑호의 한 장소였다. 알고 보니 나도 모르게 영랑호 습지생태공원까지 도착하였다. 이내 곳곳에서 개구리 소리와 이름 모를 철새가 곳곳 주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서서히 피기 시작했던 유채꽃의 꽃봉오리 또한 하나의 예술이었지만 아직 제주도처럼 우후죽순으로 아름답게 피지는 못했다. 그저 나중에 다시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야지.
계속 무의식적으로 걷다보니 길을 잃어버렸다. (그만큼 자연에 심취했다는 의미였다. 가끔 생각을 안해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
인근 화재대피소 센터가 있어서 그쪽 경비원분께 물어보니 다시 영랑호 방향 산책길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시간에 또 똑같은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의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되었고 이내 경비원분은 자신이 자주 걷는 비밀 등산로가 있는데 그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고...
사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네이버 지도에도 찍히지 않은 등산로를 향해 천천히 이동하였다. 사람들의 인적이 없었는지 등산로 곳곳에 자생하는 식물들과 나무들이 보였다.
심지어 이끼 핀 돌부리 사이에서 개구리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여기가 속초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어느 습지 한복판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네이버 지도를 켜보았고, 나는 이름 모를 야산 한가운데에 있었다. (살짝 이때부터 정신이 아찔했다. 아까 경비원분이 이야기했던 말이 이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무작정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후문'이었다. 지도를 켜보니 '강원 진로교육원'이라는 어느 건물이었다. 그러나 꽁꽁 잠겨있었고 주위로는 DMZ 마냥 철책이 높게 쌓여있었고 내 키보다 큰 담벼락과 야생 나무나 우거져서 도저히 이동하기도 힘들고 넘어가기는 더욱 버거워 보였다.
때마침 제초작업을 하시던 이 건물 소속 경비원분께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내 욕을 한 바가지 먹었지.
"아니 무슨 이름 모를 야산을 드넘고 여기에 도착해요? 여기 공사 현장이에요. 에휴."
"아, 진짜요? 전 그것도 모르고 그저 산책로가 알려준 방향으로 왔어요."
"에휴, 말을 안할게요. 여기 옆에 경고 표시 있죠? 여기 민간인 출입 금지입니다. 어쨌든 다친 곳 없으니 다행이네요. 아주 좋은 경험하셨네요."
"하하하하하. (멘붕)"
살짝 표정이 안 좋아 보였던 나를 그새 위로해 주셨던 경비원분이 아직도 기억 속에 아른거린다. 어쨌든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겨우 속초 자연이끼가 묻은 골목 사이를 누비다 보니 겨우 속초 시내로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정말 험난했다. 이제부터 지도에서 알려주지 않은 방향과 표식이 없는 곳은 피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때 나의 심정은 아직도 떠오르며 여전히 마음이 떨린다. 그런데 왜 그때 그 힘든 여정이 계속 각인되는 거지?
하루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다 가는 나의 심정이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던 '하루 게스트하우스'. 사실 이번 숙소는 나의 업무와 일정이 사이버로 겹친 상태라 로비에서 노트북 사용을 위해 온 곳이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 게스트하우스 내부에서 사진 찍을 만한 곳을 곳곳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날씨가 여전히 좋아서 그런지 오후 4시가 되어도 따스한 빛이 유리 비스름하게 내 방향으로 비치고 있었다. 일단 하루 종일 험난했던 2만 보 이상 걸었던 여정이었기에 그저 짐을 내려놓고 체크인을 마저 시작했다. 남자 사장님께서 쉬고 싶거나 노트북 작업 필요하면 이 로비에서 잠깐 작업 활용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사실 그 목적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이날은 오후 6시와 밤 10시까지 사이버 작업에 몰두하였다. 타지에서 하는 업무 프로젝트는 참으로 오묘했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 업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자극했다. 낯선 환경에서 업무를 하다보니 이게 말로만 듣던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구나. 그래서 계속 자극되는 새로운 시선들이 나의 업무를 방해하였다. 그만큼 이걸 또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오시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중간중간 찌부둥한 몸을 스트레칭하고나니 날은 어느새 저물고, 방으로 들어가보니 이름 모를 게스트 한 분이 계셨다. 사실 졸려서 그분과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윽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모르쇠 어색한 하루를 맞이한다는 생각이 들더니 나도 모르게 말을 꺼내버렸다.
"안녕하세요. 여행 오셨나봐요."
"아뇨, 저는 양양에서 근무하는 공군인데 잠깐 휴가라서 속초 외박 왔어요."
"아..아? 근무지 이탈 아니에요? (장난으로)"
"요즈음 그런 거 없어요. 속초나 양양이나 거의 비스름하니까"
"그렇구나... (적막)"
"내려가서 술 한잔하실래요?"
