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참 빠르다. 어떤 것을 기록하지 않을 때는 실감하지 못하다가 기록하면 느낀다.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에 대해 실감이 잘 안 된다. 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은 훨씬 빨리 흐른다.
올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벌써 이번 달도 10일이 지났으니 두 달이 채 남아있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보다 늘 익숙한 것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것이 힘들면 시간은 더디게 느껴지는데 익숙한 것을 할 때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가 했는데 요즘에서야 느낀다. 매일 반복되는 시간이 참 빠르게도 흐른다.
오랜만에 큰딸이 집에 왔다. 조용하던 집이 큰딸의 목소리로 활기차다. 이런저런 직장 얘기며 여행 얘기며 오랜만에 조잘대며 얘기하는 큰딸의 얘기에 활기가 느껴진다. 집에서 분가하고 자주 오지 않은 큰딸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니 좋다. 내가 나이를 먹듯 딸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큰 딸은 내년이면 서른 살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참 세월도 빠르고 시간도 빠르다.
내일이면 결혼 29주년이다. 남편과 산 세월이 이렇게 오래되었나 생각해 보니 그 많은 세월 속에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딸들이 있다. 남편을 만나 첫 10년은 정말 힘든 시기였다.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에 연년생 아이들에 가정 형편도 그리 좋지 못했다. 술 좋아하고 친구들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참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왔다. 사실 10년 이후부터 20년까지는 잘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사는데 바빠 어떻게 살았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생은 후반전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세월이 지나 어느덧 결혼 30주년이 가까워 온다. 힘든 시기였지만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서 그때는 참 힘든 시기였지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삶의 여유도 있어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지만 여전히 지금도 예전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결혼 30주년을 맞이한들 무슨 기분이 좋을까?
힘든 시절 함께하며 변하고, 성장하고, 참고 맞추며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좋은 성격도 아니고 그걸 맞추며 산 남편도 많은 부분 나에게 맞추며 살아왔을 것이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다 좋은 것만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내가 남편의 단점을 맞추고 사느라 힘들었던 것처럼 남편 역시 나의 단점을 맞추느라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결혼 30주년 정도 되니 이제는 특별히 맞출 것도 어려운 것도 없다. 지금까지 부부가 함께 살면서 힘들게 맞춰야 한다면 그건 진짜 맞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닮아가는지 이제는 특별히 맞추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었다.
100 시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앞으로도 3~4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함께 사는 게 지옥이라면 얼마나 삶이 고달프겠는가. 이 좋은 세상에 굳이 죽으라 죽으라 하면서 함께 살 필요가 있을까.
내년에는 특별히 시간 내어 남편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오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엔 그렇게 긴 시간을 어떻게 내냐며 남편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 지난 다음날 남편은 내년에 시간을 내 볼 테니 다녀오자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라도 시간을 내지 않으면 시간 내기가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가 많다 보니 일주일 이상 시간 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 지금의 자리까지 왔으니 남편의 노고에도 감사할 따름이다.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인생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결혼하고 여행다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어머님이 우리 결혼기념일 날 돌아가시고 난 뒤 결혼기념일은 제삿날이 되었다. 어머님이 나한테 제삿밥을 드시고 싶으셨나 어떻게 돌아가셔도 결혼기념일에 돌아가시냐며 제사를 지내고 오는 날이면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을 정도다. 돌아가신 해에 윤달이 껴서 음력으로도 못 지내고 양력으로 지내야 한다는 아버님 말씀에 우리 결혼기념일 전날이 어머님 제삿날이 되었다. 그러니 결혼기념일이라고 어디 여행을 맘 편히 갈 수가 있나 결혼기념일이라고 표현을 할 수가 있나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그런데 작년에 아버님마저 어머님 제삿날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결혼기념일이 곳 시부모님 제삿날인 것이다. 어제는 아버님 제삿날이고 오늘은 어머님 제삿날이다. 내일은 우리 결혼기념일이다. 아버님이 어머님 제삿날에 맞춰 돌아가실 때만 해도 진짜 날짜를 못 박고 가시나보다 했다. 그럼에도 이게 나와 시부모님과의 운명인가 보다 하면서 제사를 지내려고 한 건데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버님 제사에도 어머님 제사에도 가지 못했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은 아프지만 상황이 그렇게 된 데에는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것도 그저 순리대로 따르는 수밖에. 마음은 헛헛하지만 이 또한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삶은 변하지 않고 계속될 것 같지만 늘 변하고 상황도 바뀐다. 시간은 기록하지 않으면 늘 왜곡되게 기억된다. 오늘 이 시간도 한참 지난 뒤에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랬지라고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 시간의 흐름 속에 어제가 아닌 그리고 내일이 아닌 지금 현재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10년 후 20년 후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오늘을 진심으로 대하자. 결혼 30주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꿈에도 몰랐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