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갈등과 문제가 생기면 내가 아닌 상대에게서 문제를 보고 바꾸려고 한다.
나의 잘못 보다는 상대의 잘못과 문제만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이다.
TV에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의뢰인들은 자식의 고민을 털어놓고 오은영 박사와 출연진들이 함께 대화하고 심리를 파악하며 진행된다. 영상을 본 후 문제를 파악하고 의뢰인들에게 맞는 처방과 해결책을 주는 내용이다. 이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볼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 의뢰인들의 고민은 모두 제각각이고 다 다르지만 한 가지 눈에 보이는 것은 의뢰인마다 어떤 문제든 자신에 문제로 생각하기보다는 상대에게서 문제를 본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부모에 문제라기보다는 자식의 행동과 반응을 문제 삼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오십이 넘었다. 그리고 우리 두 딸들은 모두 20대의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지난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창피한 일이고 부모로서 참 성숙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커준 딸들이 고맙고 예쁘다.
딸들이 성인이 되고 가끔 예전의 일들을 얘기할 때가 있다. 지금은 스스럼없이 얘기를 하지만 그때만 해도 엄마한테는 말도 못 하고 눈물 흘리는 딸 들이었다.
"나는 엄마가 너무 무서웠어. 엄마가 하는 말은 그냥 다 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을 못 했어. 생각해 보면 그때가 진짜 최고 싫었어"
그러면서 큰딸이 지난 이야기를 꺼낸다.
큰딸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체험활동으로 에버랜드를 갔다. 친구들은 학교 활동이 다 끝나고 몇몇 친구들끼리 저녁 늦게까지 놀다 간다고 부모님께 허락을 맡고 논다고 했다. 큰딸도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지금 학교 활동은 다 끝났는데.. 친구들하고 놀다 가면 안 돼?
"무슨 소리야. 학교 활동이 끝났으면 집으로 와야지. 늦게까지 거기서 논다고?"
"안돼, 너는 왜 꼭 계획에도 없는걸 당일날 전화해서 하겠다고 하는 거야?"
"엄마.... 안돼?"
"안된다니까! 위험하게 무슨 저녁까지 놀다 와! 빨리 와"
엄마의 호통치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은 남아서 노는데 큰딸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낯선 곳에서 혼자서 버스를 탈 일이 많이 없던 터라 오는 길에 버스 시간 기다리고 집까지 오는 데 한참이 걸려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서 집에 온 딸은 거의 울상을 하고 밥도 안 먹고 방으로 문을 닫고 들어갔다. 다음날 안 사실이지만 그날 저녁 친구들은 늦게까지 놀다가 친구 아빠가 차를 가지고 에버랜드로 친구들을 태우러 와서 그 친구들은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온 시간이 9시였다는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을지 말만 들어도 느껴진다.
나는 딸들에게 무서운 엄마였다. 딸들이 잘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나의 변명일 것이다. 분명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리 딸들은 충분히 잘 컸을 텐데,
아니 지금보다 더 잘 컸을 텐데 나의 걱정이 우리 딸들을 소심하며 자신감 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만든 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든다.
우리 딸들은 내 성향을 별로 닮지 않았다. 아마도 아빠의 성향이 80% 정도 내 성향이 20% 정도 되려나. 이것도 그저 내 생각이다. 남편은 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사람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속 깊은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나처럼 원리원칙에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아이들을 키울 때 얼마나 답답하고 숨이 막혔겠는가? 결혼 전 한창때야 서로 다른 매력에 빠져 그 매력으로 부부가 되었다고 해도 아이들을 키울 때만큼은 의견 차이가 다르면 힘들 텐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나의 의견을 따라 준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그때는 그런 모든 게 왜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을까?
남편뿐 아니라 딸들은 더 했을 것이다. 딸들이 크고 성인이 되어 내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성인 대 성인으로 봐도 우리 딸들은 어른 공경 잘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아이들로 잘 컸다.
언젠가 시아버님도 그렇고 친정 부모님들도 우리 딸들을 보며
"너는 참 자식 잘 키웠다.
느그 애기들처럼 어른들 잘 챙기는 애들도 요즘 드물다. 다 니 복이여"
하는 소리에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제가 잘 키운 게 아니고 아이들이 잘 커준 거예요"라고 말은 하지만 마음은 온전히 편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작은딸에게 마음에 커다란 빚을 안고 있다.
작은 딸은 유독 사춘기가 빨리 왔다. 초등학교 5학년 후반기 때부터 나를 힘들게 했다. 작은 사건들부터 큰 사건까지 엄마의 마음을 한시도 편하게 해주는 딸이 아니었다. 친구들 문제, 학교 문제 지금 생각해도 작은딸로 인해 운 날도 많고 가슴 치며 조마조마했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딸과는 늘 사사건건 부딪혔다. 말 한마디에도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웠다.
