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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Jun 30. 2022

다시, 만년필에 대하여

  퇴임을 하면서 과분하게도 이런 저런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중 가장 고마운 선물은 만년필이었다. 그런데, 이 만년필 선물 때문에 나는 지금 고민과 부담감 속에 빠져있다. 만년필 선물을 세 개나 받은 것이다. 하나는 내 후임으로 연구부장을 맡은 후배 교사에게서, 또 하나는 역시 연구부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 교사들에게서, 다른 하나는 ㅎ 신문사 ㄱ 기자에게서... 그중 하나는 나를 위해 '牛角掛書'라는 성어를 새겨 특별히 주문한 것이라 했다. 

  정말이지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선물들인데, 문제는 저 만년필들을 언제 다 쓰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펜으로 글을 쓰는 일이  흔치 않은 세상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하도 글씨를 열심히 써서 벼루 백 개를 갈아서 구멍 내고 붓 천 자루가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는 추사의 전설은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 만년필을 선물한 이들의 뜻은 내가 좋은 글을 썼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것이리라. 그러니 안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주로 자판을 두들기는 일이 되겠지만, 만년필의 잉크만은 마르지 않게 하리라 마음먹는다. 자린고비네 자식들 천장에 매달린 굴비 쳐다보대끼 모니터 앞에 만년필들 줄세워 놓고 쳐다보면서 글을 써 볼 작정을 한다. 아울러 이전에 썼던 만년필에 관한 글도 소환해 본다.  


만년필에 대하여    


  만년필(萬年筆)은 영어 ‘fountain pen’을 번역한 말이다. 그것을 만년필이라 한 것은 만년 동안, 즉 오래 쓸 수 있는 붓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붓에 먹물을 한 번 묻혀 글씨를 쓰면 많이 써 보아야 몇 자, 혹은 몇 십자밖에 못 쓰고 다시 먹물을 묻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것은 털로 만들어진 동양의 붓만 그런 게 아니라 가느다란 철심이나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서양의 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튜브에 잉크(먹물)를 넣으면 적어도 수 천 수 만자 정도는 적을 수 있는 획기적인 필기구가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만년필인 것이다.

  이전에는 중학교 입학선물로 만년필만 한 것이 없었다. 나는 물론 주변에 만년필을 선물할 만한 사람도 없었거니와 만년필이란 거의 사치품에 가까웠다. 그때도 모나미 볼펜이 있었지만 선생님들은 볼펜 대신 펜을 쓰게 하셨다. 펜에 잉크를 찍어 써야 글씨가 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 반에 70명이나 되는 남자 중학생 아이들이 그 좁디좁은 책상에 잉크병을 올려놓고 일일이 펜을 잉크에 찍어 글씨를 쓴다는 게 말이 쉽지... 한 시간에도 몇 명씩 잉크를 엎지르거나 잉크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기도 했다. 가방에 넣어둔 잉크병이 뚜껑이 안 맞아 새거나 깨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그때는 교복에도, 가방에도, 나무 책상 위에도, 교실 바닥에도 온통 잉크 자국이었다. 

  나는 만년필을 하나 갖고 싶었다. 게다가 만년필은 뒤쪽에 꽂이도 달려있어 만년필을 가진 아이들은 교복 왼쪽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만년필을 자랑스레 꽂고 다녔다. 작은 화살 모양의 만년필 꽂이가 빛나는 모습을 보면 참 부러웠다. 국산이나마 내가 만년필을 처음 갖게 된 건 고등학교 가면서인 것 같다. 누구에게서인지는 잊었지만,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만년필을 받았다. 그런데 걸핏하면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또 만년필 펜촉도 길을 들여야 한다고 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지만 내 만년필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역시 국산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좀 사는 집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파카(Parker)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파카에도 등급이 있어서 파카21이니 파카24니 하면서 자랑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파카 만년필은 대학에 가서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파카 만년필조차 어제 쓰고 오늘 다시 쓰려면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만년필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질 좋은 잉크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교직에 들어오면서 만년필은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어느 세월에 잉크를 넣고, 뚜껑을 여닫는 일을 한단 말인가? 나의 거의 유일한 필기구는 볼펜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는데,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 선배 선생님이 예의 그 파카 만년필을 선물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고 그냥 서랍에 넣어 두었다. 쓸 여유도 이유도 없었던 탓이다. 그 뒤에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제법 좋은 외제 만년필을 하나 샀다. 그런데, 자꾸 문제가 생겼다. 뚜껑에 작은 균열이 생겨 잉크가 새거나 글씨가 잘 안 나왔다. 청담동인가 어딘가로 두 번이나 고치러 다닌 기억도 난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버렸다. 그리고 생각난 것이 오랫동안 서랍에 넣어두었던 그 평범한 파카 만년필이었다.

  다시 만년필의 이름으로 돌아가면, 아무래도 ‘만년’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역시 원래 이름인 fountain pen이 훨씬 그럴 듯하다. 잉크(먹물)가 샘물처럼 솟아나서 계속 글씨를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만년필’보다 ‘fountain pen’에 점수를 주는 이유가 바로 그 ‘샘’이라는 말 때문이다. 

  연하장을 쓰려고 필통에 갇혀 있던 만년필을 1년 만에 꺼내서 잉크를 넣었다. 작년 이맘때 연하장을 쓰느라 만년필을 쓰고는 1년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터이다. 잉크를 넣었는데 글씨가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 만년필 안 나오면 하던 대로 펜촉이 바닥을 향하게 하고 스냅을 이용해 잉크가 나오도록 뿌린 다음 써 보아도 안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1년 동안 그대로 두었더니 그 안에 남아있던 잉크가 말라붙어서 샘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새 잉크를 넣어도 글씨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비로소 만년필이 fountain pen임을 깨달은 나는 휴지에 물을 묻혀 만년필촉을 골고루 닦고 가만히 덮어두었다. 그랬더니 다시 잉크가 샘물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마중물을 넣어서 샘물을 끌어올린 것과 같았다.

  중국어로는 만년필을 강필(鋼筆=钢笔)이라 한다. 강철로 된 붓이라는 뜻이렷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다. fountain pen을 그대로 번역하면 샘천(泉) 자에 붓필(筆)이 된다. 하여, 나는 나의 만년필을 이제부터 ‘천필(泉筆)’이라 부르기로 했다. 앞으로는 泉筆을 좀 부지런히 써 보려 한다. 나의 글솜씨는 천필(賤筆)이 분명하지만, 혹시 아는가? 泉筆을 부지런히 쓰다 보면 언젠가 나의 글솜씨도 하늘이 낸 솜씨처럼 천필(天筆)이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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