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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웃게 하는 것

by 말상믿


얼마 전 가슴 따뜻하게 봤던 넷플릭스의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마음 한편에 엄마에 대한 생각과 미안함이 들었다. 애순의 엄마 광례에 대한 내용을 볼 때면 뭔가 모를 양가감정이 들어 마음이 이상했다.


부모에 대한 전폭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고 자란 애순을 보면서 진짜 저런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어떻게 못될 수가 있겠어라는 생각과 어떻게 하면 광례처럼 자식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이 있을까라는 두 가지의 마음이었다. 지금의 내가 딸이자 엄마인 입장으로 드라마를 봐서 그럴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관식과 애순의 금명이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을 보면서 부모의 사랑과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금명이의 동생 은명이의 투정과 울부짖음도 나는 왜 마음에 와닿았을까?


부모의 입장에서는 분명 금명이나 은명이 어느 자식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키우려고 노력했을 텐데 드라마에서만 봐도 자식에게 헌신적인 똑같은 부모를 두고 느끼는 사랑과 감정은 다르다. 은명이는 드라마 내내 엄마 아빠한테는 금명이 밖에 없느냐며 서운함을 토로한다. 그런 은명이를 보면서 나는 왜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을까?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수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풍족하지 않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광례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애순이 관식과 애순에서 태어난 첫째 딸 금명이에게 엄마에게서 받은 사랑 이상으로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귀함을 알고 마음을 알기에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5형제 중 딱 중간이다.

오빠, 언니, 나, 그리고 여동생, 남동생

그때나 지금이나 늘 같은 생각을 했었다.


5형제 중 딱 중간에 끼어 부모님의 사랑은커녕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중간에 끼어 언제나 나는 뒷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명이 동생 은명이가 같은 부모에게서 느끼는 서운한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오빠와 언니는 장남 장녀라 나름의 이쁨을 받고 내 바로 밑 남동생은 어릴 적 잘못되어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그리고 태어난 여동생 남동생은 나랑 5~6년 차이가 나 그때 당시에 아들 하나 더 가지려고 낳았기 때문에 엄마는 막내 남동생에 대한 사랑이 지대했다. 여동생은 정확히 내가 몇 살 때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적 엄마의 손보다는 내가 엎어 키울 정도였으니 중간에 낀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내 몫은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성장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지금까지도 나는 가끔씩 부모의 사랑을 전적으로 받지 못했다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엄마의 마음을 건드린다. 5형제가 집안 행사로 모두 모여 지난날을 이야기할 때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나의 레퍼토리다.


이 나이를 먹고 뭐가 그리 서운하고 억울해서 아직도 그런 마음이 남아 투정을 부리는지 모르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자식을 편애하면서 키우거나 더 많은 사랑을 주기보다는 그때그때 더 마음 가고 더 손이 가는 자식한테 조금 더 집중하며 마음을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5형제를 키우며 어려운 시절을 보낸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이런 투정도 무색하기만 하다.

딸이자 엄마인 지금의 마음이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또 여러 감정이 드는 건 지금 나의 위치가 딱 그러하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 조금 있으면 치킨 배달 갈 거야"

"엄마 드시는 옛날 통닭 아니고 요즘에 나오는 달달한 통닭이니까 한번 맛보셔"

"며칠 전 먹어보고 맛있길래 엄마 아빠 드셔보시라고 배달시켰어"

"아이고~ 뭐 할라고 그런 거를 시켰어. 엄마가 다 알아서 아빠 간식 사준다니까"

"그런 거 쓸데없이 신경 쓰지 말고 엄마가 부탁한 거나해주지"

"응. 엄마가 부탁한 거 그게 뭔데?"

"나한테 부탁한 게 있었어"

"아니. 너한테는 부탁을 안 했지."

"그게 뭔데 엄마?"

