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이 책의 저자 송복교수는 '조선은 왜 망하였나'라는 질문에 매우 충격적인 대답을 들려준다. 그것은 조선멸망의 본질적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그 방증으로 '지금 우리에게는 10만 양병설의 이율곡과 이순신은 있으나 류성룡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1958년, 서울대학교 사회학 최고 원로교수인 이병도 교수의 국사학 강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이병도 교수는 강의에서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극찬하며 당시 가장 식견이 있는 류성룡 조차도 이를 반대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조선의 인구와 세수를 묻는 학생의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실체 없는 허상인지 곧 알게 된다. 이렇게 저자는 조선 최고의 관료이며 학자였던 이율곡의 허황된 주장과 이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아무런 검증 없이 가르쳤던 근대 대한민국 최고 사학자의 실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왜 대한제국은 나라의 존망이 흔들렸던 400년 전 조선의 치욕스러운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고 결국 일본에 의해 망했는가? 류성룡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답이다. 전시 수상과 군무 총지휘관으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고역을 치르며 조선을 구해낸, 전쟁 그 자체였던 그가 죽는 날까지 기록하여 남긴 징계하고 대비하라는 구구절절한 가르침은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다. 조선의 임금과 사대부들은 전쟁을 잊은 채 다시 명나라의 학문과 문화를 숭상하고 류성룡의 징비록 대신 제갈량의 출사표를 들먹이며 충절을 논했다. 스스로 강해져서 제 힘으로 제 나라를 지키겠다는 자강의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싸워줄 명나라에게 잘 보일 궁리에만 빠진 것이다. 내 나라 개념이 없고 내 나라 의식이 없는 나라, 나라의 주인이 없는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조선은 50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근대의 물결 속에서 청, 명, 러시아, 일본에게 제 목숨 줄을 맡긴 채 표류하다 마침내 1910년 일본에게 나라의 운명을 제 손으로 넘겨준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훼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자강의식이 없는 나라의 운명을 되짚어 보고 뼈아픈 실수를 더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한이 깃든 외침인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오늘날 뼈아픈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이 임진왜란 때 이미 그 첫 씨앗이 뿌려졌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조선의 임금 선조는 명나라의 조선 직할통치론에 동조하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이 꿈꾼 조선은, 왕이 있으되 왕이 다스리지 않는 군자의 나라였다. 왕을 대신해 과거를 통해 선발된 사대부들이 관료가 되어 백성의 뜻을 살펴 다스리는 나라가 본래의 조선이었다. 그러한 사대부의 나라가 사대주의에 빠져 자기 것을 비천하게 여기고 대국의 힘에 의지해 나라의 존망을 맡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은 자강의식을 잃었다. 학문은 실리를 잃고 이론과 명분에 빠졌다. 이론과 명분은 해결책 없는 지리한 정치적 다툼을 야기했고, 나라를 지탱하는 제도의 내실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조선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조선의 세수는 군대는커녕 나라를 유지하는데도 부족했다. 가난한 조선의 군대는 장수는 있으나 싸울 군사가 없었다. 지휘체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해야 하는 군대의 편제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형태를 띤다. 그러나 조선의 군대는 명령을 내는 장수의 수가 많고 이에 따라 싸울 군사의 수가 적은 역피라미드 형태였다. 조선은 중앙에 있는 무관들에게만 녹봉을 지급하고 지방의 무관들에겐 녹봉을 주지 않았다. 녹봉이 없는 지방의 장수들은 군졸들을 약탈하고, 군졸들은 다시 양민을 약탈하는 일이 만연했다. 또한 조선의 군졸들에게는 들고 싸울 무기가 없었다. 명국제독 이여송은 이러한 조선의 군대를 보고 무기도 없이 도망치기 바쁜 군대라 비웃으며 무시했다.
호남과 그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의 수군을 제외하고 조선의 군대는 싸울 수 없는 군대였다. 명의 군대는 조선의 군대를 대신해 왜군과 싸웠다. 그러나 실제 제대로 된 전투는 몇 번 없었다. 벽제관 전투에서 왜군에 대패한 명군은 전투를 기피하고 일본과 강화를 추진하며 4년 동안 군량을 축내면서 조선에 주둔했다. 명군이 조선에 주둔하며 저지른 만행은 왜군의 수탈에 못지않았다. 일본과 강화를 획책하는 동안에는 조선군이 나가 왜군과 싸우지 못하게 하고 이를 방해하고자 갖은 횡포를 가했다. 류성룡에게 임진왜란은 실로 무시무시한 전쟁이었다. 나라를 침탈한 막강한 왜군에 맞서 싸워야 했고, 쓸모없는 명군의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가난과 싸워야 했다. 어찌 이런 일이 한 나라에서 한 시대에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류성룡의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이나 '하늘이 도와서'라는 말을 통해 그때의 참담함이 어떠했을지 가늠해 본다.
