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벚꽃엔딩을 하듯 바람에 꽃눈이 흩날리는 날.
아빠와 남한산성 데이트를 하고 왔다.
바람도 불고 기온도 차가워져 남한산성 산책 가자는 제안에 귀찮다 하실 줄 알았는데 묻자마자 좋다고 하시는 아빠를 보니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남한산성을 오르는 내내 벚꽃을 보면서
"아따 꽃이 너무 이쁘게 피었다"
"우리 딸 덕분에 꽃구경도 하고 오늘 아빠가 호강하네"
딸이 오랜만에 들러 차로 꽃구경 시켜주는 게 뭐가 그리 호강스러운 일이라고 아빠는 집에서 출발해서 남한산성 도착할 때까지 열 번도 넘게 반복해서 마음을 표현하신다.
"우리 딸 아니면 이런 구경도 못허제"
"여기는 차가 있어야 오는 데라 마음이 있어도 오기가 힘들어"
"오늘은 딸 덕분에 아빠가 좋은 구경 하네. 고마워 우리 딸"
아빠의 마음을 듣고 있으니 자꾸만 미안한 생각에 그동안 너무 소홀했구나 싶다. 마음만 내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이건만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내지 못했구나 생각하니 앞으로는 함께 할 시간을 좀 더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오늘은 기상이변으로 남한산성에 4월에 때아닌 눈이 내렸다. 우박 같은 눈이 휘몰아치며 봄꽃들을 모두 흔들어 날려 버릴 것 같더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뜨고 날씨도 맑아졌다. 아빠는 파전에 간단한 약주 한 잔을 드시고 기분이 더 좋아지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잔치국수도 후루룩 단숨에 드시고는 또 말을 이어가신다.
"우리 딸 하고는 남한산성에 처음 와보네"
갑작스러운 아빠의 말씀에 또 가슴이 아프다.
"아빠, 아빠랑 처음이 아니고 해마다 왔는데. 기억이 안 나셔요?"
"저기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쑥도 캐고 했는데"
"저 아래 흑염소 집에서 아빠 좋아하신다고 김서방이 해년마다 흑염소도 사드렸는데 기억이 안 나셔?"
"그랬어. 아빠가 인제 나이가 등께 기억을 잘 못해서 그래"
아빠는 어디까지 기억을 하시는 걸까?
가족들은 다 알아보시고 자식 이름에 장소까지 기억하시면서 함께 했던 기억들은 다 잊으신 걸까?
때때로 아빠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럼에도 지금 이 상태로 가족들을 알아보시고 일상생활을 하시고 계시는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늘 엄마의 개인적인 부재로 아빠와 함께 한 시간이 참 고맙다.
"아빠는 자식이 보고 싶어도 부를 수가 없제"
"자식들도 먹고살기 바쁜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부르면 쓰간"
"아빠한테 오면서 짜증 내고 오면 아빠도 미안헌 디"
"우리 딸이 이렇게 기분 좋게 아빠 산책도 시켜준 디 아빠는 무조건 고맙제"
아빠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아빠는 세상의 이치를 모두 받아들이시는 분 같다가도 또 어느 물음과 대답에는 아빠만의 기억의 세계로 돌아가시는 것 같다.
딸과 파전에 약주 한잔하시고 흔쾌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계산하시겠다는 아빠. 딸과의 데이트에 당연히 대접을 받아도 되건만 음식을 다 드시기도 전부터 돈을 꺼내시는 아빠를 만류하고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아빠 지금 이대로도 좋으니 더 안 좋아 지시지만 마시고 지금처럼 곁에 있어주세요. 속으로 계속 되뇌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화사한 꽃들이 만발한 봄날.
남한산성에 벚꽃은 벚꽃엔딩을 알리듯 바람에 휘날리고 이상 기온으로 아빠와 데이트하는 시간에 때아닌 우박 같은 눈이 내려 난감하기도 했지만 아빠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하루다.
아침 일찍 친정에 가서 저녁 늦게 집에 왔다.
하루 종일 해야 할 것들을 접어두고 자식으로서 할 일을 하고 온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좋다.
바쁘다는 핑계가 아닌 자주 함께 할 시간을 내자.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핑계만 대고 있다가 할 수 없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때 하자.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