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퇴근길에 사 온 소주 한 병 캔맥주 1개 그리고 보름달 빵!
언제부터인지 남편의 일과 중 퇴근길에 한 번씩 잊지 않고 사다 주는 저 보름달 빵은 나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사건을 연상케 한다.
지금 내 나이가 50대 초반이니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4학년 때로 되돌아가면 몇십 년 전의 일인가? 일단 계산은 접어두고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우리 때는 국민학교로 불렸다)
나의 고향은 전라남도 시골 탄광촌이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4km, 10리 길이다.
대략 걷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비포장도로에 고무신을 신고 걸어 다녔다.
가난하기보다는 그저 너무 평범한, 평범하다고 생각한 탄광촌 가정이었고 부모님은 탄광 일을 하시면서 농사도 지으셨다.
나는 수줍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그저 순진하고 촌스럽고 천진난만한 전형적인 탄광촌 아이였다.
친구들과 학교 가는 길에 노래도 부르고, 열매도 따먹고, 아카시아 꽃잎 따서 놀이도 하고, 그때 국민학교 4학년은 지금 초등학교 4학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문제는 그날 일어났다.
평소처럼 친구들과 걸어서 학교를 가고 있는데 학교 근처쯤 도착했을 때 동네 언니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은 나의 언니도 포함돼 있다.
무언가 작당모의를 하는 것처럼 언니들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말을 주고받다가 길을 지나가려는 우리를 불러 세우고 돌아가며 우리의 귀에 대고 귓속말로 하는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앞 작은 점방(문구점)에는 집에서 먹을 수 없는 맛있는 것들이 많았다.
(라면땅, 쫀드기, 빨아먹는 아폴로, 테이프 과자)등 지금에야 문방구 불량식품으로 말하지만 그때 그 시절 이 과자들은 참을 수 없이 맛있는 최고의 과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서 쭈~욱 찢어 먹는 쫀득이며 조금씩 끊어서 먹는 테이프 과자. 하나씩 쪽~쪽 이빨로 빨아서 먹는 아폴로. 바삭바삭 쪼개서 먹는 라면땅까지.. 점방(문구점)에는 그야말로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그렇게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맛있는 것을 마음 편하게 사 먹어 본 일이 없으니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가난했던 게 맞나 보다. 그저 시골뜨기로 그냥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지냈던 거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점방, 그곳을 지키는 점방 아저씨, 언니들, 그리고 친구들과 나.
나는 평소 자주 가지 않는 점방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늘은 평소보다 아이들이 많다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아저씨도 투덜 거린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두 명씩 점방을 빠져나가고 나도 막 점방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무언가 묵직한 손이 나의 옷깃을 덥석 잡았다.
'잡았다 이놈'
'너 지금 주머니에 넣은 거 다 봤다. 이놈아.'
'너네 다 한패구나, 이놈들'
'아주 오늘 느그들 혼구녕이 나봐야 정신을 차리제'
그날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 자기가 먹고 싶은 거 하나씩 모르게 숨겨 주머니에 넣고 나오자는 작당모의를 했다. 점방에서 막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하고 나오는 바로 그 순간! 나로 인해 하나가 된 우리 패거리들은 몽땅 잡혀 학교 교실로 끌려갔다.
맞다. 처음 도둑질을 하다 걸린 것이다.
도둑질... 맞다. 국민학교 4학년.
처음 맞냐고? 믿거나 말거나...
그날 내가 잡은 물건은 작은 과자가 아닌 보름달 빵이었다.
언니들 친구들을 보며 머뭇머뭇 거리다 한 명씩 나가는 거 같아서 평소 먹어보지도 못한 보름달 빵을 통 크게 덥석 넣고 나오다 잡힌 것이다.
아뿔싸!
언니들 친구들 표정을 볼 겨를도 없이 주인아저씨한테 걸렸을 때, 사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진짜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그때부터 시작됐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은 다 집에 가고 없는데 빈 교실에 동네 언니들과 친구들, 나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또 한 사람 민*방 선생님!
나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통틀어 기억나는 선생님은 단 세분밖에 없다. 그중 잊혀지지 않는 국민학교 4학년 담임 민*방 선생님...
해는 뉘엿뉘엿 어두워지는데 교실에서는 연실 훌쩍거리는 울음소리와 콧물 빨아들이는 소리가 난다. 싸한 분위기에 적막이 흐른다. 그 적막 속에 몽둥이 내려치는 소리, 퍽 하고 넘어지는 소리, 아이들 울음소리가 뒤섞여 누구 하나 말이 없다. 그저 눈물 콧물 범벅으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종이 한 장 들고 서로 눈을 흘기며 눈치를 본다.
라면땅 1개 ------------》 라면땅 3개
아폴로 2개 ------------》 아폴로 4개
테이프과자 1개 ---------》 테이프과자 2개
쫀드기 1개 ------------》 쫀드기 2개
'제대로 안 써 이 새끼들아!' 퍽
'느그 집에 안 가고 싶지.'
'이게 다야! 제대로 안 써!' 퍽
먼저 몽둥이를 맞으면서 쓰고 있는 언니들을 보면서 나랑 친구들은 아직 무시무시한 몽동이를 맞지도 않았는데 반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있었다.
우리는 똑같이 맞았고, 똑같이 눈물 콧물 범벅에,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똑같이 썼다.
보름달 빵 1개
라면땅 2개 ---------》 3개
아폴로 2개 ---------》 3개
테이프과자 1개 ---- 》 2개
쫀드기 1개 -------- 》 3개
'더 없어? 더 있잖아 빨리 안 적어' 퍽!
'빨리 안 적으면 오늘 느그들은 집에 못 갈 줄 알아 얼른 적어! 이 새끼들아' 퍽!
해는 이미 지고 어둠이 내린 저녁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날 맞는 게 두려워서 열심히 적었지만, 결국은 눈물 콧물 쏙 빼고 빈 종이 가득 무엇을 썼는지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적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학교에 부모님이 오셨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난 그날 이후 국민학교 기억은 거의 없다.
어떻게 졸업을 했는지. 친구도... 선생님도... 보름달 빵도...
저 맛있는 문방구 불량식품도.....
어느 날 남편이 교육 갔다가 교육장에서 준 간식이라며 가져온 보름달 빵이 문제였다.
세월이 흘러 처음으로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보름달 빵 사건에 대해 남편에게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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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기억하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날 그 일에 대해 나는 얘기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보름달 빵을 먹어본 적도 쳐다본 적도 없다는 나의 고백에 남편은 조용히 나를 안아주었다.
'괜찮아'
'그때는 우리도 다 한 번씩 해 봤던 거야'
'어린 나이에 안 겪어도 될 일을 너무 크게 겪었네'
'그 ×× 아주 못됐네. 그냥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따져야겠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남편은 11살의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가끔 저렇게 소주 한 병에 맥주 한 캔 보름달 빵을 잊지 않고 사들고 귀가하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절대 거짓말만큼은 하지 말라고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은 안된다고.. 그렇게 집착하며 거짓말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경우에 따라 때론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11살의 나를 이제는 놓아준 걸까?
먹을 것이 넘쳐나고 곳곳이 베이커리 빵집으로 예전보다 훨씬 맛있는 빵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저녁 퇴근길에 사 온 저 보름달 빵은 어찌 그리 달콤하고 맛있는지..... 벌써 10년 전부터 사다준 보름달 빵이 질릴 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보름달 빵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 그렇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과 선생님, 고향, 시골, 이제는 향수로 남는 거 보면 시간이 약인가 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