류성룡과 이순신의 충절, 그리고 하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멸망의 길을 면한 조선은 놀랍게도 이내 전쟁을 잊는다. 이순신은 명량에서 왜군의 총탄에 쓰러지고 류성룡은 파직되어 유배를 간다. 류성룡의 한 맺힌 피의 교훈을 누구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대륙에서는 명이 스러지고 청이 일어난다. 그러나 조선은 대의명분에 빠져 변화하는 정세에 적응하지 못한다. 하늘 아래 두 황제를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병자혼란이 일어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화는 군국주의를 가속화시켰다. 19세기 한반도에 몰아닥치는 열강의 위협 속에서 또다시 변화의 기회를 놓친 조선의 운명은 마침내 스러져 갔다.
저자의 주장대로 조선이 망한 것은 류성룡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서에는 임진왜란의 실체적 위협과 이를 통해 변화해야 하는 미래 조선의 발전상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의 기록은 임진왜란 7년 동안 쓰인 총 549건의 상소문과 문이를 빠짐없이 분석한 결과로 채워져 있다. 그 속에는 명군이 남기고 간 훈련교본을 기초로 만든 최초의 훈련교본도 포함되어 있고, 양반의 군역의 의무를 지게 한 국민개병제를 적용한 속오군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인구와 세수를 고려하여 정예화된 1만 명의 군대를 모집하고 운용하는 정병 1만 명 제도를 기록하였다. 이것은 육군의 10만 양병설과는 달리 현실적인 징병방법, 군량미 조달방법, 소수 정예로 군을 이끄는 선봉제 등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기술한 현실성 높은 획기적인 병역체계였다.
우리는 비판의식 없는 맹목적 동경과 의존을 버리고,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선은, 류성룡이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찾아낸 부국강병의 비밀을 덮어둔 채 전쟁이 끝나자마자 명나라를 칭송하며 다시 사대주의에 빠졌다. 류성룡의 것에는 사대주의자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실체가 있다. 류성룡은 명나라의 것을 모방하되 조선의 실상을 고려한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었다. 비판 없는 모방은 우리의 실상을 담지 못한다. 그것은 내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는 것과 같다. 류성룡에게만 있는 두 번째 비밀은 실체적 사고다. 류성룡이 가난한 조선에서 명나라의 대군에게 줄 군량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조선의 실상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류성룡은 명분과 이론이 아닌 숫자와 구체적인 방법을 갖고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학자적 관료였다. 마지막 비밀은 애민정신이다. 류성룡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보고 함께 통곡하며 아파했다. 그래서 선조의 내부도, 황행도행도 반대했다. 군량을 조달할 때도 강제적 방법을 최소화했다. 또한 양반에게도 군역의 의무를 지우는 속오군제를 강력히 추진했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의 장교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류성룡과 같은 막중한 직책에 있지는 않지만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그 사명감은 그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육군대학에서 교관을 하며 교범을 썼던 때는 미군 교범을 읽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우월함과 자부심을 가졌었다. 또 부대업무를 처리할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문제에 대한 본질은 생각하지도 않고 전임자가 남긴 자료를 뒤적이며 대충 형식만 갖추며 일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 대대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그저 자기만족에 빠져 간부들과 용사들이 어떻게 느끼든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하며 지휘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돌이켜 보니 참으로 부끄럽다.
ㅇㅇㅇ님께서 취임하시던 날, '기본과 본질에 충실한 생각하는 군인이 되자.'라고 말씀하셨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류성룡이 남긴 징계와 준비에 대한 기록은 다만 조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건전한 비판과 실체가 없는 허상의 틀을 깨고 분명한 목적의식 아래 공허한 생각에 숫자라는 뼈와 살을 붙여 실체화하는 노력을 해야겠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개인적 만족이 아닌 부대원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공동의 목표가 되도록 이끌어야겠다. 류성룡을 읽으며 현실과 실체에 기반을 둔 그의 강력한 분석적 리더십을 배울 기쁨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