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늘에 비가 내리는 밤을 저승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그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위 어딘가에서도 누군가 울고 있는 것일까. 이승에서 다 풀지 못한 한과 슬픔이 빗방울이 되어 내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 밤의 이 비는 누구의 눈물일까.
나는 항상 무언가로부터 도망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때로는 상황으로부터, 때로는 나 자신으로부터. 그저 막연하게 도망치고 있다는 느낌만이 가슴 한구석을 짓누른다.
마주해야 할 것들을 외면하고, 느껴야 할 감정들을 회피하고, 말해야 할 이야기들을 삼키며 살아간다. 그것이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믿었다. 아픔을 직면하는 것보다는 도망가는 것이, 상처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외면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도망가면서 애석한 깨달음을 얻었다. 도망치는 동안 정작 소중한 것들까지 놓쳐버린다는 것.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 따뜻했던 순간들, 아름다웠던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도망가는 사이 스쳐 지나가버린다. 마치 빗방울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어쩌면 나는 아픔을 피하려다가 기쁨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상처를 두려워하다가 사랑받을 기회조차 놓친 것은 아닐까. 감정을 차단하려다가 삶 자체를 멀리한 것은 아닐까.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린다. 저승의 눈물인지, 하늘의 슬픔인지, 아니면 세상 모든 이들의 한숨이 모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빗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도망가기를 멈출 수 있을까. 두려워하던 것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지나쳐버린 감정들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까.
도망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힘든 일이 생기면 회피하고, 아픈 감정이 올라오면 억누르고, 깊은 대화가 시작되면 화제를 돌린다. 그렇게 삶의 표면만을 스치며 살아왔다.
하지만 표면만을 스치는 삶은 공허하다. 깊이가 없는 관계는 외롭다. 진짜 나를 감추고 사는 것은 고독하다. 도망가면 갈수록 더 외로워지고, 회피하면 할수록 더 고립된다.
저승의 눈물이라는 비를 보며 위로받는다. 나만 울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나만 아파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늘에서도, 저승에서도, 누군가는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구나.
그래서 비 오는 밤은 유독 솔직해진다. 평소에는 도망가고 회피하던 감정들이 빗소리를 타고 올라온다. 억눌렀던 눈물이 빗줄기처럼 흘러내리고, 감추었던 아픔이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비가 그치면 다시 도망갈지도 모른다. 해가 뜨면 또다시 감정을 숨기고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밤만큼은, 이 비가 내리는 동안만큼은, 도망가지 않으려 한다.
저승의 눈물이 내리는 이 밤에, 나도 함께 운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회피했던 슬픔을, 외면했던 아픔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비와 함께 떠내려가기를 바라며.
도망가는 것도, 지나쳐버리는 것도,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라도 삶을 지탱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도망가는 대신 천천히 걸어가기를, 회피 대신 조금씩 마주하기를, 지나쳐버리는 대신 잠시 머물러보기를.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 비 오는 밤의 깨달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도망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삶의 소중한 느낌들이 지나치는 것이 얼마나 애석한 일인지를.
비는 언젠가 그친다. 저승의 눈물도 영원하지 않다. 하늘도 언젠가는 울음을 멈추고 다시 맑아질 것이다.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도망가기를 멈추고, 지나쳐버리는 것을 멈추고,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비가 그친 후의 맑은 하늘처럼, 눈물을 흘린 후의 후련함처럼.
오늘 밤 비는 여전히 내린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그 빗소리를 온전히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