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나름 긴 가족여행을 다녀온 6월 초.
딸아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학교 국어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백일장 일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등교할 것과 하루 종일 수업을 빼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올해 중3, 고입수험생은 전화를 끊고 말똥말똥 제 엄마를 쳐다본다. "그래, 공부가 다는 아니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근데 너 좋아하는 그림이 아니라 왜 글짓기니? 그럼 미술학원은 뭐 하러 다니는 거야?" 엄마는 퉁명스럽게 묻는다. 긴 휴가로 벌써 며칠의 수업을 빼먹었는데 또 내일 땡땡이라니,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도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백일장이고 뭐고 다 잊어버린 일상. 아내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딸아이가 백일장 산문에서 장원을 했단다.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문제의 한탄강 백일장이 떠올랐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수업 빼먹고 백일장 나가는 딸내미를 보며 "우리 딸은 공부 빼고 다 잘하고 다 좋아해."라고 놀렸던 기억과 함께 말이다.
그날, 우리 가족은 무슨 글을 썼는지도 별 관심 없이 그냥 대견한 신비 양을 추켜주며 케이크를 잘랐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오늘, 정훈장교가 한탄강 백일장/사생대회 수상작품집을 들고 왔다. 거기엔 부대에서 참가한 용사들의 글과 함께 우리 딸 신비의 '칭찬'이라는 글과 심사평도 실려있었다.
딸아이의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눈물도 조금씩 흘러내렸다. 군인 아빠와 함께,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마다 전국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던 큰딸. 항상 괜찮다고, 이사도 즐겁다고 말하던 아이였는데.
강원도 철원, 학원도 변변치 않은 곳에서, 남들과 똑같이 공부해서는 따라가기 어려우니, 문제집 대신 책을 보라고 나는 딸아이를 자주 훈계했다. "아빠는 책만 읽었어도 공부를 꽤 잘했어. 우리 딸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농담반, 진담반의 잔소리가 섞인 훈계말이다.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었다던 그 시기. 새벽 5시면 일어나던 딸아이의 모습이 선하다. 그저 대견하기만 했는데, 그것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던 간절하고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니. 딸아이의 글을 읽는 내내,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를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칭찬하고 안아줘야겠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다.
왜 지금, 대한민국이, 공정하지 않은 입시경쟁에 대해 격렬하게 울분을 토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부모맘은 다 같은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