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교양'을 꼽았다. 그는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가 가치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행복은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냐 하는 것보다는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라며 쇼펜하우어는 사유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를 권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1년에 50권은 가볍게 읽는다. 이제 책은 없어서는 안 될 단짝 친구가 되었다. 책을 읽는데도 누구는 다독을 하는 게 좋다 하고 또 누구는 다독하는 것보다는 고전을 읽고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게 좋다고 한다. 어떤 방법이든 지금의 나는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즐긴다.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차차 책을 읽으면서 알아가면 될 일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집에 있으면 항상 심심했다. TV를 봐도 재미가 없고 할 게 없어서 지루했다. 무료한데 뭐 할 게 없을까라고 하면서도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료할 시간이 없다. 책이 주는 풍족함을 알고 독서를 통해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음을 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게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세계만 믿는 경우가 많다. 책을 통해 다양한 것을 간접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자기의 간접 경험을 충분히 넓힐 수 있다. 책에는 책을 쓰는 사람의 노하우와 인생철학 삶의 방식 그리고 작가의 인생이 녹아 있다. 그렇게 따지면 책값은 우리 인생의 경험을 주는 값으로 너무 싸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는 책값이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선뜻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책값을 보다가 비싸다는 생각에 내려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가성비 좋은 상품도 없다. 작가의 노하우와 인생철학을 그 책 한 권으로 다 배운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 그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간접적으로 읽고 느끼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몇 년 전 남편이 쓰려고 만든 서재의 책상이 지금은 온전히 나의 자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소파에 앉아 읽었는데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아서 보게 되었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에서 김미경 강사는 누구나 자기만의 책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주부일수록 특히 자신의 책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이나 아이들은 각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싫든 좋든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부들은 집에 있는 공간이 다 내가 쓰는 공간이다, 식탁이나 소파가 내 자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자리가 아닌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인식해야 맞지 않을까? 작은 자리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책상이 있다는 것은 가족들에게도 나름의 나의 자리를 인정받는 것이다. 꼭 나만의 책상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나의 책상을 잘 가졌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 것이다.
요즘 책상에 앉아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할 일이 많아졌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자기 책상을 뺏겼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집에서 자신의 자리를 가지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아내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십이 되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학업을 끝마친 경우가 많다. 가끔 친구들의 집에 가봐도 아이들이 썼던 책상 하나쯤은 그냥 방치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정리해서 버리기도 한다. 나 역시 딸들 대학교 졸업 후 가장 먼저 처분한 것은 책상이고 그 대체 가구로 화장대를 샀다. 딸들이 다 분가하고 방도 남지만 나는 나의 책상을 거실에 자리하고 있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갈수록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아내가, 자신의 공간에서 하루를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거실만 한 곳도 없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경우다. 거실은 가족들이 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이므로 서로의 이해가 필요한 공간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율성에서 온다고 하는데 누가 읽으라고 해서 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자기 스스로 주도적으로 읽는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책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 자녀에게 억지로 책을 보라고 하기 이전에 부모가 먼저 책을 보는 모습을 보이면 그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적응하고 따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아이들이 책에 대한 거부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아이들 어릴 적에는 직장에 다니고 바쁘다는 핑계로 못 했던 것을 지금에서야 하고 있다. 이 좋은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면서 말이다. 엄마가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본 딸들이 드디어 올해 엄마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꽤 오래 걸렸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 읽었다. 본격적으로 1년에 50권씩 읽기 시작한 것은 2년째다. 책을 읽고 가장 좋은 점은 내가 그렇게 책을 사주고 읽으라고 강요할 때는 책을 읽지 않던 딸들이 드디어 책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성인이 된 딸들이 엄마가 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어느 날 딸들이 내가 읽는 책을 책꽂이에서 하나씩 훑어보면서 물어본다.
"엄마 나 책 좀 보려고 하는데 무슨 책부터 읽어볼까? 한 권만 권해 줄 수 있어?" 이 감격스러운 말을 듣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걸까? 나는 주저 없이 나의 인생 책을 권해주며 "이게 엄마 인생 책이야. 한번 읽어볼래? 그런데 너네한테는 아닐 수도 있어. 가볍게 한번 읽어봐" 하고 책을 건넨다. 그리고 "엄마 인생 책이 이 칸에 있는 건데 조금씩 바뀌더라고" 하면서 조금은 있는 척까지 해본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책을 다 읽고 다시 가져온 뒤 딸들이 하는 말이 "엄마, 이 책 진짜 좋아. 왜 엄마가 이 책을 읽으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그럼 이 책 다 읽었는데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어볼까? 하고 묻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상황을 내가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또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그리고 두 딸이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책을 보기 시작했고 서로 좋은 책을 먼저 보겠다고 타협 아닌 타협을 하는 것도 지켜보는 엄마로서 즐거울 따름이다.
나는 빌려 간 책은 다 읽으면 되돌려 받는다. 딸들에게 책을 주면서 '다 읽고 나면 반납해 줘'라는 말을 한다. 조금은 인색한 것 같지만 그만큼 책을 아낀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딸들도 몇 권의 책은 읽어본 뒤 자신이 구입해서 소장하려는 것을 보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딸들도 책을 다 읽고 난 뒤 자신이 느끼고 좋은 문장은 줄을 긋고 싶은데 엄마 책이라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며 내가 권해준 책 중에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은 샀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 이제는 됐다. 책은 자신의 자비로 사야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나는 좋은 문장에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한다. 다시 읽고 싶은 페이지는 접거나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하기도 한다. 나의 생각과 흔적이 남아있는 내 책을 다시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맛을 알게 된 우리 딸들이 기특하다. 그나마 늦었지만 엄마가 좋은 모습을 보여 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나는 책을 읽는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끔 주말에 딸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책의 느낌이나 생각을 공유할 때면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군요' 하고 속으로 감사의 말을 되새긴다. 그런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부모의 욕심이 한 번씩 찾아오곤 한다. "그거 다 읽었으면 이 책도 읽어 볼래? 참 부모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스스로 자율성이 있지 않는 한 어떤 좋은 책을 권해줘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슨 욕심에 아직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가끔은 아이러니하다. 딸들이 직접 권해달라고 하기 전이나 궁금해하지 않을 때는 굳이 먼저 나서서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궁금해하고 관심 있어하는 것을 보면 모든 관계는 밀당이 기본적으로 필요한가 보다.
하루 일과 중 자주 책을 읽으며 보낸다. 나의 책상에는 24시간 책이 펼쳐져 있다. 읽던 읽지 않던 독서대에 펴 있는 책을 보면 괜스레 으쓱해진다. 책을 자주 읽는 사람은 무슨 호들갑이냐 할 수 있지만 오십 평생 책을 꾸준히 읽지 않다가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인식하게 될 때에는 어디서 나오는 자존감인지 자존감이 나와 '나 좀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 주는 풍요로움은 이렇게 끝도 없다.
오십을 인생 2막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나의 오십은 책을 알기 전과 책을 알고 난 후로 나뉜다.
오십이 무료한가? 그럼 지금 책을 읽어야 할 때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