"좋죠, 그걸 바랐던 저입니다."
남자들끼리 뭐 간단히 이야기를 안 해도 그저 업무가 끝난 밤에 캔맥주 정도는 인지상정 아닌가. 그렇게 인근 편의점에서 새우깡과 나쵸칩, 캔맥주 4캔 몽퉁이를 사와 로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 게스트분은 공군 간부인데 어린 나이에 들어가 국방의 의무를 지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때 소호에서 만났던 경민이는 원자력 발전소 공기업 친구였고, 이 친구는 공군 간부라니. 게스트하우스가 가지는 묘미는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가지각색의 특성과 직종, 그리고 업무가 상이하게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꽃피운다는 것 자체가 게하의 매력이자 하나의 강점이었다.
물론 제주도 파티게하같은 스타일처럼, 혹은 나름 로컬 감성을 진득하게 담기에는 지금 시국이 좀 아쉽지만 말이다. 어쨌든 가장 재미있던 점은 일반 육군 사병 출신의 썰을 듣고 싶다던 현 공군 간부의 요청이었다.
사병의 이야기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하셔서 자신이 거처하는 자대에서 병사들의 삶을 관찰하면 되지 않냐고 넌지시 물어보니, 자기가 현재 입대한 곳은 간부들 위주의 사령부라고 한다. 실제로 본인이 조종하는 조종기와 비행기 모의 훈련까지 진행하는 곳이라 막중한 기밀 부대라고 언급하셨다. 오히려 난 그 간부들의 삶과 공군의 일상이 더욱 궁금했기에 더 물어보았다.
내 주위에 간부 친구들도 많이 없고(사실상 없다), 공군에 입대하고 전역한 친구들도 없다. 그래서 더 진득하게 물어보니 본인의 일과를 자세히 알려주시더라.
(이제부터 그때 하루 게하에서 이야기했던 썰 들어간다.) 사실 공군은 일반 육군, 해군, 해병대와 다르게 그 직종 자체가 카투사와 비슷하다고 하다. 즉 군대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사실상 '회사'라는 조직처럼 자세히 꾸며지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계급을 막론하고 각 부서가 따로 구비되어 있고 실제 회사 호칭을 사용하며 회사 행정 업무도 종종 진행한다고 한다. 사실 사병 출신인 나는 그저 새로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물며 같은 국방의 의무를 지니고 왔어도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도 상세히 다르다는 걸 자세히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걸었지.
"사병 시절 재미있는 썰좀 풀어주세요. 전 진짜 그게 궁금하다니깐요. 아 그리고 예비군들 그렇게 말 안 들어요? 저 아는 친구가 예비군 조교인데 하소연하더라고요."
"음... 저 병장 때 사고 엄청 일으켜서... (중략)"
그렇게 남자들의 군대썰이 끝나기 10분 전이었다. 어느새 또 하루가 지나간다는 생각에 나도 참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좀 아쉬웠다. 이내 맥주를 다 마시며 숙소로 들어가 그 공군 간부가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 군대 이야기를 펼치고 펼쳤다.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인상에 깊다.
"저는 예의 없는 사람이 싫어요. 무엇보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렇게 존댓말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의랍니다. 나이가 많다고 무작정 말로 갑질하고 그런 사람보다는"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저 내일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해요."
"그럼 깨워드릴게요. 알람 맞춰놓고 편하게 주무세요."
라는 마지막 말이 무섭게 바로 코골이 하는 공군 간부의 모습을 뒤로한 채 나는 조용히 사운드클라우드 노래를 들으며 다시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불과 3시간이라는 짧은 소통이었지만 왜 이렇게 더 짧아 보였을까. 그래서 더 각인되었던 그의 말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위해 메모장에 수필을 쓰고 머릿속으로 요약하려고 또 반복, 노력했다.
어느 인문학이자 여행작가였던분의 말이 떠올랐다.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찰나의 풍경이 아닙니다. 사실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고귀한 존재인 '인간'입니다. 사람을 만남으로써 성숙한 내가 될 수 있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타지에서 모르는 타인과 만나 의미 있고 생산적인 것을 서로 공유할 때'가 여행의 가치를 더 올려준답니다. 당신의 마지막 질문은 뭐였죠?"
"아- 그래서 여행 다닐 때, 게스트하우스 많이 애용하면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건 너무 노골적이잖아요. 어쨌든 답이 비스름했으니 통과-."
-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듯이 하루 게스트하우스가 의미하는 바가 이런 거일지도.
나도 모르게 스르르 귀에 꽂혀있던 버즈가 서서히 탈출하기 시작할 때 즈음 일어나보니 새소리가 지저귀던 어느 9시였다.
이미 공군 간부는 떠난 지 오래였고,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하루를 만끽하려고 노력했던 나만의 속초 여정은 멈추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