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의 연대급 이상 제대에는 군종장교가 보직되어 있다. 군종병과에서 수행하는 임무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예배, 상담, 전시 군종업무로 크게 분류할 수 있겠다.
미군의 경우는 군종장교들이 예배를 인도하는 역할과 전시군종 및 상담활동을 전담하는 두 계층으로 구분되어 전문화되어 있다. 아마도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끊임없는 전투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상자나 외상 후 스트레스와 같은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일거란 생각이 든다.
한국군의 군종장교는 이러한 모든 업무를 혼자서 수행해야 하며 평시에는 군종장교의 부족으로 대대급 부대에는 전시 동원직위로 편성된 실정이다. 전투병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대급이하 제대에 군종장교가 없다 보니 육군의 전투원중심의 군종활동 정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어려움을 알기에 대대급 종교활동을 지원하는 민간성직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군대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여건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 외부에 의지만 할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욱이 이러한 실정에서도 군의 인력운영정책에 따라 해마다 장기비선, 진급비선으로 전역을 해야만 하는 훌륭한 군종장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T.R. 페렌바크의 '이런 전쟁'이라는 6.25 전쟁의 기록을 보면 초기에 투입된 미군 부대들이 부상당한 동료들을 적진에 버려두고 철수하는 사례가 아주 많았음을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원자폭탄의 영향으로 세계는 더 이상 끔찍한 전면전을 상상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분위기는 미군을 세계의 영웅에서 전쟁을 잊은 나약한 집단으로 약화시켰다. 사실 저자의 표현을 살펴보면 타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전쟁초기 한반도에 투입된 많은 미군병사들은 제대로 된 훈련 한번 받지 못한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당연히 전투에서는 엄청난 사상자가 생겼고, 부상당한 동료들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부상자들은 온전히 적진에 남겨졌다.
적진에 버려져 죽음을 앞둔 부상자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마지막을 함께한 전우, 그들이 바로 군종장교들이었다. 이국만리 낯선 땅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전우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를 미루거나 거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상당한 전우들과 함께 적진에 남겨진 군종장교들은 적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들은 마지막 기도의 사명을 다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잔인성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에서 나온 행동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그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확신한다.
군인에게 종교생활은 인성을 순화하는 활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군인은 전쟁터에서 스러져가는 나와 전우를 위한 마지막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