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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r 18. 2024

흰샘의 옥상텃밭 이야기-커피찌꺼기거름 만들기

작년 여름, 아파트 옥상 방수 공사를 하는 바람에 10년 넘게 일구어놓은(?) 옥상 텃밭을 정리해야 했다. 막상 정리를 하려고 보니 그 동안 엄청난 양의 화분과 흙을 옥상에 퍼 날랐구나 싶었다. 하필 채소 가격이 고공행진을 할 때였는데, 한창 자라고 있는 쌈채소와 오이, 고추 등을 모두 뽑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장 마음 아팠다. 하지만, 그것들을 어디로 옮길 수도 없어 모두 정리를 했다. 아울러 오랫동안 사용한 흙도 모두 아파트 화단에 다 부어 버렸다. 화분도 절반 이상은 버렸다. 그런데도 혼자 힘으로는 들기도 힘든 커다란 화분이 10여 개, 작은 화분은 족히 30개가 넘게 남았다. 화분들은 아파트 담벼락에 기대어 잘 모아두고 가져가지 말라는 부탁의 말씀도 매직펜으로 써서 붙여 놓았다.

그렇게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고 다시 봄이 오자 단단한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내 삭막한 가슴 속에서도 새로 ‘농사’를 시작하자는 마음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흙은 다 버렸으니 새로 좋은 흙을 살 생각이다. 문제는 거름이다. 물론 비료도 있고, 포대로 파는 거름도 있기는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거름을 만들어 쓰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커피찌꺼기를 이용한 거름이었다. 우리 집은 365일 커피를 갈아서 걸러 먹으니 매일 약간의 커피찌꺼기가 나온다. 그것을 그대로 버리기도 아깝고, 버리면 쓰레기만 양산할 것이었다. 게다가 매일 계란도 두어 개씩 먹으니 계란 껍질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그것들을 모아서 친환경 비료를 만들기로 했다. 

깻묵은 기름집에 가면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커피찌꺼기를 이용하여 거름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이나 쌀겨 등을 필요로 했다. 커피찌꺼기는 우리 집에서도 매일 아침 조금씩 생산(?)되지만, 아무래도 커피 전문점에 가서 얻는 것이 수월하다. 집 근처에 커피 전문점이 여럿 있다. 가장 가까운 곳 앞에는 아예 바구니에 커피찌꺼기를 담아 놓고 가져가라고 써 붙여 놓았다. 사실 커피 전문점에서도 매일 쏟아지는 커피찌꺼기를 돈 들여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 가져가면 일거양득일 것이었다. 그렇게 커피찌꺼기 세 봉지를 우선 가져왔다. 

커피찌꺼기는 셀프

문제는 깻묵인데, 또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재래시장이 있다. 나는 늘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가서 채소며 과일 등을 산다. 그곳에는 분명 기름집도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기름집이 있을 만한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예상대로 기름집이 있었다. 깻묵을 좀 구한다고 했더니 나이 지긋한 주인 내외가 무엇에 쓰려 하느냐고 묻는다. 그냥 텃밭에 거름으로 주려고 한다니까 한 자루를 담아준다. 사실 기름집에서 깻묵도 처치곤란한 ‘쓰레기’이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그것을 달리 쓸 곳도 마땅찮으니 결국은 돈 주고 버려야 한다. 그런데 가져가겠다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그래도 공짜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하다못해 자루 값이라도 주어야 하고, 열심히 부삽으로 퍼 담은 주인 영감의 수고비도 있지 않겠는가? 주인이 손사래를 쳤지만 2천원을 주고 왔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지만, 또 갈 것이다. 커피찌꺼기 거름이 효과가 있다면 계속해서 만들 것이므로.

이제 거름을 만들 차례다. 인터넷에서 공부한 대로 스티로폼 박스에서 커피찌꺼기와 깻묵을 7:3 정도의 비율로 섞어 뚜껑을 덮어 놓으면 끝이다. 가끔씩 섞어주면서 한 달 정도 기다리면 거름이 된다니까, 4월 중순쯤 상추씨를 뿌리고 고추와 오이를 모종할 즈음이면 그 거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 통으로는 부족할 터이고, 거름은 계속 필요할 터이니 1주일 간격으로 한 통씩 만들 요량을 하고 있다. 계란 껍질이야 예전부터 거름으로 사용했으니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준비는 끝났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커피찌꺼기거름 상자를 하나 더 만들었다. 1주일 전에 만든 상자를 열자 흰 곰팡이가 가득하다. 푸르거나 검다면 해로운 곰팡이지만 흰 곰팡이는 발효를 도와주는 유익한 곰팡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뚜껑을 열자 잘 익은 포도주 냄새가 났다. 물을 조금 뿌려 주고 골고루 잘 섞어 주었다. 

이것이 바로 커피찌꺼기 거름이다

꽃보다, 옥상 텃밭을 가꿀 마음에 봄이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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