그렇게 어려운 사춘기를 보내고 조금은 괜찮아지겠지 싶었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막 대학교에 입학한 딸은 이제 성인이 되었고 머리가 커졌다. 그동안은 엄마가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도 듣고 있었다면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을 좋아해서 밤늦게까지 노는 걸 좋아했고 그런 일들로 나의 참견과 간섭은 작은딸을 더욱더 반항적이게 만들었다.
그동안 억눌러 온 반항심이 최고조를 달릴 때였다.
그날도 작은 딸은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고 새벽 4시에 집에 들어왔다. 걱정과 불안에 잠을 못 이룬 날들이 계속되고 작은 딸의 반항에 남편과 나 역시 감정이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작은 딸을 향해 나는 감정을 섞어 막말을 쏟아부었다.
"너 진짜 미쳤구나? 이렇게 막 나갈 거면 아예 집을 나가!"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연락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고 이게 뭐 하는 거야?"
"너 때문에 지금 집식구들이 다 잠도 못 자고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뭐, 지금 이 시간이 뭐 어때서!"
"친구들도 다 이 시간까지 놀아. 지금 나가봐 노는 애들 천지야!"
"왜 맨날 나만 갖고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진짜 나도 힘들어"
"나도 죽고 싶어. 죽고 싶다고!!!"
고래고래 술 먹고 큰소리를 치는 작은 딸을 보며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뭐라고, 진짜 미쳐가는구나. 미친년이 다 됐네. 할 말이 따로 있지."
"그래. 한번 죽어봐 그럼. 뭐 때문에 죽고 싶다는 건지. 한번 보자"
"배가 불렀지. 지금 힘들게 사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신도 없이 미쳐가냐"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순간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딸이 순간 아파트 17층에서 문을 열더니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끔찍한 순간이었다. 설사 술 먹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행동이라고 해도 나에게 있어 그리고 작은딸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있어 지금은 그때의 일을 일부러 얘기하지 않지만 이 일은 너무 큰 아픔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단락되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자식일 만큼은 정말 부모 마음대로 안되는구나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조금씩 참게 되었고 화가 나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법륜스님 법문을 듣고 한 달간 절 수련을 했다. 절 수련을 하면서 매일 울었고 매일 반성했다. 그러면서 법륜스님의 자식과의 갈등에 대한 좋은 말씀을 들으며 조금씩 조금씩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속상한 일이 있거나 답답한 일이 있으면 나는 어김없이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절 수련을 한다. 기분이 풀릴 때까지 절 수련을 하고 나면 문제는 다 상대가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법륜스님은 내 인생의 멘토이자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법륜스님의 말씀은 지금도 나에게 인생이 힘들 때 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의 딸들은 이제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누가 봐도 잘 컸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에서야 내가 참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로서 성숙하지 못했고 지혜롭지 못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딸들에게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
그때 그렇게 내가 아이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내 기준대로 내 뜻대로 내 욕심을 부리며 키우지 않았어도 우리 딸들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느끼며 충분히 잘 자랐을 텐데 부족한 엄마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게 한 건 아닌지 뒤돌아 보게 된다.
작년에 작은딸은 분가를 했다. 큰딸도 직장 변경으로 인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오피스텔로 짐을 옮겼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딸들을 조금은 자유롭게 인정하고 대하는 사이가 되고부터 우리 가족은 좀 더 유연한 관계가 되었다.
텔레비전이나 주변에서 가족에 문제로 힘들어하며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족에 문제는 남과의 문제와는 다르다. 남은 안 보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가끔 지인들을 만나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을 들을 때면 나는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해서 자녀에 대한 간섭은 최소한으로 하라는 말을 하고 한다.
누구에게 조언을 할 만한 주제도 못되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자식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믿어주기만 해도 충분히 잘 크는데 부모의 욕심으로 자식에 대한 기대를 하며 자식이 원하는 삶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기준에 맞추려고 해서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부모의 노릇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음을...
인생은 늘 모르는 것투성이고 지나고 나서야 '아' 하고 알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특히 자식에 문제는 더하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대표적인 한탄이 "그래 너도 부모가 되면 내 마음을 알게 되겠지. 너도 니 같은 자식 낳아서 길러봐라. 그럼 알게 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부모님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키웠을 테지.
오십의 나이가 되고 보니 가족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몫을 잘해 줄 때 결속력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 자리에서 알아서 잘 살아주기. 함께 부대끼며 산다고 잘 사는 게 아니고 떨어져 있어도 가족은 얼마든지 결속력을 다지며 잘 지낼 수 있다고. 자식이 성인이 되면 법륜스님의 말씀대로 특히 떨어져 살 것을 권장하고 싶다. 각자 따로 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