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일 동안 여행을 했다고 하면 백이면 백 이렇게 묻는다.
"여행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어?"
당연히 집 나가서 힘든 일이 없을 순 없다. 다만 소름 끼치게 기억에 남는 힘든 일은 없었는데, 기억에 남는 굴욕적인 순간은 있었다.
발리 우붓의 명소 ‘뜨갈랄랑'에 가던 날. 이곳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계단식 논이 있는데, 그 풍경이 매우 이국적이라고 해서 꼭 가야 할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여기 가면 인생샷 무조건 건짐]이라는 블로그 제목을 본 이상 그냥 갈 수 없었다. 인생샷을 위해 쨍한 컬러의 노란색 원피스도 입고 샌들도 신었다.
실제로 도착하니 정말 와- 하고 탄성이 나올만한 광경이었다. 사진으로 접한 것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논은 주변의 야자수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뷰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찍어도 인생샷이 나올수 밖에 없는 장소! 누가 봐도 '여긴 발리 우붓이에요' 할 만큼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었다. 그리곤 계단식 논의 전망을 감상하며 레스토랑에 앉아 한낮의 여유를 즐겼다.
배도 채웠겠다, 다시 나서볼까. 산비탈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 씩 만든 논은 워낙 광활해서 조금 걸어서는 도통 움직이는 티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과감하게 가보기로 했다. 큰 돔처럼 되어 있는 논은 자꾸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은 욕구를 일으켰다. 남편 역시 오지의 탐험가처럼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그렇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이제 더 이상 들어가지는 못하겠다 생각할 때쯤-
철푸덕!
순간 내 발이 묵직해지더니 중심을 잃었다. 샌들을 신은 발이 미끄러져서 논으로 쑥 빠진 것이다. 논 옆의 평평한 길로 걸어야 하는데, 날이 어두워지면서 논과 논물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발이 살짝 빠진 게 아니라 내 몸이 그대로 푹 빠졌다는 것. 허리춤까지...
논에 빠져 본 사람은 아마 없겠지? 나도 논에 빠진 사람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이 날 숙소에 돌아가 진짜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는데 ‘논에 차바퀴가 빠졌을 때’ ‘논에 핸드폰이 빠졌을 때’라는 글은 있어도 '사람이 빠졌을 때'라는 글은 아무리 봐도 없더라.(ㅠㅠ)
그래서 논에 빠지면 어떻냐고?
시멘트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차라리 시멘트가 낫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시멘트에서 비료 냄새가 나지는 않을 테니까. 비위 강한 남편도 코를 막았으면 할 말 다 했다. 어째 나에게 이런 일이...!
굴욕에 굴욕을 더한 것은 우리끼리 있던 일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애처롭게 보았다는 거다. 한 외국인은 심지어 영상을 찍고 있더라. 너 설마 여기서 미끄러진 거야? 하며 안됬다는 표정과 함께.
-
일단 폭 빠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는 논에 빠진 나와 같은 꼴이었다. 더욱 처량한 것은 논에 빠졌을 때 신발이 벗겨져 맨발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벗겨진 신발은 왜 보이질 않는 건지, 결국 남편이 발 벗고 논으로 들어가 신발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 역시 시멘트에 들어간 꼴이 되었지만 곧 ‘찾았다!!!' 하는 소리를 듣고는 집에 갈 순 있겠다 싶었다.
야심 차게 입은 노란색 원피스는 순식간에 흑탕물색으로 변하고 누가 봐도 거지꼴 완성이다. 다행히 미끄러진 곳이 딱딱한 땅이 아니라 아프지는 않았지만, 비주얼을 처참하게 잃었다.
이 꼴이 되니 일단 숙소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올 때 오토바이를 타고 왔기에 남편의 발을 닦아야 운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급한 대로 생수를 사서 발을 닦으려고 가장 가까운 가게를 찾았다. 내 꼴이 너무 우스워 얼른 물 한 병만 계산하고 나오려던 찰나,
Wait!
물을 계산하신 아주머니께서 나를 잡으신다.
네? 저요? 저 지금 좀 그래요....
내가 좀 그렇거나 말거나 아주머니는 나보고 잠깐 있어보란다. 그러더니 가게 앞에 있던 낮은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하신다.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앉으라니 앉기는 했다. 아주머니는 이내 가게 속으로 쑥 들어가시더니 양동이에 물을 받아 나오시는 게 아닌가!
엇, 설마! 내가 이런 친절을 그냥 받아도 되는 건가?
잠시 눈동자 굴리는 사이, 아주머니는 박력 있게 내 발을 잡더니 닦기 시작했다.
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아주머니는 그냥 물을 발에 뿌려주는 것이 아니라,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비누칠을 하며 흙을 닦아주고 계셨다. 솔까지 동원해서 쓱싹 닦아주신 덕에 순식간에 말끔한 발로 돌아왔다. 그리곤 다시 안으로 들어가셔서 융단 천을 들고 나오시더니 발의 물기까지 싹 닦아주셨다.
그 사이 오토바이를 가지러 갔던 남편이 나를 찾아왔고, 아주머니는 이번엔 남편의 발도 거침없이 잡더니 쓱쓱 비누를 바르기 시작했다. 남편도 갑작스러운 호의에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나는 철저히 계산적인 인간이었던 걸까.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고, 순간 '돈 달라고 그러시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얼마를 줘야 할까. 남에게 발을 닦여 본 적이 없는데, 대체 어느 정도 드려야 적당할까.
내가 머릿속으로 숫자를 생각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는 살갑게 나에게 말을 붙이셨다. 성격이 쾌활하신 아주머니 덕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돈에 대해서는 일절의 얘기도 없으셨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의 발을 닦아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못할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발을 닦아 준다는 것은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무릎을 구부리고 자세를 온전히 낮추어야만 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그러고 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의 발도 한 번 닦여준 적이 없다.
옛 명화를 보면 부유한 집주인이 가운을 입고 대개 자신의 종을 부른다. 종은 자세를 납작 낮추어 주인의 발을 귀한 물건 대하듯 닦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의 발을 씻긴 일화는 유명하다. 종의 자리로 내려가 발을 닦아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섬긴다는 의미이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남을 아껴주는 모습이다.
주인도 아니고 제자도 아닌 전혀 일면식도 없는 우리지만, 아주머니는 그저 낮은 자세로 우리에게 베풀었던 것이다. 이날 논에 빠지면서 망칠뻔했던 내 하루는 아주머니를 통해 깨끗하게 위로받았다.
얼마 후 우리는 다시 그곳을 들렀다. 그 은혜를 입고 그냥 넘어가자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아주머니 가게에 옷을 팔고 있던 게 생각났다. 옷을 사드리면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마음을 표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여행하면서 짐을 늘리지 않아야 했기에 옷을 사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한 번 더 찾아갔을 때 아주머니는 더욱 환하게 맞아주셨고, 발을 닦아주었던 사이라 그런지 친밀감이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기분 좋게 옷을 골라 들고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이 굴욕적인 사건은 세계여행을 떠나고 단 이틀째 되는 날 일어난 일인데, 어쩌면 이 사건이 300일 동안 여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사람 냄새 폴폴 나는 Waiya 아주머니, 낮은 자세로 도와주신 덕분에 그날 우린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