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으로 미워했던 어떤 불행을 목격했을 때, 나는 그 불행 아래서 불안에 떨었을 누군가의 마음을 감히 '바보 같은 감정'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 홀로 물었습니다. 나의 창백한 이성(理性)은 그 불안함조차 쉬이 사람다운 온기라 인정하지 못했고, 나의 감정을 숨기는 행위만이 비로소 인간적인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감정의 물결에 휩쓸리는 대신, 나는 침묵이라는 단단한 섬을 선택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에도, 나는 입을 닫고 고요히 그 해답을 찾는 외톨이였습니다.
인간관계는 내게 늘 풀어야 할 숙제이기 전에, 차라리 깊은 미로에 가까웠습니다. 왜 나는 듣고 싶지 않은, 상처 가득한 험담의 조각까지 귀 기울여야 했을까요? 나의 외골수적인 기질은 타인의 가벼운 농담이나 익숙한 친밀함조차도 날카로운 모서리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서 집단의 울타리 안에서는 나의 속내를 꺼내기보다, 그저 조용히 타인의 이야기를 받아주는 쪽이 나의 평화에 더 가깝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지켜왔습니다. 이따금씩 가슴을 짓누르는 불편한 감정들은, 결국 종이 위에 짧은 글로 흘려보냄으로써만 겨우 숨 쉴 틈을 얻었습니다.
내가 지키는 그 창백한 경계 속에는 타인에 대한 연민(憐憫)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상대방이 내가 지키는 이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고 차가운 거짓이라 오해할지라도, 나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다 쓰러져버릴
고목나무가 되어갑니다. 나는 나를 위하는 사람에게 끌리지만, 첫인상부터 무언의 부담을 주는 사람 앞에서는 가차 없이 거리를 둡니다. 그 거리 두기가 내가 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상처받을까 두려워 먼저 가시를 세우고 세상을 등지는 고슴도치처럼,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 방어 기질'**의 발로일 것입니다.
타인들은 나를 향해 너무 선을 긋고 차가운 벽을 친다고 오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거리 두기는 나에게 가장 솔직한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나의 불완전함과 예민한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으려는 고슴도치의 우아한 예의입니다. 나는 인정받을 수 없는 외로운 길에서 홀로 싸우는 늙은 기사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을 참되게 살아내는 방식은, 웅장한 승리가 아닌 홀로 침묵하며 자신의 경계를 지켜나가는 고독한 투쟁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오늘도 세상의 북적임 속에서 이 창백한 경계를 지키며, 나만의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존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