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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y 15. 2024

어릴 때 내 꿈은_스승의날에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로 시작하는 도종환의 시가 있다. 시보다 노래로 널리 불렸다. 한때 나의 최애곡이었으며,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가슴과 눈시울이 함께 뜨거웠던 적이 있다.     

이 음반이 아직도 책상서랍에 있었다니...

국민학교 입학식 날, 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나의 꿈은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도종환처럼)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오직 정의와 진리를 가르치리라 스스로 맹세했다. 정치하는 자들의 공약보다 허무맹랑한 맹세였다. 그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오랫동안 나는 내 꿈을 이룬 자긍심에 어깨에서 힘 빼지 않았고, 수업시간에는 여전히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었고, 그러면 때로 내 가슴은 열사처럼 뜨거워져서, 나는 정말 내가 선생 같기도 했다.     


스승의날, 교탁 위에 쌓이는 아이들의 선물을 바라보며 이게 다 훌륭한 내 가르침에 대한 대가라고 믿으며 옆반 선생의 교탁을 흘끔흘끔 훔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선생(질)을 하며,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기다리며,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애들도 낳아 키웠다. 30년 넘게 그렇게 살았다. 퇴임을 하면 섭섭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원하고 후련하기만 한 걸 보면 교직은 천직이라는 말도, 일생의 꿈이 선생이었다는 말도 다 헛말이었다. 다만, 옛날 제자들이 지금도 찾아주는 것은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나는 선생도 개X도 아니니까 찾지 말라고 할 용기까지는 없다. 요즘은 그 제자들(내가 주례를 선 아이들도 몇 있다)의 자식들(내가 이름을 지어준 아이들도 몇 있다, 심지어)에게 용돈 쥐어주는 것으로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상쇄하려 획책한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선생이라는 의식조차 거의 없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저 내가 가진 쥐뿔만 한 무엇을 가지고 코끼리 만큼 뻥튀기를 해서 나불거리는 것이 일이다.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국어사전에 올라와 있는 '스승'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한때, 혹은 오랫동안 스승으로 불렸던 나는 놀랍게도 스승이었던 적이 ∨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전혀’라고 하기엔 너무 허무하니까 ∨ 안에 ‘거의’라고 끼워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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