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말을 지나가듯 들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최고 세율은 50%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일본(55%)을 이은 2위이다. 취등록세까지 포함한다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 증여액의 상한선은 10년간 5,000만 원이다. 금액이 높아질수록 떼어가는 세금은 더 많아진다. 부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절세하여 자신들의 부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좋은 증여 방법은 단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비, 즉 학원비에는 세금을 메기지 않는다. 오히려 연말정산에서 교육비 명목으로 세금을 깎아주기도 한다. 부동산, 주식, 예금 등의 자산은 나라에서 세금을 메기지만 지식에는 세금을 메길 수가 없다. 부자들은 자식들에게 부동산과 주식 같은 유형의 자산뿐만 아니라 교육, 지식 같은 무형의 자산 형태로도 상속한다.
우리 집은 중산층의 표본이다. 아버지께서는 공무원이시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이다. 누나와 여동생이 있는 3자녀 가구이다. 아버지 월급에서 연금과 건강보험료 공제하고, 아파트 대출금 갚고, 차 떼고, 포떼고 하면 크게 남는 게 없다. 내가 중학생 시절 다녔던 영어, 수학학원의 한 달 학원비는 70만 원이다. 자식 3명이 학원 2개씩만 간다고 치더라도 월 210만 원이다. 과외나 더 공부하고 싶은 과목이 있어도 부모님의 눈치를 봐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평범한 주부셨지만 가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자영업에 뛰어들고, 보험 영업직으로도 일을 하시곤 하였다. 집안 갈등 요인은 항상 금전적 문제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에게 부담드리지 않고, 어서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쯤이 되자, 나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길 희망했다. 마이스터고를 선택한 여러 이유 중에는 당연히 금전적인 문제도 존재했다. 우리 집은 꽤 평범한 집안 형편이었지만 나는 돈이 아깝다고 느꼈다. 어차피 인문계에 진학해서 뼈 빠지게 수능 공부해서 대학 가더라도, 취업 준비를 몇 년씩 해야 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취업 준비할 자신도 없었고, 그 과정에 쓰일 돈이 낭비 같았다. 마이스터고는 학비 면제, 사교육의 필요도 없고, 전원 기숙사 생활에다가 한 달에 급식비만 내면 더 이상 돈 들어갈 구멍이 없었다.
아버지는 찬성하셨다. 오히려 마이스터고라는 제도를 내게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는 고졸 취업으로 공기업, 대기업 가는 게 훨씬 쉽기도 하고, 인문계 사교육비, 대학 등록금과 용돈까지 세이브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선택이라고 장려하셨다. 어머니는 반대하셨다. 남들 다하는 대학 생활과 경험, 고등 교육의 기회를 하나뿐인 아들에게도 주고 싶었다.
나는 마이스터고 입학 원서에 어머니의 도장을 몰래 들고 가서 찍었고, 어머니에게 크게 혼이 났었다. 지금 와서 얘기하는 거지만, 어머니가 그때 참 서운했다고 말씀하셨다. 학원비 정도는 자신이 벌면 되는데, 왜 네가 돈에 대해서 걱정하냐는 것이었다.
학교를 가보니, 다들 우리 집안 형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비슷한 환경의 학생들이 많았다. 중학생 시절에는 반에 한, 두 명씩은 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하거나 할아버지가 부자인 소위 말해 금수저가 몇 명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중학생 시절 흔했던 금수저를 보기 힘들었다. 3년 동안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붙어살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대부분이 중산층 혹은 그 이상, 그 이하 언저리인 집안이 대다수였고, 저소득층 가구도 참 많았다. 학급의 30% 가까이는 저소득층이었던 기억이 난다. 일부 유복해 보이는 집안도 있었지만, 공부하기가 싫어서 도피성으로 오거나, 부모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떼를 써서 온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하면서 느낀 것은 좋은 회사에 취업만 가능하다면, 이것만큼 좋은 '가성비'는 없다는 것이다. 3년 동안 조금만 노력하면 4년제 대학교 나와도 가기 힘든 공기업, 대기업에 입사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중산층 계층을 유지하거나 중산층이 되기에 가장 빠르고도 효율적인 루트가 "고졸로 공기업,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졸 출신'이라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려야 하는 단점이 있긴 하다만...
그래서 그런 것일까, 고졸 취업은 평범한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정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긴 힘들지만 지금 위치에서 만족하며 살 수는 있다.
만약 내가 강남에 아파트 2채 있고, 전문직 직장을 가진 상위 0.1%의 부자였다면 내 자녀를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상고 같은 직업계 고교에 진학을 시켰을까? 나였으면 20살부터 직장생활을 하는 길로는 인도해주지 않았을 것 같다. 남들 다하는 경험 다 시켜주고, 공부를 못하더라도 해외에 유학을 보내서 어떻게든 멀쩡한 학교의 4년제 학위를 따도록 장려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해외 대학의 MBA 석사 학위나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시켜주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부자들의 최고의 증여, 상속의 방법인 교육을 포기했다. 그리고 취업을 선택했다. 어차피 세금을 많이 떼어갈 정도의 재산이 우리 집에는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삶에 굉장히 만족한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만약 중소기업에 갔다면, 지금쯤 회사를 때려치우고 '고졸 백수의 신분'으로써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인문계를 진학해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잘되야 평범한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를 다니며 복학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했던 선택, 지금 다니는 직장에 굉장히 만족한다. 마이스터고에 간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항상 감사하다.
다만 씁쓸한 것은 계층 간 이동 가능한 사다리가 점차 없어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로스쿨과 의전원은 어느덧 부유층, 고위층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SKY 대학을 나와도 멀쩡한 대기업, 공기업 취업하기도 힘들다. 취업을 하더라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사기가 힘들다. 부모로부터 자산을 상속받은 이들과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노동소득의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중산층의 계층을 유지하거나, 중산층이 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아등바등 살고 있다. 그 위를 바라볼 여유따윈 없다. 당장 사다리를 두고 다투기에도 바쁘다.