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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Jul 01. 2022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늦은 시각 지하철역에서, 술과, 술을 못 이기는 잠에 반쯤 취해 걷다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물체를 보았다. 취기(醉氣)는 나의 모든 기관과 세포를 완전히 점령하여 판단도, 시력도 흐리게 만들었다. 처음엔 거북인 줄 알았다. 지하철역에 거북이가? 그러다 갑자기 취기가 확 깼다. 사람이다... 허리가 90도도 더 굽은, 늙은 여자 사람... 

그는 청테이프로 도배된 배낭을 메고, 역시 청테이프로 칭칭 감은 비닐 여러 개를 양 손에 매달아 끌면서 거북이보다도 느린 걸음으로 계단으로 향했다. 이윽고 계단 앞에 이르자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도저히 저 상태로 계단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양손이 자유로워야 기어서라도 오를 텐데, 양손에는 그의 살림살이 전부가 들려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거대한 벽을 만난 거북이처럼 그는 영영 계단을 오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때마침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에 서둘러 몸을 싣고서야 나는 나의 無情함을 깨닫고 자책한다. 

“삶이 무겁다고 푸념했던 나여! 너는 정말 무거운 게 뭔지 알기는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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