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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r 24. 2024

열정과 수난 사이

얼마 전, <예술의전당> 앞을 지나다가 커다란 현수막을 보았다. 바흐의  ‘요한수난곡’ 공연을 안내하는 현수막이었다. ‘마태수난곡’만 있는 줄 알았던(물론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내게 ‘요한수난곡’은 퍽 낯설었다. 그런데 더 낯선 것은 ‘Johannes Passion’이라 씌어있는 영문표기였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passion’의 의미를 ‘열정’으로만 알고 있던 터라 사전을 찾았고, 그 안에서 ‘수난’, ‘수난곡’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다. 왜 그 단어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을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질성 사이에 분명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다. 마치 절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섞이게 만드는 계면활성제 같은 것 말이다. 

언어학자가 아닌 바에야 어원(語源)까지 팔 일은 아니지만, 단순하게만 생각해도 열정과 수난은 쉬 연결이 되었다. 이성과 감정까지를 뛰어넘는 열정이 없다면 누구라서 수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나는 마태나 요한 같은 아득한 옛 이스라엘 사람들 말고, 안중근이나 윤봉길, 전태일이나 이한열 같은 이들의 열정과 고난을 생각하며 문득 ‘passion’이라는 단어 앞에서 갑자기 조금은 숙연해지는 것이다.

마침 이번 주간이 예수께서 고난을 받은 ‘고난(수난) 주간’이라고 한다. 덕분에 오늘 밤에는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을 듣는 귀호강을 하게 생겼다. 아니지. 수난을 당하는 이들 앞에서 귀호강이라니 당치도 않다. 가만히, 음악 속에 담긴 열정과 수난을 음미해 보리라. 내가 기꺼이 고난을 감수할만한 열정이 여태 남아있는지도 함께...     

<참고> 내가 여태 ‘요한 세바스찬 바하’로 알고 있던 그의 이름은 독일어 발음으로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인가 보다. 생각보다 옛날 사람이다. 1685년(숙종 11)부터 1750(영조 26)년까지 살았다. 거의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산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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