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아래, 나를 찾아온 오래된 그림자에게

by 산속


가을의 햇살이 깊어지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문득 오래전 들었던 한 마디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너를 이해한다"라고 말하던, 이제는 희미해진 그 얼굴의 표정. 그가 나를 어떤 의미로 이해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말과 그 관계가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안개를 걷어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랫동안 관계의 문 앞에서 서성였다. 사람의 본질이 가진 불안정함, 언제든 변하고 결국 상실될 수 있는


인연의 숙명이 겁이 났기 때문이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의심과 두려움은 나를 둘러싼 가장 두터운 벽이었다. 관계 속에서 타인의 모서리에 긁혀 아파할 때마다, 혹은 뜻하지 않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관계의 쓴맛’**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영역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쓴맛과 상흔(傷痕)이 역설적으로 나를 구원했다.
그 사람이 내게 던진 이해의 말이 미완의 퍼즐 조각처럼 남았기에, 나는 비로소 그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나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타인에게 기대던 시선을 떼어내고, 내 안의 두려움, 의심, 그리고 외로움을 묵묵히 마주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진실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타인의 힘이 아닌, 오직 나 자신의 성찰 속에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제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졌다. 과거의 상처가 남긴 지혜의 눈이다. 이 눈은 일상 속의 작고 사소한 기적들을 놓치지 않는다. 오래된 친구들과 다시 마음을 나누는 순간,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용히 회복되어 가는 따뜻한 과정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벅찬 감사함을 느낀다. 이 모든 관계의 회복이 내가 치열하게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려 노력한 결과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나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고마워, 과거의 나의 그림자여." 네가 있었기에 나는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나를 지킬 줄 알며, 타인의 이해를 넘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나의 모든 두려움과 의심은 이제 나를 지키는 견고한 갑옷이 되었다. 이 모든 여정을 함께 걸어준 ‘나’라는 존재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나는 이 소중한 인연들과 더불어 계속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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