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by 산속


​나는 ‘엄마’라는 두 글자를 엮으면, 그 자리에서 ‘모성’이라는 따스한 샘물이 솟아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여인의 몸에 깃든 아이는 본능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데려와 자연스레 나를 채우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첫 아이를 안고 지난 시간은, 나의 순진한 기대를 한 겹 한 겹 걷어냈습니다.

​모성은 저절로 흐르는 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잠을 잃은 수많은 밤과, 무너져 내리는 체력의 잔해 위에서, 나의 모든 것을 깎아내며 겨우 한 방울씩 길어 올려야 하는 고독하고 치열한 노동이었습니다. 육아의 고단함은 ‘나’라는 존재의 섬세한 경계를 야금야금 지워버리는 듯했습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평온, 그리고 나만의 목소리가 소멸되어 가는 기슭에서, 문득 나를 낳아 길러낸 나의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졌습니다. 그 간절한 그리움은 이제야


엄마의 삶의 무게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슬픈 고백이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때로 포기를 배우는 일이었나 봅니다. 나는 ‘엄마’가 됨으로써 진정한 성숙에 이른다고들 하지만, 나는 너무 일찍 ‘나’의 상실을 깨달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 역할극의 커튼 뒤에서, 나는 체념과 무기력의 짙은 안개를 헤매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서글픈 현실이 나를 붙잡았습니다. 엄마이기 전에 나였던


그 자유로운 영혼은 이제 멀리 아득합니다.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이고, 가장 위대한 역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세상에서 제일 큰 산이면서도, 그 희생의 무게와 고독 속에서 가장 취약해지는 제일 약자가 바로 엄마입니다. 나를 지키지 못하고 아이만을 바라보며 버텨야 하는 이 역할은, 가장 위대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연약합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