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그리고 돌담마을에서.

돌담마을에서 로컬을 찾아보자.

by 갓혁

수복탑 정류장에서 7-1 버스를 타고 또 어디론가 이동하는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에 구경했던 설악산에 다시 한 번 더 가고 싶었을까. 아니었다. 중간에 내린 곳은 '한옥마을'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던 어느 한적한 마을이었다. 지도에서조차 그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사라질 소중한 동네였음은 부정할 수 없었지.


이때다 싶어서 바로 사진을 연달아 찍기 시작했다. 모든 일정의 마지막은 이 한옥마을에서 끝맺음을 지으려고 했지.


녹슨 파란색 경운기가 인상 깊었고, 반대편에는 드넓은 한옥 마을 풍경이 보였다.



tvn 프로그램인 '어쩌다 사장'에 등장할 법한 목재 가옥과 생선 대가리(동태)가 빨간색 줄에 묶여 있다.


사람의 인적조차 느낄 수 없는 한적한 동네. 마실 나가러 가신 것일까?


드디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상도문 돌담마을에 입성했다. 사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유명했다. 한옥의 유래성을 찾아보았을 때 몇몇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다녀간 흔적만 곳곳에 보이더라. 작은 포스트잇에 '인생의 끄나풀 한줄기가 다녀갑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있었지. 아마도 누군가가 불교적 염원을 담아 다시 회생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난 참으로 이 동네가 가지는 느낌이 색다로웠다. 보통 한옥마을 하면 전주, 경주, 안동, 서울 북촌, 서촌이 떠오르지 않았던가. 속초 한적한 어느 평지 위에 고즈넉한 한옥 집성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마을에서 배울 수 있었던 점을 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의 인적이 없어서 한옥이 포근하게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둘째,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에 감탄하였다.


셋째, 곳곳 돌담에 스토리와 역사가 담긴 로컬 표식이 즐비했다.


난 참고로 마지막이 좋았다. 마치 조선시대 제주도의 어느 읍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다양한 풍경들이 나의 사진첩에 물들어져 간다. 그래서 계속 셔터를 찍고 내리고 수십 번을 겪은 끝에 나만의 골목 사진첩이 완성되었다.


그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설악산이 한옥마을을 더 품격있게 만들어주었지.


누군가가 마당에 무덤덤히 키우는 화분과 식물들이 인상 깊었다. 나란히 배열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추억의 연탄재와 구공탄은 그 자리에 아늑히 있고 갈색의 장독대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물건들과 자연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다. 특히 한옥과 함께 믹싱 되어 마치 미슐랭 맛집처럼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짜릿한 느낌이랄까. 사실 아니었다. 그저 동네에 어디 허름해 거의 쓰러져가는 한옥 어느 숨은 맛집에 비유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 장독대에서는 참새들이 춤을 추고 지저귀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만 요란하게 울리더니 이내 조용히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마음 한편은 천천히 포근해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들이닥친 인파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니 그녀들은 이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어디로 가시는 걸까. 그저 궁금해서 옆에 있던 애꿎은 연탄재를 발로 차본다. 그 광경을 지켜보시던 할아버지는 곰방대를 피우시면서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옆에 있던 새는 여전히 소란스럽게 지저귀지만 그 상황마저도 혼날 느낌은 아니었지. 애처롭게 천장에 달린 동태 머리만 어렴풋이 떠올랐던 그 장소를 아직도 기억한다면 말이지.


한옥 중에서도 나름 재벌이 산다는 그런 곳인가.



슬슬 개화하기 시작한 설악산 자락의 꽃나무들


그래. 당시 3월 중반이었으니까 아직 개화할 시즌이 아니란 말이지. 남부 지방과 제주도 서귀포는 벌써 개화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대한민국 최상단 강원도의 산자락은 여전히 춥고 쌀쌀했기에 아직은 아니었지. 그 상징을 알리듯이 옆에는 땔감용 장작이 한곳에 치우쳐져 있었고 인근에서 거름을 태우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시골 향기란 바로 이런 것일까. 회색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의 그윽한 향기는 이내 마을 어디론가 서서히 자리를 옮겨갔고, 나는 그마저도 신비하게 바라보았어.


기왓장에 예술을 논하신 분들이 많아서 좋았다.


더군다나 옛 적산가옥(한옥과 일본 전통 가옥을 적절히 섞어서 만든 1930년대 가옥) 느낌의 전원주택이 보였다. 내가 알던 마당이 넓은 주택단지와 다르게 1층에는 가게 및 공방을 운영하고, 2층은 자신의 주거지로 활용하던 옛 일본 전통 가옥 느낌이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 한옥 / 오른쪽 : 적산가옥


딱 그림만 보았을 때, 기본적인 1층 구조에서 모든 방이 즐비했던 전통 한옥에 비해, 적산가옥은 다다미와 같은 일본 전통 방과 그 연결문을 한옥 곳곳 사이에 적절히 조합한 느낌이었다. 큰 특이점은 2층이 기본적으로 깔렸다는 설계 구도였다. 최근 이러한 집 구조는 홍대 골목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홍대로 지나가는 골목 또한 사실 일제강점기 물자 수송 전찻길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곳곳에는 일본인들의 거주지를 위한 적산가옥이 많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제서야 이 돌담마을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전통의 한옥만 있던 게 아니라, 일본인들의 주거지도 함께 섞여 서로 동화되었던 역사적 전통이 깊은 곳이었다.


또 하나의 역사를 배워감에 즐거운 내 모습이 참으로 기뻤다.




상도문돌담마을에 오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웃어보세요. 복이 옵니다.


