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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우리 집에는 애순이는 모르는 관식이가 산다

by 말상믿


한동안 넷플릭스의 <폭싹 속았수다>에 많은 사람들이 홀딱 빠져 있다가 조금 조용해졌다.


TV 드라마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한 번씩 이슈가 되어 핫하거나 우연히 한번 받는데 필이 오는 드라마는 애정을 가지고 본다.


그중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 나는 드라마는

미생(2014)

응답하라 1988(2015)

낭만 닥터 김 사부 1,2,3(2016~2023)

나의 아저씨(2018)

동백꽃 필 무렵(2019)

슬기로운 의사 생활(2020)

나의 해방일지(2022)

폭싹 속았수다(2025)

정도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의 감정과 내용 재미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것뿐만 아니라 전체 스토리와 각 출연하는 출연자들의 구성과 대사를 한 번 더 생각하며 보게 된다.


기억나는 드라마 재목을 적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거의 비슷하다.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여러 번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특성 때문에 보고 느낀 감성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글을 쓰려면 직접 느끼거나 경험한 것을 기록해야 비로소 글로 쓰게 된다. 그러니 소설은 나에게 있어 어려운 장르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보다 마음을 콕 찌르는 어떤 대사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보통 첫 회 몇 분만 봐도 이 드라마는 끝까지 볼 것 같다 아니다를 알게 된다. 그래서 첫 회 보고 이후 안 본 드라마도 많고 갈수록 흥미진진한 드라마는 못 본 것도 많다.


남편은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어쩌다 내가 추천해 주는 드라마를 넷플릭스로 한 번씩 보는 게 다다.


그런 남편이 <폭삭 속았수다>를 보면서 처음에는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집중하며 본다. 한 번에 다 볼 수 없어 며칠에 걸쳐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하는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꼭 우리 얘기 보는 것 같다"

"응 우리 얘기 같다고?"

"어디를 보고 그렇게 느꼈어?"

"당신이 관식이라고?"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고 어떤 주제에 따라 자신과 비슷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내용을 볼 때면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이 분명 있게 마련이다.


풋. 그럼에도 나는 애순이와 관식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보며 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왜 남편은 관식과 애순을 보며 꼭 우리 같다고 느꼈을까?


남편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리고 '뭐라는 거야'라는 표정을 지으며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 보면 애순이에 대한 사랑 방식은 달랐어도 살아오면서 자식 위해 아내 위해 묵묵히 성실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온 남편들은 모두 애순이를 사랑한 관식이라고 느끼고 싶지 않았을까?


처음 드라마가 시작되고 친한 언니와 전화 통화를 하다 드라마를 보고 그 언니가 '지금 나에게는 관식이가 필요해'라는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런 관식이는 없어요.'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참 현실적인 나다.


그러나.

각 집에는 애순이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관식이가 살고 있지 않을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사랑으로.

때로는 애순이의 남편 관식이가 되었다가.

때로는 금명이의 아부지 관식이가 되었다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 20년 넘게 가족들을 위해 책임지고 살았으면 드라마에 나오는 관식이처럼 애틋하지는 않아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지고지순한 사랑은 아니어도 충분히 관식의 인생을 보며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쩌면 드라마에서 본 관식이와 너무 대조되는 학씨아저씨도 누군가의 관식으로 남고 싶지 않았을까?

각 집에는 애순이는 인정하지 않는 관식이가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드라마를 보며 남편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 그걸 모르는 척 사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처럼 버라이어티 하지 않아도 우리의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를 보고 남편이 느낀 한마디에 고마움과 든든함과 미소가 지어진다.


"바람은 왱왱왱 마음은 잉잉잉"

우리 집에는 애순이만 모르는 관식이가 살고 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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