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퇴근 후, 나는 근무지인 진주에서 가족이 있는 철원을 향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으로서, 이 길고 긴 이동은 내게 매우 중요한 책무이자 빠트릴 수 없는 상징적 과업이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철원행 버스로 갈아탈 때면, 그곳은 흡사 '입영열차'를 방불케 한다. 부대로 복귀하는 장병들로 가득한 버스 안. 아쉬움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군복 입은 후배들을 보며, 그동안 잊고 지냈던 단어들이 문득 떠오른다. '군인', '정체성', 그리고 '책임감'.
나는 현재 육군 현역 신분이지만, 공군 관사에 거주하며 민간 연구원들과 함께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다소 독특한 환경에 놓여 있다. 매일 제복을 입고 전투화 끈을 조여 매는 일선 부대원들과는 사뭇 다른 일상이다. 하지만 사복을 입고 민간 연구원들과 업무를 하면서도,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은 없다. 제복이 군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군인의 마음가짐이 제복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나도 이 정든 군문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현역으로서의 봉급 대신 '군인연금'이라는 이름의 봉급을 받는 예비역, 혹은 퇴역 군인이 된다. 그러나 계급장을 떼어낸다고 해서 지난 세월 국가에 헌신했던 기억과 의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진대, 전역 후 군을 대하는 세간의 시선은 때때로 씁쓸함을 안겨준다.
나라를 걱정하고 군을 응원하는 분들이 대다수이지만, 간혹 군을 폄하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된 기본권이며, 이는 예비역에게도 마찬가지다. 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건전한 비판은 오히려 군 발전에 필요한 귀한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품격'과 '책무'의 문제다. 국가의 녹을 먹었고, 전역 후에도 군인연금으로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 장기복무 예비역이라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되 그 방식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품위와 책임감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이는 법적 의무를 넘어선 도의적 책임에 가깝다. 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제언과, 무분별한 폄하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군인연금은 단순히 과거 복무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이는 국가가 전역 군인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함으로써, 현역들이 오직 국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약속이자 제도적 안전장치이다. 이러한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라면, 현역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예비역 선배로서 후배들의 사기를 꺾기보다는 격려하고, 군의 명예를 지키는 데 일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후배 장병들. 그들의 앳된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제복을 입고 있는 동안은 물론이요, 군문을 나선 이후에도 나는 영원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짜 군인'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