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이 벗이 된 하루를 살아간다. 어둠이 내린 방 안, 창밖을 스쳐 가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텅 빈 마음을 더듬어본다. 한때는 그 빈자리를 가득 채웠던,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믿음'이라는 온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온기는 이제 차가운 재가 되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의지했던 사람. 그에게서 전해오는 따스한 눈빛과 다정한 목소리는 나의 가장 단단한 방패였다. 세상의 모든 거친 파도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방패는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무참히 부서졌다. 칼날은 믿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심장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 자리에 아물지 않는 상처만 남았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고들 했지만, 나의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게 파고들었다. 아물기보다는 곪아 터져 버린 마음은 더 이상 사람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때는 세상 전부였던 그 사람이 이제는 남보다 더 심하게 모르는 사람이고 싶다.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기 싫고, 그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남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오늘도 나는 산산조각 난 믿음의 조각들 위를 홀로 걷는다. 아프지만, 이 아픔이 언젠가 새로운 나를 만들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 쓸쓸함이 익숙해진 지금, 나는 다시 나만의 빛을 찾기 위해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