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두 미소

by 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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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 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뒷모습을 좇거나, 과거의 가시 돋친 말들에 숨 가빠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만의 계절을 보내며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비로소 내면의 온기만으로도 겨울을 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그리고 오늘, 약속이라도 한 듯 발길이 닿은 곳은 우리가 처음 헤어졌던 그 겨울 바다였다.

"여전하네, 여기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들이마셔도 이제는 가슴이 아리지 않았다. 그때, 모래사장을 밟는 일정한 박자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도현의 불안했던 발소리도, 나의 위태로웠던 발소리도 아닌, 묵직하고도 다정한 울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1년 전보다 조금 더 깊어진 눈빛의 재하가 서 있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정확한 장소 아닌가? 내가 여기 있을 줄 어떻게 알고."
내 농담 섞인 말에 재하는 예의 그 넓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언제든 내가 원하면 기댈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섰다.
"우연이라고 해두죠. 그래야 우리 씨가 덜 부담스러울 테니까."
재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었다. 나의 홀로서기를 묵묵히 응원하며 기다려준 사람.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예전처럼 격정적인 감정이나 매달림은 없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도 서로의 숨소리가 편안하게 섞이고 있었다.
"재하야, 이제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숨이 쉬어져. 그런데... 이제는 그 숨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내 고백에 재하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맞잡은 두 손 사이로, 겨울바람도 녹일 만큼 뜨거운 체온이 오갔다.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스스로 너의 계절을 찾아올 때까지."
어린아이처럼 소유하고 집착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서로의 상처를 존중하고, 각자의 속도를 지켜주며, 비로소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긴 겨울을 지나 겨우 맞이한 **'어른의 사랑'**이었다.
우리는 우연을 가장한 이 필연적인 바다 위로, 새로운 발자국을 나란히 새기며 걸어갔다.
한겨울, 두 사람의 미소가 이제는 같은 곳을 향해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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