말광량이 삐삐



어린 소녀, 소년 친구들


골목 곳곳을 지나면 이 돌담마을의 마스코트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강원도 소주(특히 특산 소주 '좋은설')병에 시멘트를 굳혀서 만든 인공적인 신세대 돌담벽이 참으로 신기했다. 영롱하게 비치는 이 광경에서 잠시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그와 중에 작은 조약돌과 돌멩이에 빨간 머리 앤이 웃고 있었고, 이 마을에 거주하는 아이들도 그려져 있었다. 그 녀석들의 순수하고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설악산 자락 한옥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절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환경 영향은 무시 못 하겠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천천히 이동했을 때, 드디어 예술 작품들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용하게 침묵만 유지한 채 손가락만 움직이기 바빴다.


장독대 위 매화, 대나무와 눈, 그리고 담벼락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 줄 알았습니다.


쓰러져 가고 떨어져 가는 모든 것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제 삶의 제 운명을 다했을지라도 그 자리에 머무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자신이 여기 있다고 아우성을 하지만 남들이 알지 못할 때 더 의미가 숭고해지는 법이더라.


돌담마을이라고 치부하기에 뭐한 오두막처럼 생긴 판잣집은 누군가의 소중한 거처였으며 행복한 가족들의 애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소들을 거침없이 발견하며 소중하게 기록해야지. 때로는 '멋있지 않은 것들이 더 멋있어 보이는 법이야. 그게 인생 진리일 수도 있어. 어쩌면 말이야.'



어느 아주머니를 마주했다. 흉가를 찍고 있는 사진을 넌지시 보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아유, 사람 사는 곳 왜 찍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껄껄. 거기 외양간이여-"


아하, 사람 사는 곳을 내가 너무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표현했구나. 순간 아찔했다. 다시 말을 수정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있어서 더 숭고한 가치라고.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이 마을에는 다 어르신들밖에 없다고 젊은 사람들은 서울로 이사 갔다며 하소연을 하시더라. 난 그녀가 이야기하는 이 마을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주머니는 바로 앞 자기 집 마당으로 나를 안내해 주셨고 갓 구운 군고구마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순식간에 군고구마가 내 입으로 들어가 뜨거운 열기는 그저 하나의 예술이었지. 김이 모락모락나니 동동주 한 사발을 건네주셨던 그녀. 덕분에 표정이 밝아지시더니 자신의 머나먼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실 14살이란 어린 나이에 이 설악산 자락에 터를 잡은 이유와 자기 아버지가 군대 간부라 어쩔 수 없는 수모를 겪고 살아야했던 지난날의 기억, 더군다나 손주와 손자들, 자식들이 모두 서울에 있어서 하염없이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나에게 큰 심금을 자극하게 해주었다.


"더 드시고 싶으면 더 드셔요. 양은 많아. 자식들이 먹으러 안 와서 그렇재."


"예, 감사합니다."


난 참 인복이 좋다. 특히 대면으로 진득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요 근래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여행이 만들어진다는데 비로소 그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녀가 했던 모든 말을 메모지에 기록하여 또 이 돌담마을 로컬에 스토리를 남기려고 노력했겠지.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리고 인근 아주머니가 또 오시더니 자기 민박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순수한 장사를 하시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동시에 할아버지 2분이 합세하여 내가 이 마을 젊은 총각 일꾼인 줄 아신 모양이더라.


"어허, 젊은 양반이 거기서 뭘 꾸물거려. 얼른 들어가서 편한 복장 입고 나와서 일해!"


"아, 저 여기 주민이 아니라 그냥 나그네입니다."


"그게 뭐든지 간에 아휴"


사람 말이 구수하게 들린 적은 간만이다. 아름다운 말에서 피어 나오는 그들만의 소중한 말 그릇은 오늘도 나의 천방지축 글에 오롯이 녹아들어 간다.


"만수무강하세요. 그럼 이만"



여전히 아름답고 푸르른 개울가는 사람들이 지나갔다는 흔적만 남긴 채 조용히 그 자리에서 웃고 있었다.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빛에 반사된 시냇물은 저 설악산 자락의 끝머리에서 소소하게 이야기꽃이 시작됨을 암시하겠지.


마을회관 기숙사와 화장실, 80년대 전봇대와 곳곳 사이를 누벼보자.


소중한 것들을 자주 기록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준 말이 기억나.


: 아들아, 인생은 하나의 변수도, 변함도 없는 세상이 아니란다. 더군그나 인간들은 계속 변화하려고 하지. 나도 그래. 성인이 되면 안전할 줄은 누가 예상했겠니. 사실 그게 허구이면서 말이야.


: 아들아, 진부한 삶이 있다면 재미있는 삶도 있단다. 이면에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암묵적인 시대가 만들어질 때 그게 너였단다. 그래서 넌 좋은거라도 봐야 해.


어머니가 아들에게 해준 말이 기억나.


: 아들아, 가족이라는 의미가 구색하지 않도록 하루를 열심히 살아주렴. 말 한마디가 중요하겠지. 수고했다고 말해주렴.


: 사랑한다. 그리고 기억해라. 이 말은 우리의 노고가 깃든 너의 양분으로 비롯된단다.


상도문 돌담마을 어느 확성기에서 기쁨을 알리겠지.


적막함이 감도는 돌담마을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다음 일정을 위해 잠시 들푸른 언덕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사유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여정의 참 맛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사람을 알고 갔다. 알고 가면서 많이 배우고 간다. 아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잘 배우고 있다. 잘 배워서 다행이었다. 다행이다. 다행일 것이다.



<다음 화에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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