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바다

by 산속


어린 시절, 나는 파란색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느꼈던 그 무한함 앞에서 작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하늘과 바다는 모두 파란색일까? 마치 서로 닮은 쌍둥이처럼, 하나는 위에서 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닷가에 서면 수평선 너머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찾으려 애썼다. 그 경계선은 언제나 아득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마치 꿈속의 문턱처럼. 그 순간 깨달았다. 파란 하늘과 바다는 사실 하나였다는 것을.
​하늘의 파란색은 공기 중의 작은 입자들이 빛을 산란시키며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그저 파장의 문제일 뿐이지만, 그 단순한 물리 법칙 안에 어떻게 이토록 벅찬 아름다움이 담겨있을까. 새벽녘 연보랏빛에서 시작해 정오의 짙푸른 청색으로, 그리고 석양 무렵 하늘이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 때까지. 하늘은 매 순간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바다의 파란색은 또 다르다. 하늘의 색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깊이와 신비를 품고 있다. 잔잔한 날의 바다는 거울처럼 하늘을 비추지만, 거친 날의 바다는 스스로의 성정을 드러내며 물거품을 일으킨다. 그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 근본적인 푸르름이다.
​파란색에는 평온함이 있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광활함이 내 작은 걱정들을 한순간에 작게 만들어버린다. 바다 앞에 서면 파도 소리가 마음속 소음을 씻어내고,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진짜 파란 하늘을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 조각들, 스모그에 흐려진 공기 속에서 파란색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럴 때면 더욱 간절해진다. 맑고 투명한 하늘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낯선 땅의 하늘도 역시 파랗다.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하늘의 파란색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같다. 그것이 주는 위로와 평안도 마찬가지다.
​바다 역시 그렇다. 동해의 푸른 바다도, 제주 앞바다의 에메랄드빛 물결도, 모두 같은 짠맛을 품고 있다. 파도가 모래사장에 닿아 하얀 거품을 남기며 다시 돌아가는 그 영원한 리듬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감동을 느낀다.
​어떤 화가는 평생을 바쳐 파란색의 비밀을 캔버스에 담으려 했고, 어떤 시인은 수많은 시를 써도 하늘의 푸르름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 그만큼 파란 하늘과 바다는 인간의 언어와 표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파란색을 좋아한다. 크레파스로 하늘을 그릴 때 주저 없이 파란색을 집어 드는 것을 보면, 파란색에 대한 사랑은 학습된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임을 안다. 그 순수한 감성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무뎌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파란 하늘과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잊고 있을 뿐, 고개만 들면 하늘이 있고, 발걸음을 바다 쪽으로 돌리면 수평선이 기다리고 있다. 그 변함없음이 때로는 든든하고, 때로는 경이롭다.
​오늘도 창밖으로 하늘 한 조각이 보인다.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파란빛이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언젠가 다시 바다에 갈 것이다. 그곳에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찾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그 두 개의 파란색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을 느껴보려 한다.

​파란 하늘과 바다. 그것들은 단순히 색깔이 아니다. 그것들은 꿈이고, 위안이고, 무한한 가능성의 상징이다. 우리가

지친 일상 속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마음으로나마 바다를 그리워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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