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팔이 고모한테 걸려온 전화
손주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할머니
집에서 ㅂㄹ 벅벅 긁으면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고졸이니?'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다.
'아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어 나 OO고몬데 연락처 저장을 안 해놨구나~'
순간 불길했다.
이 고모는 나한테 10만 원짜리 보험을 판 분이다.
약관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그냥 친척이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가 하나 들어줘래서 월 10만 원씩 따박따박 고정 지출로 나가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나한테 보험을 꽤나 많이 들어둔 편이다.
잘은 모르겠는데 7~8개 정도는 되는 듯하다.
팔이 당한 10만 원짜리 보험 말고는 어머니가 다 내주는 거라서 노 알 빠긴 한 데, 엄마는 내심 기대를 한 것 같다.
'진짜 다치기만 해 봐라. 보험회사 다 뒤졌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내가 다치면 보험 회사를 혼쭐 낸다는 식으로 보험을 이빠이 들어 놓으셨나 보다.
근데 사실 나는 인자강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다쳐본 적이 없다.
살면서 가장 아팠던 기억은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운동을 하다가 코를 다친 것이었다.
코로나 시기라서 생활관 안에서 푸쉬업이랑 스쿼트를 진행했었는데, 누가 어디서 요가 매트를 가져왔었다.
신이 난 나는 거기 위에서 점프 스쿼트를 하다가 미끄러지면서 침상에 코를 박았다.
옆에서 분명히 미끄럽다고 그 짓거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쌩 까고 스쿼트를 하다가 다쳤다.
코를 직빵으로 침상에 박아서 진짜 아팠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소대장님이 놀래서 나한테 뛰어 왔다.
처음에는 부러진 걸로 알았는데, 하루 지나니까 괜찮아졌다.
내심 코 부러져서 이 참에 코수술해서 차은우랑 다이다이 뜰 수 있을 거라 개꿀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는데 아쉬웠다.
그게 살면서 제일 아팠던 기억이다.
보험으로 돈을 이빠이 내면서 어머니는 안 아픈 게 어디냐면서 오히려 다행이 아니냐고 한다. 아프면 손해란다. 아플 걸 대비해서 보험을 드는 건데..
(이게 맞나 잘 모르겠다 ㅋㅋ)
어쨌든 보험을 팔았던 고모가 전화가 와서 불안했다.
나한테 하나 더 팔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고모께서는 갑자기 뜬금포로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우리 고졸이 걱정을 많이 한다고.
내 누나랑 동생은 대학교 바로 가서 공부 잘만 시키는데, 우리 고졸이는 20살부터 일하고, 대학도 일하면서 다닌다고 고생이 많다고.
설 명절에도 할머니 보러 오지도 못하고, 일하고 공부하느라 바빠서 젤로 고생한다고.
(사실 귀찮아서 안감)
그러면서 할머니가 우리 고졸이 목소리가 듣고 싶으셔서 자기(고모)한테 고졸이한테 전화 좀 해라고 했단다.
요즘 들어서 귀찮아서 할머니한테 전화를 잘 안했더니 할머니가 손주 목소리가 듣고 싶으셨나 보다.
할머니는 내가 고졸 취업을 한다고 했을 때, 입이 대빨 나왔었다.
어른들이 늙으시게 되면, 입가에 주름이 생기게 되는데, 특히 삐지면 입이 더 나오게 된다.
옛날 분이라서 그런지 아들이 대학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셨나보다.
근데 나는 그런 것은 모르겠고 고졸 취업으로 꿀 빨면서 취업을 하고 싶었다. 대학을 잘 갈 거란 확신도 없었고, 공부를 못 할까 봐 두려웠다.
어쨌든 할머니는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었고, 직장에 들어가고 재직자전형을 통해서 대학을 갔을 때도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나를 항상 응원해주셨다.
그런 할머니 마음도 모르고 손주 놈은 ㅂㄹ 북북 긁으면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전화를 좀 더 자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3~4개월에 한 번 뵐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진심에서 우러나서 말씀을 드린 것이었다.
방금도 전화를 드리고 오는 길이다.
뭐 사실 할머니와 그렇게 돈독한 사이는 아니다. 어머니가 시댁에서 너무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자라서 할머니가 딱히 좋지는 않다.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엄마 편 들어야지, 할머니 편 들기는 좀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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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아주 작은 행동, 더 나아가서 내가 하는 행동이 진정 나의 의지와 동기로 인해 작동한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하는 행동들이 진정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일까?'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한테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라고 다그쳤다.
꽤나 무서웠던 아버지가 전화를 강제해서 사실 할머니에게 하는 전화가 딱히 즐겁지는 않았다.
억지로 한 것이다.
내가 대가리가 좀 크면서 개기니까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나를 가스라이팅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지 알지? 할머니에게 전화 한통 하렴. 딱히 강요는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말을 어기면 천하의 10새@끼가 되는 거다.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 아버지에게 반감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니! 안하면 너는 천하의 호로 자슥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은근슬쩍 나의 행동과 내 생각을 통제를 하는 거다.
그런 탈권위적으로 바뀐 아버지의 태도가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전화를 일단 하기는 한다. 마음 속에 뭔가 불편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맞나 싶었다. 속으로 계속 거부감이 들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안부 전화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들어서 권위는 이런 식으로 작동을 하는 것 같다. 은~근하게 작동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강압적인 권위랑은 다르다.
아싸리 그냥 '닥치고 할머니한테 전화를 해라.'라고 하면 아버지가 무서워서라도 전화를 할 터인데
'할머니가 우리 고졸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손자들 중에서 너를 제일 좋아해. 전화 한통 해'
이런 식으로 나와 버리니까 내가 뭘 원하고, 무슨 목적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래, 할머니에게 전화 자주 드리는 것이 효도지..' 라면서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효도라는 것을 자식인 아버지 본인이 해야지.. 왜 손주인 나한테 효도를 하라고 하냐..
딱 가스라이팅의 정석 아닌가.
아버지는 자신이 하지 못한 효도의 부족함을 나의 전화를 통해서 채우고 싶으셨나 보다.
내가 진정 원해서 전화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던가..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 할 때마다 5만 원씩 계좌에 입금되면 전화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안부 전화를 하는 의미가 퇴색이 되지는 않나..?
어쨌든 요즘은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것 자체가 즐겁다.
강압 혹은 탈권위적인 가스라이팅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 의지가 깃들어진 전화라서 말이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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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나이를 먹어서도 돈이 있어야겠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말이다.
나이 먹고 돈이 있어야 내 자식들이랑 손주들한테 용돈 찔러 주면서 더 자주 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 댁을 가는 것이 자식과 손주들에게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와 할아버지한테 가니까 황금색 배춧잎을 4장씩 주네! 개꿀이다!'라는 식이 되어야 애들이 자주 오지, 나이 묵고 홀애비 냄새나는 할아버지 뭐가 좋다고 보러 올까..
아버지께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말씀을 하셨다. 부모님 뵈러 오는 것이 즐겁고 이득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고.. 나도 그러기 위해서 노력할 거라고..
인간의 겉과 속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가만 보면 내가 진정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것, 그 자체로 흡족감을 느끼는 것인가?
잦은 안부 전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할머니의 재산 상속을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요즘 나를 포함한 세상 꼬라지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통제가 맞는데, 통제가 아닌 척, 맞으면서 아닌 척. 겉으로는 올바른 길을 선택을 하지만, 속마음은 또 모르지..
이런저런 내 주위에 있는 프레임을 의심해 볼 일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를 가두는 것 같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