"옆에 ㅇㅇ이는 딸이 쿠폰 같은 거 줘서 엄마랑 시내 구경 가면 그 쿠폰으로 빵도 먹고 음료도 사주고 하던데"

"그 딸이 맨날 ㅇㅇ아줌마랑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라고 보내준다고 하던디"

"몇 번 얻어먹으니까 나도 딸이 그런 거 보내주면 딸이 보내줬다고 같이 먹기도 하고 좋지"

"나도 딸이 셋이나 있는데 그런 거 좀 보내주면 안 될까?"


한참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전화 통화를 끊고 나니 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딸 돈 들어간다고 치킨은 뭐 하러 배달시키냐고 하면서 정작 엄마 친구한테 나도 너만큼 잘하는 딸들이 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쿠폰 사서 보내주면 안 되냐는 말에 그게 뭐라고 또 웃음이 난다.


똑같은 돈이어도 생색내기 좋아하는 엄마의 세대는 그냥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치킨 배달보다 우리 딸이 이거 보내줬다며 함께 먹으며 생색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예전에는 참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스타벅스 상품권을 보내드리고 또 엄마와 한참을 통화를 했다. 방금 전 퉁명스럽게 '뭐 그런 거 안 시켜줘도 된다니까'라고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한껏 격양된 채로 톤이 높아졌다.


"우리 딸이 최고여. 금방 보냈네"

"우리 엄마가 원하는 거면 얼른 해 드려야지"

"응. 고마워."

"이거 큰 딸이랑 은애한테도 보내달라고 해야지"

"ㅎㅎ 그래 엄마. 딸들한테 얘기하면 보내줄 거야"


이런 목소리를 언제 들어보았을까?

이렇게 격양되게 좋아하는 목소리를.


정작 보내드린 쿠폰을 어디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되묻는 엄마지만 나는 안다.

엄마가 어떻게든 찾아서 쓰실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는 커피도 안 마시고 그런데 안 가잖아'라고 했던 나의 말이 무색하게 엄마는 아빠랑 산책 나갔다 한 번씩 가서 먹고 와도 좋겠다며 전화 통화 중에도 아빠한테 통화 너머로 말을 건넨다.


어떤 선물을 드릴 때보다도 좋아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고 다시금 딸이 돼서 엄마를 참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함도 든다.


"커피 말고 그거 달달하게 우유 타서 마시는 거 그거 뭐라고 하던데."

"아 라떼라고 하드만. 그거 맛있든 디."

"그런대도 젊은 사람들만 가는 줄 알았는데 나이 든 사람들도 가더구먼"

"이거 우리 딸이 같이 먹으라고 보내준 거라고 말해야 쓰겄네"


이렇게 작고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엄마이건만 딸이 생각하는 엄마는 이런 일상을 즐긴다는 생각을 못 했다는 것도 죄송하다.


같은 시대에 사는 딸인데도 엄마와 친한 ㅇㅇ아줌마의 딸은 그런 일상의 행복을 자신의 엄마에게 선물해 주고 있는데 정작 나는 아직도 옛날에 사로잡혀 엄마에게 못 받은 정만 생각하고 엄마는 나이 든 사람, 주는 사람이라고만 인식하고 있었나.


그게 뭐라고. 그 커피 쿠폰 몇 장이 뭐라고.

그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엄마에게도 즐거워야 할 개인의 일상이 있는데.


한 번도 그런 엄마만의 즐거운 일상을 생각하지 않았다. 자식들과 기회가 되면 한 번씩 같이 간다고만 생각했지 엄마 개인적인 일상에 카페를 가실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를 반성한다.


조금 더 엄마의 인생에 꽃이 피도록 조금 더 엄마 개인 일상을 들여다봤더라면, 받지 못했다고 투정 부릴 것이 아니라 이제 받을 만큼 받았으면 뭘 더 드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시절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분명 엄마는 지금의 나처럼 욕심부리며 자식 잘 키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나나 엄마나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다.

평생 엄마는 처음 해보는 거라 엄마라는 이름도 시간이 갈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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