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문학동아리 발표회를 마치며 -
대대장을 나오기 전 나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부임을 앞두고 건강이 좋지 않아 열흘 남짓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몸이 채 좋아지기도 전에 나는 마음 무겁게 취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지휘봉을 잡은 지 열흘 만에 청호대대 장병들과 그렇게 첫 훈련, 혹한기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을 마치고는 한겨울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새벽기도를 드리고 걸어서 출근을 했다. 마스크와 비니로 머리와 얼굴을 단단히 가리고 두툼한 내복을 껴입고 다녔다. 출근해서는 대대원들과 매일 아침 싸리골길을 뛰었다. 어떤 날은 4km, 또 어떤 날은 6km, 10km도 뛰었다. 지금도 차가운 겨울바람에 땀이 식어 비니와 눈썹에 하얗게 내려앉던 서릿발을 잊을 수 없다.
여름이 되어서는 코앞에 다가온 KCTC(과학화훈련)를 대비해 불볕에도 체육복에 전투장구류를 착용하고 공격군장 뜀걸음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 그리고 드디어 피해 갈 수 없던 11월 초, 강원도 인제의 KCTC 훈련장,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는 기억들 뿐이다. 나의 대대장 첫해는 이렇게 하염없이 걷고 뛰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사실 나는 나름 문학 중년임을 자처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일기나 짧은 산문도 자주 쓰는 편이다. 훈련과 훈련, 오직 훈련만 난무한 병영에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여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정신적 동반자, 고경표 중위와 함께 올 연초에 병영문화 지원사업을 열심히 찾아 나섰다.
우리의 간절함과 성심이 하늘에 닿았는지 우리는 올봄부터 시인 선생님 두 분을 모시고 기적같이 시문학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강원도 싸리골을 찾아주신 두 선생님을 처음 뵙고, 큰 변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스무 명 남짓의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문학 수업,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까까머리 군인들이 병영의 고단함과 답답함을 내려놓고 또각또각 시를 써내려 간다.
따뜻한 봄볕이 여름의 불볕으로 변해가는 6월 초, 청호대대 시문학동아리는 한탄강 백일장에 나갔다. 시맥이는 아쉽게 장원 바로 아래 차하, 또 다른 많은 친구들도 입상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기억하건대 입상한 장병들 중 절반 가량이 청호대대 용사들이었다. 우연히도 큰 딸 신비도 중등부 산문부문에서 장원을 받아 기쁨이 배가 되었다.
바쁜 업무를 핑계로 시문학 수업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시문학 수업을 계기로 시를 쓰는 즐거움을 알았고, 또 몇 편의 작품도 써보았다. 졸작이어서 보이는 게 부끄럽지만 솔직한 마음과 감성을 담아 쓰려 노력했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시. 우리의 군생활도 한 편의 시 같다. 장황히 설명할 수 없는 희비 섞인 소회, 미지의 두려움과 설렘의 혼합물, 슬픈 듯 기쁨이 교차하는 2년 남짓한 우리의 군생활이 바로 시 한 편이다. 시문학 수업을 통해 시 같은 우리의 군생활을 시처럼 표현할 있게 지도해 주신 허전, 손옥자 두 선생님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군인만큼 감수성이 뛰어나야 할 집단은 없다. 군인은 가슴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총칼로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삶이 이미 시 같다. 총탄으로 스러져가는 수많은 생명을 마주하며 느끼는 울분과 애도함, 전우와의 깊은 교감과 공감. 전쟁터에서 군인의 삶은 시 한 편이다. 그리고 이곳 싸리골에서, 혹한과 폭염 속에서도 전쟁을 대비하는 모든 청호대대 장병의 군생활도 시 한 편이다.
돌이켜 보니 병상에서 시작해 철원의 혹한과 폭염을 두 해나 건강하게 이겨낸, 청호대대와 함께 한 나의 대대장 시절도 한 편의 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