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딸 딸 딸~
아버님이 살아계실 적
동네 노인정에 가시면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번듯한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그 아들들이 모두 딸만 낳아
동네 어르신들이 우스갯소리로
아버님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딸딸이 할아버지라고.
종갓집에 아들이 셋이고
누가 봐도 그 아들들은 키도 크고 몸집도 좋다.
평균 기본 180에 90킬로는 넘을 정도니
옛날 어르신들의 눈에는
어딜 가도 자식들 훤칠하니
잘났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그런 아들들이 장가를 가고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도 딸, 둘째도 딸, 막내아들 역시도 딸이다.
그것도 두 번째 모두 동일하다.
종갓집에 아들들이 아들을 못 낳으니
그때만 해도 얼마나 속이 타고
내뱉고 싶은 말들을 속으로 삼켰을지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노인정에 한 번씩 다녀오신 아버님은
내가 경운기도 아니고
나보고 딸 딸 딸 딸 하면서 놀린다며
은근 며느리 들으라고
스토리를 말해주신 거 빼고는
대놓고 아들 낳으라고
스트레스를 주거나 하지는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시부모님들은 참 호인이시다.
가끔 술 한잔 기울이실 때면 웃으시면서
아들 낳으면 있는 재산 다 줄 테니 생각해 보라며
아들 낳을 생각 없냐는 말에 속으로
시댁 재산이 얼마나 되나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또 딸을 낳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제로인데
괜히 시도해서 또 딸을 낳으면
그 기대에 얼마나 실망하실지 알기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 나는 막내며느리인데
그런 시도를 했다가 덜컥 아들이라도 낳으면
큰 형님과의 사이 또한
안 좋아질 것까지 걱정하고
잠깐 마음을 먹었다가도
이내 없는 얘기가 되곤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을 낳을 자신이 없었다.
지난 주말 큰 딸이 집에 왔다.
아빠 해외 출장으로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돼
일부러 온 것이다.
몇 달 전 분가해 내 집의 맛이란 걸 한껏 느끼고
혼자 사는 편안함에 본가는 한껏 소원해졌다.
서운하다기보다는 대견하고
걱정보다는 믿음이 앞서는 딸 들이지만,
딸들이 자주 오지 않으니
허전함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런 큰딸이 모처럼 집에 오니 너무 좋았다.
금요일 오후 일을 끝내고 오느라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오면서
늦게까지 혼자 기다리면서 배고플
엄마를 생각해 대충 먹었다며
밥 먹고 있으라고 하더니
막상 도착해 밥을 안 먹었다는 딸.
집에 도착해
엄마가 해놓은 반찬에 밥을 먹으면서
'역시 이 맛이야. 엄마 반찬 맛있다.'라며
맛있게 먹는 딸을 보니
새삼 딸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집도 화사해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한 다발 사와
'엄마 선물'하며 안겨주는 큰딸 덕분에
또 기분이 한껏 업 된다.
큰딸에게 늦은 저녁을 차려주고
두 시간 동안 폭풍 수다를 늘어놓는다.
요 근래 이렇게 나의 일상적인 대화를 한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아졌다.
딸이 오니 주저리주저리
왜 그렇게 할 말도 많은지.
딸이 오니 주말도 바빠졌다.
"엄마 내일 놀러 가자."
"내일 엄마랑 같이 놀러 가려고 약속도 안 잡았어"
"엄마 가고 싶은데 없어?"
라고 묻는 큰딸이 고맙다.
아마도 아빠가 출장 가지 않았으면
그런 마음을 쓰지 않았겠지만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움을 느끼는 엄마를 위해
마음 써주는 딸이 있어 든든하다.
딸이 오니 평소에 해보지 않는 것들도 해본다.
100명이 넘는 웨이팅을 기다리며
남편과 저런 맛있는 베이글을 먹을 수 있었을까?
아마 기다리는 것조차 끔찍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딸과 함께 하니 이런 것도 해보고 참 좋다.
수원 스타필드 별마당 도서관은
이미 유명한 곳이다.
가자마자 도서관에 들러
딸은 엄마 책 <오십의 태도>를
찾아 검색했는데 해당 도서 내역이 없다.
이곳에 수많은 책 중에 내 책이 없어서 아쉬웠다.
딸이 직원에게 문의해 보니
출판사와 영풍문고가 계약을 하지 않아
내 책은 아쉽게도 없다는 말씀에
잠깐 입을 삐죽이기는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에 기분을 망칠 일은 아니다.
엄마에게 있어 딸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엄마이자 딸의 입장이다.
딸의 세심한 마음을 느낄 때면
정작 나는 엄마한테 잘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넷플릭스 '폭삭 속았수다'로 한창 시끄러울 때
딸들과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며
빵 터져 웃은 적이 있다.
'금명이는 어느 집에 나 있고
그런 금명이가 우리 집에도 있다.'
금명이 역인 아이유를 보며
우리 가족 모두 금명이를 보며
둘째 딸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둘째 딸 본인도 자신을 보는 줄 알았다며
고해성사를 하는 바람에 빵 터져 웃은 적이 있다.
딸들이 크니 엄마와의 관계가 좋아진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면 진작 더 잘해 줄걸.
그때만 해도 힘들어서 엄마의 역할이
사랑보다는 억압과 간섭,
잔소리로 딸들을 대했으니
그럼에도 잘 커준 딸들이 그저 고맙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옛말이 있다.
지금은 자식에 대한 기대나 바람들이
예전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맞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가끔은 큰딸이 그런 존재로 느껴진다.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피고
니즈를 파악해 무언가를 해 주려고
노력하는 큰딸을 보면서
문뜩 지난날이 생각이 났다.
아들을 못 낳았다는 이유로
두 딸들을 낳고 울었던 나다.
지금 시대에 들으면 웃긴 얘기지만
그래야 불과 28년 전 일이다.
시부모님 역시 서운한 마음이 늘 있으셨을 텐데.
돌아가신 시부모님들께는 미안하지만
지나고 보니 딸을 낳아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쉬움이 들었을 때
눈 딱 감고 딸이든 아들이든 낳았다면
시부모님들도 나의 노력의 결과에 어떻든
서운함이 남지 않았을 테고
키울 때는 힘들어도 이렇게 키워놓고 보니
딸 셋도 괜찮았겠다는 생각도 드니
피식 웃음이 난다.
지나고 보면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지금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큰딸과 지난 주말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며칠이 지난 지금 함께 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보니
엄마와 딸의 관계는 때로는 원수 같고
때로는 친구 같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엄마이자 딸인 나로서
나는 지금 엄마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또 딸의 역할에도 부족함이 없는지.
5월 가정의 달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본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